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내내 청춘불패를 보며 해왔던 말이 있다.
"사건의 기점이 필요하다!"
축구로 치면 타겟맨일 것이다. 다들 예능초보들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예능에 대한 경험도 있고, 청춘불패도 1년 넘게 출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문예능인들에 비해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 사건을 만들기도, 스스로 상황극을 시도하기도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런 때 나서서 그럴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들까지도 한 순간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이 바로 예능의 타겟맨일 것이다. 여기서는 걸일까?
겉절이를 만드는 참 심심한 상황에서도 주연은 전혀 심심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보라와 주연에 이어 효민이 자기 무대에서 실수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갑자기 웬 쥐일까? 효민의 병풍캐릭터와 어우러지며 상황은 점입가경에 이르고 마침내는 효민이 절구공이를 들고 주연을 습격한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체육대회에서도, 미꾸라지를 잡으면서도, 참 미꾸라지스러운 친구다. 그런데 막걸리처럼 예능이란 혼탁해져야 재미가 있다. 말끔하니 깔끔하면 그게 드라마지 예능일까? 혼탁해지고 혼란스럽고 그런 때에야 비로소 멤버들이 끼어들 여지가 생겨난다. 각자의 캐릭터가 드러날 여지가 생긴다.
무한도전이 강한 이유는 바로 그런 역할을 멤버들이 에피소드마다 돌아가면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가 사건의 기점이다. 그리고 어느 하나가 사건을 일으키면 그때부터 마치 짜 맞춘 듯 그에 반응하며 자기 캐릭터를 드러내고 관계를 확장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1박 2일도 마찬가지다. MC는 오히려 사건을 일으키기보다는 그 사건을 부추기고 다른 멤버들과 이어주는 역할에 더 충실하다. 물론 다른 멤버들이 저조하면 MC가 그 사건의 기점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항상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에 멤버들이 휘말린다. 멤버들이 휘말리며 각자의 캐릭터가 드러나고, 캐릭터에 따른 관계가 확장되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보고 나면 오늘은 어떤 내용이었더라. 대본이 없는 것처럼 항상 각본 없는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완성되어 있다. 좋은 예능이란 그런 것이다.
그동안 청춘불패에는 그런 역할이 드물었다. 유일하게 김신영이 그 역할을 해 주는데 - 전에는 김태우가 유리와 한선화, 구하라 사이에서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역할이 저조해지며 김신영의 억지상황극, 억지개인기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어지는 것 없이 파편화된 별 의미없는 개인기만이 가득한 참으로 심심한 예능. 그래서 게스트에 의존하다 보니 더욱 출연자 사이에 관계는 희박해지고 사건 없이 이야기도 없는 그런 예능이 되어 버렸다. 보고 나서도 도대체 내가 뭘 봤는지...
그런데 이제는 주연이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지 않은가. 한선화는 오히려 멘트가 너무 좋다는 것이 사건의 기점으로서는 실격이다. 어쩐지 정리하는 느낌이 되어 버린다. 한선화의 멘트를 뛰어넘는 멘트가 적다 보니 거기서 끝나버린다. 하지만 주연은 멘트가 좋은 편이 아니니까. 몸개그도 뛰어난 편이 아니다. 대신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남들 상당히 민망할만한 상황을 만들 줄 안다. 기껏 병풍 효민이 말 한 마디 겨우 하겠다는데 거기서 쥐가 날 게 도대체 무언가?
항상 무언가 투덜투덜. 어색하고. 어리버리하고. 그런 주제에 자신감이 넘치고. 약간은 멋대로고. 그럼에도 밉지 않은 것은 그녀의 웃음에 어떤 천연스러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계산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은 그녀의 강점이다. 그리고 욕먹기를 주저하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말이며 행동들도.
소리가 배우면 좋겠지만. 하지만 이런 건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 거다. 자신을 가지고 자기를 좋아해 줄거라 믿고 해야 하는 것이다. 달리 넉살이라고도 한다. 소리가 했다면 상당히 비호감스럽게 되지 않았을까. 소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마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주연의 행동에 반응하는 멤버가 적고 그 반응이 어색하며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 청춘불패의 한계일 것이다.
아무튼 갈수록 초기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김신영의 억지예능도 없고, 더구나 게스트도 없고, 웃음에 욕심내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러면서도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캐릭터가 분명한 한선화, 주연, 빅토리아 정도. 오늘 나르샤와 구하라가 빠졌다는 걸 그래서 알았다. 나머지는 그저 있으나 마나. 하지만 시간만 주어지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주연이 만들어 놓은 판을 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다음주에도 역시 게스트. 게스트. 게스트. 게스트. 프로그램이 게스트를 먹어버려야 하는데 게스트가 프로그램을 먹어 버리는 희한한 프로그램이다. 게스트를 먹이삼아 캐릭터도 만들고 관계도 만들고 사건도 일으키고 해야 하는데 게스트만 남아 버리는 아주 신기한 프로그램. 다음주는 어떨지.
가끔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청춘불패가 내 말처럼 방향을 잃고 있는가? 하지만 작년 처음 청춘불패 방영했을 때 호평한 사람은 나 말고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능스러우려면 개인기도 만들고, 게임도 해야 하고, 게스트도 불러들이고 어쩌고...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당시의 이른바 네티즌의 요구에 더 가깝지 않을까. 게스트를 부르고 억지게임을 하고 되도 않는 개인기를 하고. 확실히 네티즌의 의견을 바로바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네티즌이 가장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오늘 하루만큼은 그럭저럭 좋았다. 아마 앞과 뒤가 있었다면 더 재미있었을 테지만. 앞도 뒤도 없이 재미있기에는 너무 담백했다. 일품요리는 너무 담백하면 맛이 없다. 코스 가운데 담백한 것이 하나 메인으로 있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좋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 하고픈 말이다. 주연은 좋았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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