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프레지던트 - 이 나라를 바꾸고 싶다!

까칠부 2010. 12. 15. 23:57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지도자 - 사실 나는 지도자라는 말 자체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 의 이미지란 두 가지다. 선지자이거나 순교자이거나.

 

하기는 지도자란 자체가 선지자의 뜻을 갖는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멀리 보고 더 용기를 가지고 더 의지가 굳어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줄 사람. 더 나은 길로 이끌어줄 누군가. 아니면 시대의 죄와 불안을 대신할 희생양으로서.

 

그러나 민주주의 아래에서 정치란 누군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이끌어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해 희생해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나로 인해 비롯되는 것이고 나로써 완결되는 것이다. 그러한 무수한 주체들의 투쟁과 타협에 의해 일구어지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대신하기를 바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오로지 나만이. 내가 아니면.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나라가 바뀔까? 민주주의란 또한 무수한 이기적 개인과 집단의 투쟁과 타협에 의해 공존을 꾀하는 것이다. 여러 이해주체가 있는데 그것을 단지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을까? 아니라는 건 이미 모두가 경험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무너지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몇몇 특정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려 했을 때. 그리고 몇몇 개인들이 사명과 책임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를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언제나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도덕적이고 엄숙한 사람들. 큰 사고는 꼭 그런 사람들이 쳤다.

 

내가 정치드라마를 싫어하는 건 그래서다. 정치드라마만이 아닌 영화나 소설, 만화등 정치와 관련해서는 어지간하면 보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차라리 판타지에서 중세를 배경으로 나오면 상관없다. 무협소설에서 정치를 다룬다면 그러려니 한다. 시대물이라면야 상관없다. 하지만 현대물에서 - 그것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그러고 있으면 몹시 불편해져서.

 

사실 우리사회에서도 그게 문제 아닌가. 국민들은 선지자를 바라고, 순교자를 바라고, 정치가들도 선지자이기를 바라고 순교자임을 자처하고. 거물을 바라고, 이미지에 도취되고, 정치가들은 비판을 해도 그것을 순교적 박해로 여기고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 권력은 특권이 되고 유권자는 단지 그들을 우러르며 바라볼 뿐이고.

 

볼까? 말까? 그런데 무심코 채널을 돌리니 간만에 보는 최수종이 참 잘생겼다. 마치 전성기의 알랑들롱을 보는 듯 연륜까지 느껴지는 모습에 채널 고정. 그리고 또 곰곰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과연 이 드라마도 그런 뻔한 정치드라마의 공식을 밟을 것인가?

 

최수종이 저격당하는 장면에서 그런 갈림을 느꼈다. 과연 이 드라마는 최수종의 욕망을 다룰 것인가? 사명을 다룰 것인가? 최수종은 선지자가 될 것인가? 순교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현실정치인으로써 현실의 정치를 이야기할 것인가? 후자였다면 좋겠지만 전자라면 또 굉장히 불편해지지 않을까.

 

"나는 박쥐다. 필요하다면 어디든 붙을 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계급도 이념도 없다. 국민만 있을 뿐이다. 이념도 계급도 아닌 단지 국민을 위한... 이른바 말하는 실용이겠지. 그동안 실용을 앞세운 정치인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온 터라.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것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며, 단지 이기이며 독선일 뿐이다. 설마...

 

어쨌거나 이제는 거의 개그가 되어 버린,

 

"내가 네 애비다!"

 

출생의 비밀에, 숨겨둔 아들에, 미혼모, 그리고 출세를 위한 선택... 과연 진짜 이 드라마는 어디로 갈 것인가? 결국은 남은 건 호기심일까? 나이를 들어 더 멋있어진 최수종의 외모에 끌리고 그리고 뻔한 코드 속에 무언가 막연한 기대가 끝까지 지켜보게 했다고나 할까?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시놉시스도 보지 않았다. 요즘 사전정보를 어지간하면 보지 않는다. 사전정보 없이 봐야 더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 진부한 실망인가? 새로운 희망인가? 불안하기는 하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때 그만두더라도. 도망자를 보던 타임이라 어쩐지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 어색하다. 실망시키지 않기를. 오늘은 뭐라 판단하기 애매했다. 혹시나 기대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