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죄와 악 - 사람들이 김성민을 동정하고 마는 이유...

까칠부 2010. 12. 7. 19:38

흔히 "죄악"이라고 하나로 쓴다. 죄는 곧 악이고, 악은 곧 죄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면,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어린 동생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 무려 19년을 감옥생활을 하고 있었다. 굶주리는 동생들을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은 "악"했을까?

 

몇 년 전 어려서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여자친구를 위해 그 의붓아버지를 죽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성폭행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는 여자친구를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과연 "악"했을까?

 

과거 4.3 당시 제주도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자들. 당시의 기록을 보고 있으면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짓인가 싶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당시 국가에 의해 보호받고 우대받았다. 그들은 "악"하지 않았는가.

 

어떤 기업의 임원이 있었다. 입사 당시 취직이 급했기 때문에 부득불 자기 학력을 속여서 회사에 입사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성실했고 유능한 임원이었다. 하지만 결국 학력위조가 드러나 회사에서 잘리고 말았다. 그는 학력위조를 범했으니 "악"했을까?

 

전에도 말한 인간은 악한가? 약한가? 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물론 죄란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행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그러한 금기를 지키며 살아가기란 힘들다. "악"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그를 그리로 내몰기 때문이다.

 

그럴 것이다. 그러면 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들은? 강한 거겠지. 훌륭한 거다. 당장 가족들이 굶어 죽는 와중에도 그래도 법을 지켜야 하고 도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물건은 돌아도 보지 않겠다. 취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부당하게 취직을 할 수 없으니 학력위조는 꿈도 꾸지 않겠다. 공소시효도 지났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 수 없으니 단지 여자친구를 위로만 하고 지내야겠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을 견디지 못해 죄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범하고 마는 것이다. "악"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견뎌내지 못할 만큼 "약"해서다.

 

물론 죄를 저질렀으니 처벌은 받아야겠지. 하지만 그것이 "악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거꾸로 법을 어기지 않았어도 그 행위에서 "악의"를 느끼게 된다면 그를 미워하게 되겠지. 법을 어기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죄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악의"에 의한 것인가 아닌가가 문제일 테니까.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그것은 죄다. 규범을 어겼으니까. 규범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에 있어서도 그것은 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는 "악"을 규정하지 않는다. 단지 사회가 정한 룰을 지켰는가? 어겼는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학살을 자행했던 독일인들도 당시 독일의 법 안에서는 정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숱한 민간인학살을 자행했던 이들이 지금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떳떳하게 행세하는 것이 그런 예다. 다만 그에 대한 개인의 판단으로써 "악"은 존재할 수 있다. "악"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즉 사회적으로는 그것이 "죄"일 수 있다. 개인에 있어서도 그것은 "죄"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악"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따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국 동기. 그 이유. 그 까닭. 그 배경들. 무엇보다 그 자신. 행위 자체만이 아닌 여러 정황에 대한 종합적인 - 그러나 주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결국은 그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더욱 담보되었겠지.

 

왜 죄인인데 동정론을 펼치는가? "죄"라고는 여기지만 "악"이라고는 여기지 않으니까. 그 행위는 분명 "죄"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악"해서라고는 여기지 않으니까. "악"해서라 여겼다면 결코 동정따위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악"은 곧 "오"니까. 증오. 혐오.

 

결국 이미지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얻기까지 그가 보여온 모습들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노력일 것이고, 그의 진정일 것이고. 그를 믿고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고.

 

대중은 어리석은가? 어리석으면서도 현명한 것이 대중이다. 무어라 단정하기에는 역시나 "악"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것이다. 죄를 저질렀으니 악이다. 죄가 아니니 악이 아니다. 그것도 한 기준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성민에 대한 안타까움, 신정환에 대한 아쉬움, 그밖에 이슈가 되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들. 죄가 아니라기보다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자체가 "악"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논리보다는 감정에 의지한. 그러나 그것이 또 사람인 것이라.

 

가끔 보면 죄를 미워함으로써 자신의 정의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빨갱이를 증오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에 투철함을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처럼. 그런 사람들게야 용납이 안 되겠지. 어찌 죄인데 동정하는가?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죄이지만 동정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며 사람의 마음이 가는 곳이라는 거다.

 

"죄악"이 아니라 "죄"와 "악"이다. 죄이면서 악인가? 악이면서 죄인가? 죄이지만 악이 아닌가? 악이지만 죄는 아닌가? 답은 역시 자기 안에 있을 것이다. 누가 대신해 주지는 않을 것이니. 다만 한 가지 말하자면 자기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자체가 "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의 히어로들이 오히려 어쩌면 가장 혐오스런 악일 수 있는 이유다.

 

참 당황스럽다. 분명 죄일 텐데. 그것도 필로폰인데. 밀반입까지 했는데. 그게 사람의 마음이 가는 길이니까. 이해하면 이상하지 않다. 톨스토이의 단편에도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렵지만 어쩌면 쉬운 질문일 것이다. 알면서도 그러나 모르는.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앞으로는 사람들의 이같은 신뢰를 저버리지 말기를. 모두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다시금 순수하고 성실했던 봉창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다시 그 모습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악"을 미워하는 것만이 "선"은 아니라는 거다. 모두가 알고 있는 바.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