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브로콜리너마저 "졸업" - 밴드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까칠부 2010. 11. 21. 20:54

처음에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과 "변두리 소년, 소녀"가 좋았다. 스탠다드한 멜로디와 사운드가 좋았다. 서정적이고 소프트한 멜로디와 충실하게 채워진 사운드가 아, 이런 게 록이로구나. 스탠다드하지만 그것을 이렇게나 맛깔나게 완성해낸 것은 스페셜하다.

 

그런데 내가 요즘 집중력이 전과 같지 않아 15분 이상 음악을 듣기가 그리 힘들다. 요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다. 음악을 들어도 음악에만 집중을 못 한다. 이런 때는 취향이 극단적으로 좁아지며 음악을 듣는 깊이도 얕아진다. 음악을 들을 정신이 없는데. 그래서 "울지마"까지만 구분해 듣고 나머지는 거의 이런 음악도 있구나 하고 말았는데,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귀를 간질이는 멜로디와 사운드가 있었으니...

 

감기를 앓느라 누워 가만히 음악만 듣고 있으려니 겨우 그 음악을 찾아 제목을 볼 수 있었다. "환절기" 밴드음악이란 이런 것로구나. 주장하는 듯 기타와 드럼과 베이스와 키보드, 보컬이 충실하게 채워진 음악이었다. 문득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매혹적인 기타리프에 이은 드럼의 경쾌함과 그 밑에서 둥둥거리며 울리는 베이스, 그리고 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키보드. 멜로디도 흥미롭다. 이야 말로 밴드음악이어야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악기 하나하나가 매력적이고 그 구성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짜임새있다. 이거 좋구나.

 

하지만 함정이었다. "환절기"에 감탄하고 "졸업"을 다시 들었을 때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그냥 들을 때는 조금은 심심하지 않은가. 밴드음악치고는 상당히 보컬위주의 심심한 음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혼잣말로 밴드의 악기들에 잔뜩 귀를 기울이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아마 몸이 안 좋으니 그만큼 귀로 듣는 집중력도 좋아진 모양이었다.

 

"환절기"에서 악기들이 각자 자기주장을 하며 한 데 모였다면, "졸업"에서는 악기들이 한 데 뭉쳐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뭐가 다른가? 드럼은 마치 보컬의 목소리와 일체화된 것 같았다. 멜로디가 절묘하게 드럼의 비트에 올라타 하나가 된 듯 들썩이고 있었다. 가사까지 딱 멜로디와 비트에 맞아 떨어진다. 기타는 멀지 않은 곳에서 배웅해주고, 키보드는 주위를 떠나지 않고 맴돌고, 베이스는 함께 손을 잡아 이끈다. 아마 멀리서 보았으면 그것이 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밴드의 모든 파트가 하나로 일체화된 느낌이었다. 심심하게 느껴진 것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만큼만 채워져 있기 때문. 섬세하다고 했지? 꼼꼼하다고? 이만하면 제대로 편집증이다. 짜증날 정도였다.

 

과연 밴드음악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닌가. 간만에 밴드음악을 듣는 즐거음에 흠뻑 빠졌다. 오늘도 멍하니 누워 들으며 브로콜리너마저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계피라는 핵심멤버가 빠지고 흔들릴만도 할 텐데 - 아니 흔들리지 않으면 그게 밴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빈 자리를 나머지가 어떻게든 채워나가는 게 팀이다. 그리고 그 빈 자리마저 지워지고 남은 이들이 또 하나의 팀을 만들어가겠지. 계피가 떠났어도 남아 있는 우리들이 "브로콜리너마저"라는, 바로 그들에 의해 생산되고 완성된 음악인 것이다. 밴드라는.

 

듣는 내내 기타가 신경쓰였다. 그리고 결코 어느 악기에도 뒤지지 않으며 충실하게 받쳐주는 베이스와, 내가 자객이라고까지 표현했던 키보드, 하지만 내내 경쾌하면서도 단단하게 음악을 이끌었던 드럼. 이만큼 완성도가 높은 앨범도 참 오랜만이지 않을까. 더욱 들으면 들을수록 맛이 나는 음악이라는 데서 더 그렇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그냥 틀어만 놓아도 좋다는 것. 말이야 이러쿵저러쿵하지만 머리로 따질 것 없이 그냥 들어서 좋은 음악이다. 드럼이니 베이스니 기타니 몰라도 그냥 흐르는대로 맡기며 즐겨도 좋은 음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배경음악이다. 일상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간만에 지갑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음반을 나도 잘 안 사는데. 음원시대가 되면서 좋아진 게 바로 이런 점들이다. 실패할 가능성 없이 몇 번이고 들어보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거든. 분명 사 놓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컴퓨터 시디롬은 윈도우 다시 깔 때 말고는 쓸 데가 없으니. 좋다.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덧, 그나저나 힘이 없어 쓰러져 있다가 남자의 자격을 놓쳤다. 이제부터 다시 봐야지. 감기가 독하다. 다 나았는지 알았는데도 후유증으로 체력이 완전 바닥이다.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