드라마

매리는 외박중 - 지금 남아있는 순정만화잡지가 뭐뭐 있을까?

까칠부 2010. 11. 15. 23:48

멀리는 르네상스에서부터, 댕기는 폐간할 때까지 다 모았었다. 나인도 역시. 윙크도 꽤 모았었는데. 한 50 권 되었던 것 같다.

 

순정만화에도 트랜드가 있다. 문득 느끼는 것은 아마 아주 최근 보았던 윙크의 어떤 만화. 하긴 그것도 꽤 되었다. 요즘도 윙크가 있던가?

 

그러고 보니 웹툰이었다던가? 원수연 만화도 본 지가 꽤 되었는데. 아예 이제는 순정만화잡지도 남은 게 없는 것일까? 그래도 떠오르는 것은 그때 보았던 어떤 만화의 그 분위기. 이미지.

 

참 고전적이지 않은가? 두 남편 사이에서, 그러나 그 두 남편의 캐릭터라는 것이. 주인공 매리도 전형적인 캔디형 주인공이다. 잘난 것 없이 억척스럽기만 한. 착하고 성실하고 당당하고. 앞으로의 전개라는 것도 어느 정도 그려지는 듯하다. 드라마 여주인공 진과 무결과의 관계라든가, 진과 다시 매리의 법적 남편 정인과의 관계라던가. 락커 강무결의 캐릭터마저도 어쩌면 그리 그린 것 같은가.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원수연이면 우리나라 순정만화 거의 3세대에 속하는 원로작가다. 1세대가 한마음, 나혜미, 김동화, 차성진, 2세대가 김진, 신일숙, 김혜린, 강경옥, 그리고 아마 원수연이 르네상스 시절 데뷔했던가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세련된 느낌은 영상의 힘일까? 원래 원수연은 그림체 자체가 상당히 고전적인 작가다. 감독의 힘인가? 아니면 웹툰이라 원수연의 작화에도 변화가 있었을까?

 

뻔한데도 재미있다는 것은 그만큼 익숙하다는 뜻이리라. 익숙한데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좋아하고 있다는 뜻일 테고. 워낙에 순정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지금도 보는 만화의 절반이 순정만화다. 전처럼 그리 많이 보지는 않지만. 이런 뻔한 코드들도. 너무나 고전적인 전형적인 캐릭터와 관계와 네러티브도. 17살에 강무결을 낳았다는 철없는 엄마나, 정인과 강무결을 게이라 오해하고 마는 공교로운 상황이라든가. 비교적 최근의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만화에서 손 놓은지가 오래 되지 않았다.

 

아무튼 강무결의 차라든가, 강무결의 집이라든가, 정말이지 만화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너무 충실해서 드라마를 보는 것인지 만화를 보는 것인지. 문근영도 장근석도 김재욱도 김효진도 모두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강무결과 매리 사이에, 또 아버지와 매리 사이의 소소한 대화들도. 유쾌하면서도 다감한 이런 소소함이 바로 그런 고전적이라는 것일 게다. 전혀 오버하는 것 같지 않은 오버들이 자연스럽기에 그래서 더욱 만화같은. 3D로 만들어진 한 편의 만화랄까? 모든 장면들이 하나하나가 만화의 컷만 같다. 펜선이 보이고 펜터치가 보이고 스크린톤이 보이고.

 

원작을 보아야 할까? 하지만 원작을 보고 나면 순수하게 드라마를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된다. 원작은 이랬는데. 드라마는 저랬는데. 드라마가 끝나고나 원작을 볼까? 간만에 원수연 만화도 읽어봐야겠다. 황미나나 강경옥이나 김진이나 김혜린이나... 아직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을까?

 

다만 손발이 오그라들었다면 "락 정신"을 부르짖는 밴드와 어울리지 않는 정인의 모습이었다. 예전이라면 그 모습이 참 멋있었을 텐데. 락스피릿이라는 단어 자체를 어느새 조금은 우습게 보게 된 터라 역시나 만화스럽게 오버스럽다. 아직도 그렇게 철지난 락스피릿을 외치고 다니는 밴드가 있을까? 아니면 성공하지 못한 밴드의 자위로나 쓰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또 인상에 남았던 장면이 공연을 앞두고 멤버가 하나 도착하지 않아 손도 못 맞춰보고 올라가는 것. 의외로 많다. 워낙에 전업으로 음악만 하기가 어렵기에 연습도 못하고 공연 직전에나 겨우 손을 맞춰보고 올라가는 경우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아마 어느 정도는 취재가 동반되었겠지. 허술한 듯 과장된 듯 그러나 꽤 밴드의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홍대앞 꽃거지라는 장근석의 캐릭터도. 역시 많다.

 

잘 만든 만화라는 생각이다. 변함없이 그 한 가지다.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내가 이 드라마를 이토록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만화에 미쳐 주위를 잊고 살아가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한국 순정만화로부터 점차 멀어지던 어떤 시점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그때 내 손에 들려 있던 잡지들을. 단행본들을.

 

오버하면서도 오버스럽지 않다는 것. 과장되어 있으면서도 상당히 자연스럽다는 것. 만화스러우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 그런 소소한 디테일이 원래 좋았던 것이었다. 소년만화보다 순정만화에 더 익숙했던 이유였다.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뻔한 오해와 갈등과 이야기속에. 그런 익숙함들이. 좋았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