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다. 청년실업문제를 두고 일장연설을 할 때, 역시 이것도 선지자류인가? 아니 나중에 저격을 당하니 순교자이기까지 할까? 어쩌면 오점일 수 있는 숨겨진 아들을 통해 그 진실을 파헤치니 더 감동적이고 더 의미가 있다. 아마 마지막에 아들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래도 기우였던 것 같다. 경쟁후보 하나를 떨구어내는 방식이. 이른바 알바를 동원해 상대후보의 스캔들을 인터넷에 퍼뜨리려는 순간 선거캠프 직원과 알바와 주고받는 눈빛은 결코 선량함이나 사명감을 담고 있지 않다. 탐욕과 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함이 있을 뿐. 마침내 상대 후보를 곤란에 처하게 만들고도 최수종의 표정은 참으로 야비하다 할 정도로 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하기는 그를 위한 전략회의부터도 그렇다. 어떤 정책으로 어떤 계층을 위할 것인가? 어떻게 이 나라를 바꾸어갈 것이며 국민들을 위할 것인가? 상투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철저히 정치공학적으로 이기기 위한 전략이 오고간다. 어떻게 누구를 공략해야 선거에 이길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념도 정의도 없는 철저한 욕망과 야심들. 하기는 정치란 그런 것이다.
더럽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다. 아무런 욕심 없이 순수한 이상만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기란 더 힘들다. 정치란 돈이다. 그리고 인맥이다. 아니 인맥조차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유권자에게 자기를 알리기란 불가능한데 그러려고 해도 어느 정도 세력이 있어야 하고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과연 아무런 사심없이 순수한 이상과 열정만으로 갖출 수 있겠는가?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꿈도 아니다. 철저한 투쟁의 장이다. 정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이상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정책이며 신념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게 정치다. 정치의 정政은 바를 정이며 싸우는 정이다. 보다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만이 마침내 그 순수한 의지가 있어도 그것을 이룰 기회를 부여받는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되는 순수한 투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국민을 바라보게 된다. 어차피 표를 주는 건 국민이니까. 보다 많은 유권자들이 자신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여주고 들려주고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를 의식해 이루어진다. 권력을 욕심내기에. 권력을 손에 넣고 싶기에. 그래서 더 열심히 유권자의 눈치를 보고 보다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선택하려 한다. 만일 그가 진정 순수하다면 유권자의 바람따위 상관없이 자기가 믿는대로만 행동하려 하겠지. 폴포츠나 트로츠키,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그게 바로 독재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 증류수는 불순물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서 마시면 탈이 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욕심이 있고 그래서 이기를 위해서라도 주위의 눈치를 살필 때 유권자와 정치인 사이에 교점이 생겨난다.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말 그대로 선지자와 순교자란 단지 자기가 바라는 바대로만 실천할 뿐이다. 어떤 반대와 비판에도 무릅쓰고. 그조차도 자신의 옳음을 시기한 시련이라 여기며.
어차피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욕망 속에 살아간다. 정치인에게 바라는 이상이나 신념도 결국은 개인의 욕망에 불과하다. 잘 살고 싶다. 더 평화로운 세상에서 더 자유롭게 더 평등하게 더 불편함 없이 잘 살고 싶다. 그러니 그렇게 해 달라. 다만 그 형태가 다르고, 그 형태가 다르기에 정치인이 내세우는 정책도 공약도 달라지는 것일 뿐. 그 가운데 무엇이 내게 이익이 될 것인가.
누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기브 앤 테이크다. 계약관계다. 나는 표를 주고, 그 표를 댓가로 정치인은 내가 바라는 정치를 한다. 그럴만한 정치인을 골라야 하고, 그럴 수 있는 공약을 내세워야 한다. 뼛속까지 반공주의자가 북한과의 화해포용정책을 추진하기란 어려울 테니. 그런 게 바로 성향이고 이념인 것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지 않을까.
"투표하라!"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혐오증이 문제다."
그러면?
그렇기 때문에 그 더러운 정치를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정치란 어떤 것인가. 현실정치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쩌면 생부인 장일준에게 증오심마저 품고 있는 그의 아들을 통해서.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현실정치인 장일준을 지켜볼 것이다.
다만 과연 그렇게 흘러갈 것인가? 예고편을 보니 진짜 그렇게 흘러갈 것 같다. 이전투구의 이합집산. 범죄를 저지르려 모인 것이 아니라는 선거캠프의 외침까지. 장일준도 그의 아내도, 선배라는 이도 누구 하나 순수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그 욕망을 보게 되지 않을까. 현실을.
그나저나 흥미로운 것이 정권에서 총리를 지냈다는 김경모에 대한 비리의혹. 아들 장성민이 그에 대한 제보를 보여주었을 때 장일준은 그것을 거부하며 말한다.
"그처럼 강력한 폭탄은 자칫 우리에게도 해가 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이 그나마의 기대마저 저버린 채 참패하고 만 이유였다. 비리의혹이 커지면 그만큼 그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그러나 정작 그렇기 때문에 선거전략 자체가 그에 매일수밖에 없다. 실제 당시도 야당 후보는 그 비리의혹 하나만 물고 늘어지다 어떠한 차별점도 보이지 못한 채 그대로 참패하고 말았다. 오히려 그같은 의혹제기가 상대 후보를 살려주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물론 드라마상에서는 그로 인해 자칫 자기당에 위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시각이 강했지만. 그러고 보면 현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공격하라는 현직대통령의 주문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동안 노무현을 제외하고 대선 때면 여당 후보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을 공격하며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었으니까. 총리니까 아무래도 야당의 모 후보와 매치가 되려나? 그럴거면 지난 대선에서도 차라리 정책선거로써 차별된 정책과 비전을 제시했으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으련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 이면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말과 행동과 생각들과. 이것을 보고 정치혐오증이 심해진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러나 보고 나서 이것이 현실정치구나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 "드라마"일 테지만 말이다. "정치"드라마가 아니다.
기대가 커진다. 가장 좋은 것은 주인공 장일준이 그린 것같은 정치인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다는 것. 판타지보다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것. 어쩌면 현실을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것. 원작이 있다고 했던가? 그런 만큼 상당히 탄탄한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제이의 연기가 좋다. 존재감이 있다. 생기기도 잘 생긴데다 아우라가 있다. 최수종과 함께 있으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아직 연기가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정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존재감이 있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제이의 재발견이 될 지도.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연기도 잘 한다.
선지자가 아니어서 좋다. 어쩌면 순교자가 아니어서 더 좋다. 타락한 인간이어서. 탐욕스런 정치꾼이어서. 그런 정치인이 만들어가는 드라마라서. 계속 이렇게 끌어가기를. 괜하게 - 하지만 역시 불안이 남는 것은 첫회 시작부분에서 저격당하는 장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일단은 합격. 지켜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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