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불패는 실패했는가? 하지만 벌써 1년 넘게 끌어오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공중파 정규편성프로그램 가운데 그동안 개편의 고비를 넘기며 1년 넘게 이어올 수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더구나 같은 시간대 만만찮은 경쟁자들이 있었고 보면.
그만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이를테면 걸그룹 전성시대에 걸그룹 멤버들이 대거 출연함으로써 화제를 몰고왔고, 농촌이라는 환경은 사람들의 본연의 그리운 향수를 자극했다. 아이돌이 갖는 도시적인 화려함과 대비되어 몸뻬로 대표되는 농촌의 소박함은 리얼버라이어티에 있거 가장 중요한 "진정성"을 담보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땀이 가져다 주는 순수가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정감있다. 무대를 통해서만 보던 아이돌에게서 땀냄새를 맡았고 사람냄새를 맡았다.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고 대비였기에 그만큼 신선했고 그만큼 충격적이었으며 그만큼 인상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이런저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사람들의 관심 속에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이었고.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1년이 다 지났으니 소재의 고갈이라? 아니지. 예능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예능은 정보프로그램이 아니다. 언제 씨앗을 뿌리고, 언제 김을 매주고, 언제 수확을 하고, 그게 그리 중요할까? 5월에는 무엇을 하고, 6월에는 무엇을 하고, 하지만 사실 아직도 보여주지 못한 것들이 많다.
아마 전에도 말했을 것이다. 스토리보다는 텔링이라고. 스토리란 사건이다. 아마 소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캐릭터이며 캐릭터 사이의 관계다. 어떤 대사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뻔한 시리즈물이나 장르물에서도 매번 새로울 수 있는 것은 그 디테일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포맷이고 구성이어도 그러나 그 세부적인 전개나 진행은 전혀 다르다.
사건을 던져주고 그게 끝이었다. 아마 리얼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싶은데. 초반 반리얼버라이어티라고 선언하던 그 당당함이 지금도 아쉬운 이유다.
어차피 예능초보들이다. 아이돌로서 인기는 있을지 몰라도 전문 예능인들처럼 능숙하게 상황을 만들고 이끌어갈 수 있는 역량은 부족하다. 하기는 어지간히 예능감이 있다는 연예인조차도 리얼버라이어티에 오면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데 있어 순발력과 유연성이 부족해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이제 갓 20대 초반인 아이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아이돌답지 않게 망가지기도 잘 망가졌다. 일반인도 보이기 힘든 모습을 곧잘 보였고, 이미지관리라고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한 장면도 적지 않았다. 그것이 또 칭찬을 듣는 이유이기도 했고. 다만 예능도 스토리라는 것이다. 컨텐츠란 곧 스토리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스토리가 있어야 망가지는 것도 재미있는 거지, 스토리 없이 그저 망가지기만 해서야 생뚱맞을 뿐이다.
어떤 개연성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전개 안에서, 그것을 말하는 게 바로 상황극이다. 같은 개인기를 하더라도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 이야기를 만들고 유기적으로 끌어가는 것.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주고받는 가운데 자연스런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집중과 동의를 이끌어가는 것.
좋은 리얼버라이어티에는 항상 이야기라는 게 있다. 아니 버라이어티라는 자체가 각본 없는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 최소한의 대본을 가지고 출연자들의 즉흥연기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텔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으니.
리얼이라는 명분 아래 제작진은 출연자들을 방치했고,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출연자들 가운데서 MC들은 정작 방향을 제시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운데 정리도 못하고, 각자 흩어져 있는 것을 하나로 묶지도 못하고, MC가 특정 멤버와 짝을 이루어 개그나 하고 있으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하나하나 불러다 이러니저러니 개인기 시피고 앉았으면 리얼버라이어티는 끝난 것이다.
청춘불패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과연 제대로 상황극이 이루어진 예가 몇 번이나 있던가. 오히려 초반 김태우가 밉상짓을 하면서 멤버들과 곧잘 상황극을 만들곤 했었다. 유리와의 러브라인이라든가, 한선화와의 3각관계, 구하라와의 대장과 부하, 나르샤와의 동갑내기, 기타 멤버들과의 밉상오빠와 동생들. 그리고 최근 주연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연의 짐주연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상황극이 만들어지는 게 있었다. 하여튼 주연만 나오면 무언가 기대하는 게 있었다. 사건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캐릭터는 어느 정도 잡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멤버들 보면 이 사람이 어떤 개성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 것이다 하는 것이 있다. 다만 이것을 두 사람만 모아 놓아도 그 다음이 이어지지 않는다. 과연 하라구와 짐주연을 묶어 놓으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백두선화와 병풍효민은? 혹은 병풍효민과 나르샤는?
더구나 게스트라는 게, 게스트란 곧 손님이다. 게스트를 맞이하는 고정멤버는 주인이 되겠지. 주인으로서 게스트를 맞아들이고, 주인이 되어 게스트를 살려야 하는 게 또 예능인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되어야 할 고정멤버들조차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게스트를 어떻게 맞아들이고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잡혀 있지 않다. 캐릭터도 없고, 관계도 없고, 게스트를 살려나갈 그 어떤 것도 없다.
당장 게스트 부르는 예능 가운데 런닝맨을 보더라도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어떤 게스트가 출연하든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고정출연자들이다. 고정출연자의 캐릭터와 관계와 그를 전제한 이야기들이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정의해준다. 게스트는 말 그대로 손님일 뿐. 런닝맨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초대손님일 뿐이다.
그러나 청춘불패는 게스트 한 번 출연하면 프로그램이 들썩한다. 모든 이야기는 게스트를 통해서 전개되고 출연자들 자신을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란 드물다. 게스트와 어울리면서 분량을 뽑아내지 고정출연자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란 드물다.
즉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청춘불패만의 어떤 고유한 개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라구와 소리가 함께 있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주연과 한선화가 있는데 어떤 장면이 이어질까? 김신영과 주연과 효민이 함께 있으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같은 김매기를 해도. 같은 씨앗을 뿌려도. 평소처럼 푸름이에게 먹이를 주는 과정에서도. 시트콤이라고 비슷한 소재인데 항상 같은 내용이지는 않지 않은가. 마을사람들도 있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고정출연자 자신들일텐데 그런 것이 전혀 어디에도 없으니.
잘 하는 사람만 집중해 챙겨주기는 강호동이 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몇몇 멤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어 그것에만 의지하지는 않는다. 프로그램 전반을 아우르는 강호동의 시야는 매우 넓다. 역시 MC의 부재일 텐데. 그나마 초반 김태우가 여러 멤버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며 상황극을 챙기고 한 것이 아쉬웠다. 노촌장 역시 가장 연장자이자 촌장으로써 멤버들과 주고받으며 상황을 정리하는 역할을 도맡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전반적으로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시야나 역량은 부족했다. 송은이도 조금은 아쉽고.
내가 반리얼버라이어티라는 말에 지금도 목매는 이유다. 차라리 제작진이 보다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개입했다면. 오히려 어색한 멤버들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 주었다면.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방치보다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분명해질 때 어색한 예능감으로는 더 자연스러울 수 있을 테니.
착한 버라이어티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냥 방치버라이어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착하게 보이는 것이다. 어차피 예능초보들. 순발력이나 유연성 같은 것을 기대하기에는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 멤버들. 알아서 풀어가라 하기보다는 그 알아서 풀어갈 수 있는 상황들을 만들어주었다면 더 자연스러운 연기도 가능했을 텐데. 다른 예능 나와서 - 아니 청춘불패 안에서만 보더라도 주어진 상황에 대해 반응하는 감들은 아주 없는 편이 아니니까. 단지 그것을 직접 만들라 하니 안 되는 것일 뿐.
고정멤버들이 프로그램을 끌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할 텐데 오히려 게스트나 불러들이며 그 기회를 빼앗고. 예능에 익숙지 않은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도록 배려해주어야 할 텐데도 그냥 하는대로 맡기며 단지 개인의 예능감에만 맡기고. 그 대표적인 예가 예능실미도 아니었을까. 맥락도 없이 일단 우악스레 개인기를 시키고 보는. 그래서 개인기로 한 번은 웃기겠지만 그 다음은?
그래서 그 결과가 모든 버라이어티 가운데 가장 조용한 리얼버라이어티 "청춘불패"일 것이다. 다른 리얼버라이어티를 보라. 시끄럽다. 별 것도 없다. 그냥 시답잖고 하찮은 이야기들이다. 그런 이야기가 뭐 재미있는가 싶은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수다다. 그런데 그 수다들이 재미있다.
재미있는 리얼버라이어티와 그렇지 않은 버라이어티의 차이다. 그런 시답잖음 가운데 캐릭터가 있으니까. 그런 하잘 것 없는 가운데 관계가 있으니까. 그것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니까. 다른 사람이 하면 재미없겠지만 이 멤버들이 하니까 재미있다. 그게 또 캐릭터이고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청춘불패를 보면 뭐가 그리 조용한지. 요즘 조금 시끄러워지면서 자리를 잡나 했더니만 그러나 결국은 폐지. 그토록 기대했던 G7의 격의없이 왁자한 수다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끝나는 것 같다. 초반 내가 청춘불패를 보면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었는데.
사실 보더라도 걸그룹 팬들조차 이제는 청춘불패를 보면서 그림만 본다. 가닥가닥 끊어진 개인플레이만 보지 여기에서 어떤 일관되고 유기적인 이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누가 예쁘다. 누구의 개인기가 좋다. 농촌에 아이돌이라고 하는 큰 그림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하라구 하나, 주연 하나, 한선화 하나, 송은이 하나, 판단도 평가도 그렇게 이루어진다. 누가 잘했다더라. 누가 좋았다더라. 이미 아이돌이 농촌 가서 농촌생활을 체험한다는 포맷 자체도 의미없어진 것이다.
소재 이야기가 나오는 게 바로 그런 까닭이다. 유치리라고 하는 농촌의 일상에서 보여지는 걸그룹 멤버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보기보다 이미 유치리에서의 일상 자체가 하나의 미션이 되어 있으니까. 농사일이 미션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이 물론 미션이었지만 이미 완곡을 하고 나서도 몇 회나 더 끌어갈 수 있었고 그럼에도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걳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했지. 합창이 미션이니 얼른 합창대회 출전하고 끝내라. 그런데 청춘불패에서는 그게 의미가 있다.
바로 그 소재고갈 이야기가 청춘불패가 얼마나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션이 아니었던 거다. 농사일이란 무한도전의 미션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무한도전이었다면 농사일을 하더라도 매번 다르게 했겠지. 그게 무한도전의 힘일 것이다. 1박 2일이었어도 같은 주제가 주어졌어도 또 멤버들은 전혀 다른 연기로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었을 테고. 하지만 그런 기대가 없으니까.
기대가 없으면 재미도 없다. 그저 걸그룹 얼굴만 보는 프로그램이어서는 이미 포맷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얼굴만 보기에는 영웅호걸의 코스프레가 낫다. 몸뻬 입혀놓고 뙤약볕에 그을일 것이면 그에 어울리는 어떤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그렇게 욕하면서도 청춘불패를 챙겨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너무 아까워서였다. 그래서 가끔 - 그것도 아주 최근 칭찬도 하고 했었다. 다만 뒷끝이 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을 믿을 수 없다. 프로그램도, 출연자도 믿을 수 있지만 제작진은 믿을 수 없다.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 제작진이었으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은 재미가 없어서다. 재미가 없으니 시청율이 나오지 않고, 그만큼 매리트가 없으니 걸그룹 소속사에서도 해외활동에 있어 굳이 배려할 필요를 못 느끼고. 어느 정도만 되었어도 무리해서라도 스케줄을 빼주고 했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에 대해서. 결국은 청춘불패가 지금에 이르러 수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폐지되고 마는 이유들에 대해서다.
참 아까운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다. 기획의도만 놓고 보았을 때는 이 이상도 기대할 수 있었다. 포맷 자체가 갖는 가능성을 다 보여주지 못한 느낌이다. 출연자들도 자기의 개성과 매력을 아직 다 미처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뭔가 될 것 같은데 그게 되지 않는. 그래서 매번 욕하면서도 매번 챙겨보고.
물론 다들 재능이 있는 멤버들이니 어디 가서든 제 몫을 다 하리라. 나르샤야 말할 것도 없고, 효민도 어디 가서 아주 못하는 수준은 아니고, 한선화는 발군이고, 주연은 정말 뜻밖이었고, 빅토리아도 그만하고, 소리가 조금 걱정이기는 하지만... 프로그램의 폐지를 맞아서 다시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고나 할까?
시원하고 섭섭하고... 후련할 것 같지만 그래도 금요일 저녁시간대가 꽤 아쉬울 것 같고. 그리 오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무언가가 그 빈 자리를 채우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몸뻬조차 무척 어울리던 매력적인 일곱 아가씨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정이 깊었던 모양이다. 말이 긴 것을 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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