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김치와 기무치 - 민족주의와 공포...

까칠부 2010. 12. 3. 06:31

사실 민족주의 자체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 민족끼리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의 정치체를 이루어 살아가자. 문제는 여기에 공포와 증오가 개입될 때다.

 

공포와 증오는 오로지 순수하게 존재하며 증식하는 감정이다. 다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오로지 공포와 증오로써만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에 이념 "주의"가 개입되면 어떻게 될까?

 

12.12 쿠데타와 광주학살을 덮은 논리가 그것이었다.

 

"북한군이 쳐들어온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할 때도 마찬가지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북한만 좋아한다."

 

나치즘이라는 것도 결국은 독일인 이외에 대한 증오와 공포였다. 유대인을 증오하고, 프랑스인을 증오하고, 러시아인을 증오하며, 소련의 공산주의를 두려워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도쿄에서 전범재판이 열렸을 때 한 일본인은 이렇게 항변했었다.

 

"너희들이 원흉이다!"

 

일본을 그렇게 군국주의로 내달리게 한 것도 열강에 먹힐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그래서 경제가 파탄나는 것을 무릎쓰고 군비에만 올인하다가 마침내 그 한계를 넘어서면서 전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귀축미영. 일본인을 하나로 단결케 한 힘이었다.

 

9.11 이후 미국사회가 급속히 경직되어 간 것도 바로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개인의 인신을 구속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침략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테러에 대한 공포는 그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주었었다.

 

지금도 북한과 관련되어 있으면 어떻게든 넘어가는 것이 그렇다. 북한이란 공포니까. 북한의 핵이란 공포니까. 북한을 증오해야 하니까. 그래서 다른 주장은 들어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참 우습다. 김치의 표준이 정해진 것이 벌써 몇 년 전이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을 비롯해 여러 경로를 통해 김치가 한국의 고유음식임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치가 한국의 고유음식임은, 기무치가 단지 김치의 일본식 발음에 불과하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는 이미 보편적인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일본인도 기무치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안다.

 

일본이 김치를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자기네 고유음식으로 만들려 한다고? 가능한 소리를 해라. 아무데나 가서 길을 막고 물어보라.

 

"일본이 김치를 기무치라 부르면 일본음식이 되는가?"

"일본이 김치를 기무치라 부르며 자기네 음식이라 하면 진짜 그들의 음식이 되는가?

 

아무리 미국에서 피자를 열심히 만들어 팔아치워봐야 그 기원은 이탈리아다. 햄버거는 미국에 의해 세계화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햄버거가 독일의 전통음식에서 유래했음을 알고 있다. 설사 일본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단지 사실을 찾아 밝혀 알리면 그만인 것을 고작해야 발음 하나 가지고.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기무치라 했으니 김치는 기무치가 되고 일본의 전통음식이 된다."

 

이 정도면 논리가 아니라 종교다. 병이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열등감이라는 병.

 

이해한다. 일본의 지배를 받은 36년은 한국인의 무의식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토록 무시하던 왜놈 쪽발이들에게 지배당한 36년의 기억은 지금도 외상으로 남아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일본이 쳐들어 온다. 일본이 빼앗으려 한다. 일본이 지배하려 한다. 아직도 일본인이며 일본문화며 일본 제품이 그렇게 꺼려지고 부담스럽다. 한일전이 열리면 평소 축구라고는 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왜 그리 열광적이 되는지. 그 하나의 경기로 인해 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건 그것 이건 이것이다. 그러한 무의식이 있고 그러한 의식이 있어도 그것이 과연 옳은가는 별개인 것이다. 아무리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고 그로 인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도 그것이 과연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보편적인 사실인가에 대해서는 별개로 판단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일개 연예인이 방송에 나가 독도를 다케시마라 한다고 독도가 실제 다케시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경우는 영토분쟁이라는 실제 사실이 있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김치에 대한 표준논란은 끝났고, 김치라는 이름으로 표준이 정해진 상태에서 세계에도 한국의 고유음식으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거기에 고작 기무치라 한 마디 했다고 사실이 뒤집히거나 할까?

 

그런데도 이런 1차원적인 공포가 먹힌다는 사실이 우리가 얼마나 일본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고작해야 김치 대신 기무치라 부르는 것으로 김치가 우리 음식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일본이 김치를 가져갈 것이라고. 처참하다 해야 하나? 불쌍하다 해야 하나?

 

얼마전 중국과의 동북공정논란만 해도 그렇다. 고구려를 중국이 가져가려 한다. 그것은 정치논리로 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이며 보다 엄밀한 학술적인 연구를 통해 가려야 할 문제였다. 아무리 중국이 그렇게 정책적으로 나선다 해도 세계학계가 그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전혀 소용없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고 밝혀진다. 그것이 바로 학문하는 이유다.

 

고구려 연구를 위한 지원을 늘리고, 보다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고구려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가면 될 것을 그것을 정치적으로... 역사를 빼았고 빼았기고 한다는 사고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역사란 사실이다. 사실은 사실로써 규명해야지 정치적으로 이러니저러니. 그러나 고구려를 중국이 빼앗아가려 한다는 말에 어느샌가 모두 판단을 잃어 버렸다. 냉정하자는 말은 그 순간 매국이 되고, 학술적으로 접근하자는 말은 중국에 고구려를 넘기자는 소리가 되고.

 

결국은 공포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 이탈자를 용납지 않는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로지 한 가지로만.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악"이며 "적"이다. 그게 바로 파시즘의 논리다. 마치 북한공산당에 반대하지 않으면 빨갱이이고 반역자인 것처럼.

 

왜 굳이 김치가 아닌 기무치인가? 일본어로 표기하려면 가나의 특성상 キムチ라고밖에 표기할 수 없다. 읽으면 기무치다. 아무리 원래 발음이 김치여도 キムチ라 표기했으면 기무치로 읽는 것이 상식이다. 이를테면 "맛있다"가 원래는 마디따로 읽어야 하지만 표기한대로 읽다 모니 마시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말을 표기하기 위한 것이 글이지만, 글에 맞춰 읽는 것이 말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일본사람들에게 김치가 쉬울까? 기무치가 쉬울까? 일본인들이 일상에서 기무치라 부른다면 그렇다면 일본인과 일본어로 대화할 때 어떻게 발음하는 것이 더 친하고 가까울까? 물론 김치라 해도 상관은 없다. 원래 김치는 한국 음식이고 그 발음이 맞으니까. 하지만 기무치라 했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이다.

 

결국은 기무치라 부르면 김치가 일본 음식이 된다. 이제껏 한 소리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표준이 그렇게 정해지고 여러 경로로 김치가 한국 음식임이 알려지고, 기무치가 단지 김치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는데, 고작 기무치라 한 마디 했다고 김치가 일본 음식이 된다? 세계라는 게 어디 인터넷 게시판이라도 되는 줄 아나? 누군가 하나 낚시줄 드리우면 죄다 거기에 낚여 파닥거리는.

 

하기는 타진요의 경우도 있었다. 사실확인도 않고 누군가 그리 주장하며 우우 무려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낚여 파닥거리던 사건이. 그나마 타진요 가입자만 그렇고 가입하지 않은 채 단지 막연한 의심과 믿음만으로 타블로를 대했던 사람까지 포함하면 확실히 가능성은 있다 할 것이다.

 

"김치를 한국 연예인이 기무치라 발음했다. 기무치는 일본식 발음이니 기무치는 일본 음식이다."

 

과연 세계인들이 그렇게 한국 네티즌처럼 창호지귀일까? 팔락팔락 파닥파닥...

 

정히 그렇게 믿는다면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와서 제시하기 바란다. 일본이 어떻게 김치를 자기네 음식이라 홍보하고 있고, 일본이 김치를 기무치라 발음하는 것이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며, 장차 김치가 일본음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이다.

 

참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어서. 내가 이래서 카라 카테고리도 지워버린 거다. 하기는 정우성 때는 귀찮았다. 정우성이야 어떻든. 하지만 생각하는 바는 같다. 참 바보같다. 잘도 낚인다. 그게 그리 중요한가. 사소한 데 목숨건다. 바로 그런 걸 찌질함이라 하는 것이다. 참 한심하다. 고작해야 이런 정도를 가지고.

 

하여튼 매번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네티즌이라 하겠다. 탁월한 기자의 어부 본능은 여전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 사람들이란 이렇게 우습고 재미있구나. 그보다는 어떤 혐오감일 테지만. 웃는다. 같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