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영웅호걸 - 미인이 있고 사랑이 있고 오가는 정이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까칠부 2010. 11. 29. 08:02

간만에 보았다. 연탄. 나도 꽤 되었다. 언제냐...?

 

확실히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이 많다. 일단 싸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연탄불에 물을 데운다. 밥도 짓고 음식도 한다. 식사시간이면 그래서 어머니들은 항상 연탄가스를 잔뜩 들이마시고 하셨다. 부엌에 들어가기를 좋아했던 터라 나도 꽤 마셨던 것 같다. 특히 가장 연탄가스를 마셨던 것은 달고나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연탄을 때야 하는 집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원래 연탄을 때도록 지어져서, 그것을 개조할 비용이 없어서, 무엇보다 연탄이 싸기 때문에. 또 익숙하기도 하고.

 

어려서도 겨울이라고 연탄을 200장 300장 사다 창고에 쌓아 놓으면 그렇게 든든했었는데. 나르샤가 연탄을 갈고 나가며 연탄을 다시 한 장 들여놓지? 저녁에 연탄 갈 때 좋으라고 원래 그렇게 몇 장씩 집 안에 들여놓는다. 우리집은 그때 하루 두 장 땠나?

 

연탄구멍을 잘 맞추지 않으면 불이 꺼진다. 그렇다고 연탄구멍을 너무 잘 맞춰도 금방 탄다. 하지만 연탄구멍 잘 맞춰도 불구멍 막아 놓으면 타는 것을 늦출 수 있다. 괜히 연탄 갈고서 불 잘 붙으라고 했다가 불구멍 열어놓은 채 두면 괜히 연탄이 빨리 타고 설타서 곤란해지고 했었다. 그러고 보면 연탄보일러라는 걸 처음 본 때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다. 그 전에는 그저 구들장. 아랫목은 절절 끓는데 웃목은 한대다.

 

간만에 연탄을 보니 그립고. 그리고 달동네라는 것. 골목이 원래 저리 좁다. 사람이 살 곳이 아닌데 무리해서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전혀 계획이 되어 있지 않아 집들도 제멋대로다. 미로처럼 길 잃기도 쉽다. 집 근처에서 길 잃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골목으로 연탄집개 하나로 연탄을 들고 얼마를 나르고 했었던가? 일 년이 다 가도록 햇볕 한 번 들지 않는 그런 집들도 있었다. 골목이 다닥다닥 붙어서 빛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언덕길이다 보니 1층이 거의 반지하가 되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사실 조금 의문이기는 했다. 서울시내에 아직 남아 있는 달동네가 몇이나 될까? 세계적으로 빈민가는 항상 대도시에서도 도심에 위치한다. 도시빈민은 도시임노동자이기도 하기에 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 가까이, 그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근처에 머물고자 하기 때문이다. 구시가지라 여유 있는 사람들은 외곽으로 보다 쾌적한 환경을 찾아 이동하기도 하고. 빈민을 도시에서 강제로 이주시키는 예는 아마 그리 흔치 않을 듯. 도심에 높은 고층건물들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정작 도심에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도시빈민들은 계속해서 도시 외곽으로 떠밀려가는 것이다. 재개발된다고 그 분들에게 딱지 한 장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별로 그리울 것도 없지마 오랜만에 보는 풍경들이. 어린 시절 항상 주위에 있었던 모습들이.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그런 일상들이. 연탄 특유의 비리고 매캐한 내음이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았다. 연탄 잘 타서 곱게 재가 되면 그것 가지고 석회 대신 가지고 잘도 놀았었는데. 연탄을 눈 대신해서 던지고 싸우고. 이제는 그럴 아이들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지만.

 

노인분들이 참 외롭다. 나이를 먹으면 뇌가 위축된다. 나이 50을 넘어가면 그때부터 뇌가 위축되기 시작한다. 그것을 막는 것은 적당한 운동과 대인관계. 항상 움직이고, 항상 만나고, 항상 이야기하고, 항상 웃고. 혼자가 되신 노인분들이 정신이 맑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이 비단 나이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항상 누군가 곁에 있어주어야 할 텐데. 노인분들을 위한 시설을 지을 예산조차 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것도 우습다. 노인분들이 법의 보호를 받자면 얼마나 꺼리고 가려야 할 것들이 많던가. 그나마도 계속해서 그 지원대상자를 줄여나가고 있다. 예산이 없어서.

 

한국이라는 나라 무척 가난하다. 얼마나 가난하면 노인분들이 최소한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데 그를 위한 작은 지원조차 갈수록 줄여나가고 있겠는가. 교통비 지원조차도 돈 없다고 이제는 줄이자 하고. 사람이 가난한 것인가? 나라가 가난한 것인가?

 

확실히 효진이 노인분들께 잘 한다. 거기서 핫팩을 모아다 가져다 드리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머리를 한 대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대본이든 아니든 전혀 의외의 순간에 의외의 모습으로 진정을 보여준다. 연탄을 미리 갖다 놓는 것부터 얼마나 이 아가씨가 진실되고 따뜻한 사람인가. 기사에서도 효진 - 나르샤보다는 이 순간에는 그렇게 불러주고 싶다. - 그녀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더불어 리어카 하나에 의지해 한 데 힘을 모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는 이휘재를 비롯한 남자들의 모습도. 영웅호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남자들이 더 아름다웠다. 남자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힘을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쓸 때다.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 누군가를 위해 그를 지키고자 최선을 다 할 때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것은 비단 노사연만이 아닐 것이다.

 

정말 흐뭇했던 시간.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가 그 잠시동안은 훈훈하니 온기가 도는 것 같았다. 36.5도. 아마 가장 뜨겁고 가장 서늘하고 가장 마음놓이는 온도가 아닐까? 무엇도 녹일 수 있고 무엇도 식힐 수 있는.

 

경찰서로 취재나간 팀들도 무척 좋았다. 부인과 언제 뽀뽀를 해 보았느냐? 얼굴에 난 상처에 대해서나. 출산예정일에도 경찰서를 지켜야 하는 어느 젊은 경찰관에 대해서돟. 두 아이가 태어나는 동안에도 단 한 번도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선배경찰의 말은 그렁이는 젊은 경찰의 젖은 눈과 대비되어 참으로 아름답다.

 

솔직히 나는 경찰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동안 그다지 좋은 경험이 없어서. 고압적이고 권위적이고 사람 무시하고 제멋대로고, 하지만 그럼에도 바로 그런 경찰들이 있기에 우리는 밤에도 안심하고 거리를 거닐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서도 다른 걱정 없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제복을 입은 경찰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경찰에 접근했던 점. 멋있었다. 비록 그것이 제작진에 의한 대본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영웅호걸의 장점이다. 상당히 대본의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불쾌하거나 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본의 여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주어진 상황에 대하는 멤버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미인들의 아름다운 모습. 그 가운데서도 오늘은 유독 아름답지 않았는가. 연탄재를 덕지덕지 묻히고 있는 유인나나, 아이유나, 지연이나, 비틀거리면서도 연탄을 나르고 다시 핫팩을 갖다주러 조귀남 할머니댁을 찾던 나르샤나. 경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지하던 이진, 니콜, 박가희, 정가은, 신봉선도 마찬가지. 가슴이 따뜻하기에 그들은 더 아름답다. 설사 그것이 대본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보아서 기분이 좋고, 들어서 기분이 좋고, 느껴서 기분이 좋고, 생각해서 기분이 좋고, 아름다운 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니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아이유와 지연의 콤비는 정말 귀여운 조카들을 보는 것 같다. 누가 또래 아니랄까봐 친구 아니랄까봐 잘도 논다.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제대로 하라고 충고하는 아이유, 지연이 아이유에 엎여 가고,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유에 대해 카메라 기자 지연은 정중하게 충고를 해 주고, 좁은 길을 연탄을 짊어지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그 상황에서도 기다리기 싫다며 가위바위보로 압박해 새치기를 하는 유인나는 가히 천연계의 최강이 아닌가. 무언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절로 애교가 묻어난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아가씨다. 사진을 찍겠노라 드러누운 모습은 참으로 신선하고 좋았다.

 

그리고 영웅호걸이 강한 이유,

 

"범죄자와 눈 마주치지 말랬더니 휘재를 외면하는 니콜"

 

그것이 원래 그런 의도였는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준다. 아마 굳이 자막을 넣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쳤겠지. 그동안 영웅호걸에서 니콜이 부진한 것도 있어서 이런 배려가 참으로 고맙다.

 

굳이 이진더러 "운전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것도 그렇다. 이진이 운전실력을 보인 것은 예전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과연 이진만큼 운전 잘하는 멤버가 없어 이진에게 운전대를 맡겼을까? 이진의 말 한 마디에도 "지루하다"며 캐릭터를 부여하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이진의 모습을 당연하게 만든다.

 

아이유에게 개그를 시키고서도 개그 그 자체보다 아이유의 캐릭터와 주위와의 관계에 천착하는 부분도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이다. 그 순간에도 지연은 아이유를 응징하고, 다른 멤버들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아이유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는다. 아이유는 그리고 꿋꿋하고 당당하다. 달리 뻔뻔하다고 한다.

 

기사를 쓰면서 경찰서팀을 방해하는 이휘재의 센스는 과연 발군이 아닌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까지 이휘재에게 노홍철이 되지 않는다. 능숙하게 상황을 조율하며 찌질이로서의 자기 캐릭터와 함께 예능으로서 조금 갑갑하던 상황을 한껏 부드럽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 와중에 니콜과 영어를 가지고 줄다리기를 함으로써 니콜의 본량도 챙겨주었고.

 

아, 예쁘다. 항상 또 느끼는 거지만 니콜에게는 묘한 매력이 있다. 소년같으면서도 소녀같은 느낌? 소녀 같으면서도 어쩐지 성숙하다. 어제는 귀여웠고. 동글동글하니 턱과 이마가, 항항 웃고 있는 듯한 눈이, 장난스러운 입매가 귀엽고 매력적이다. 지난주 이번주 그녀는 최고였다. 비주얼 에이스였다. 그동안 만큼은.

 

아무튼 예능으로서도 좋았고, 연말을 보내는 프로그램으로서도 의미가 깊었다. 따뜻했고 정감이 있었다. 아름다운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는 훈훈함이 있었다. 내가 이래서 영웅호걸을 보는 것 아니겠는가. 일요일이 흐뭇하고 풍요로워지는 순간이다.

 

잘 만든 웰메이드. 가히 명품이라 할 만한 예능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니터가 이리 뜨겁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향기에 취한 시간들이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인의 향기가. 그녀들의 체온이.

 

일요일은 그네들을 위한 시간이다.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나는 시간들이 너무나 아쉬워지는.

 

최고였다. 가히.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멋진 시간들을 찬양한다. 감사한다.

 

 

덧, 개인적으로 가장 멋졌던 장면은 전기줄 사이로 보이는 약간 일그러진 달이었던 것 같다. 하늘아래 달에 가장 가깝다고 달동네다. 어둠고 춥고 우울하다고. 그러나 차가운 늦가을의 어둑한 하늘 사이로 보이는 달은 참으로 밝고 아름답지 않은가. 마치 어제의 영웅호걸처럼. 역시 간만에 달을 본 것 같다. 시리도록 맑은 달빛이 더없이 반갑고 정겨웠다. 무심한 듯 도도한 그 아름다움이.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최근 최고의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