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분 이해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게 가장 가벼운 것이다. 아주 가벼운데 그것을 반복해 나르는 사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게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는 것을. 묵직하니 커다란 쇳덩어리마냥 팔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고작해야 음식접시일 텐데. 힘이 안 들어가지. 얼마나 힘들까.
참 멋지다. 역설적으로 웃음이 없어 더 멋있었다. 얼굴이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어도, 손에 화상을 입고 피로로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동안에도, 그래도 팬이 요청하니 웃는 얼굴로 포즈를 취해준다. 그래도 예능이고 분량을 챙겨야 할 터임에도 말조차 잊고 묵묵히 일하는 그 모습이란. 미간을 찌푸리고 오로지 돈까스만을 노려보는 니콜이나, 표정의 변화없이 팬만을 보고 있는 이진이나,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여전히 팬을 놓지 않고 있는 정가은, 그리고 뒤에서 열심히 보조하는 박가희. 아, 홍수아도 있다. 끝네 손을 데었다.
노홍철이 돋보일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떠들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휘재조차 스프솥을 맡고 있느라 말할 여력이 안 된다. 투덜이에 찌질이 캐릭터를 잡아놓고서도 캐릭터를 한 번 보여줄 틈조차 없이 스프를 젓고 다시 담고 시키는대로 나르고, 또 손님도 상대해야 하고. 지쳐 그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어찌나 우스우면서도 대견하던지. 원래 나는 신봉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거든.
정가은을 또 제작진이 이렇게 살려준다. 지난주 그렇게 비난을 들은 것을 의식한 것을까? 정가은을 좋게 포장해주려는 의도가 한 눈에 보인다. 그러나 어떤가? 정가은 역시 열심히 일한 것은 사실이고, 지난주 그 곤란했던 장면 역시 일에 최선을 다하느라 그랬던 것이었을 텐데. 지쳐있는 정가은이나, 그런 정가은을 걱정해주는 서인영이나 지연이나. 상대적으로 서빙을 본 팀은 그래서 손해를 봤다. 이런 때는 더 힘들게 일한 쪽이 빛을 보는 법이다. 서빙이 반드시 쉽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웃을 수 있다는 것도. 그런 사이사이로 장난도 칠 수 있고, 카메라감독을 걱정할 수도 있고, 허튼 농담으로 작게나마 웃을 수 있고. 별 것 아닌데.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기름냄새가 나는 것 같은 분위기에 그렇게 함께 웃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가장 값지고 귀한 웃음이다.
단,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연자들에 대해서다. 연기자들에 대해서다. 연기자들은 모두 훌륭했다. 정가은, 나르샤, 신봉선, 이진, 박가희, 홍수아, 유인나, 니콜, 서인영, 지연, 아이유, 노홍철, 이휘재, 과로로 입원했음에도 늦게나마 나타난 노사연까지. 그들은 이 얼토당토않은 과제에 대해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었다. 예능이고, 연예인으로써 분량을 챙겨야 했음에도, 여자연예인으로써 항상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해야 했음에도, 그러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바를 모두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니콜의 찌푸려진 미간을 보면 효빈이라는 고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문희준이 느즈막이 나타나 무심코 말한다.
"홀에 비해 사람이 너무 적은 것 아냐?"
모두가 지적하는 바다. 도대체 그 큰 가게를, 홀과 주방 합해서 고작 14명만으로, 그나마 점심시간에는 한 사람 입원했고, 저녁시간에는 한 사람 스케줄때문에 가야 했으니 13명이다. 말이 되는가? 결국에 주방을 전문 요리사들에게 맡기고 서빙에만 전념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순간 더 이상 저녁까지는 무리라는 것이 한눈에 보였으니.
예상을 못한 것일까? 어쩌면 진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PD며 카메라감독이며, 조명감독이며, 음향감독이며, 작가며, 아마 이런 업소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었을 테지. 하다못해 홀에서 서빙해 본 경험도 없는 모양이다. 숙련된 인력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초보자들 데리고? 아무리 연예인으로써 활동을 위한 기본적인 체력은 있다고 하더라도 일하는 체력과 그것은 전혀 별개다. 운동으로 단련된 사람들도 전혀 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션을 기획했던 것일까?
물론 보기에는 좋았다. 아름다웠다. 특히 주방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니콜, 이진, 박가희, 홍수아, 정가은, 신봉선, 이휘재... 익숙지 않은 서빙에 손님들을 상대하며 힘들어하는 아이유, 서인영, 지연, 유인나, 나르샤 등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렇게 피곤에 지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냈어야 했는가? 그나마 한계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저녁에도 또 그같이 하지 않았겠는가. 요리사들의 투입은 아무리 봐도 현장의 결정이었다. 원래 계획은 아니었다.
아무리 비싼 출연료를 주고, 출연자들도 각자 목적이 있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겠지만,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따라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혹사라는 게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에게는 출연자들에 대해 보호할 책임도 함께 주어지는 것이다. 최소한 프로그램 안에서는 다치지 않고 피해보지 않도록.
정말이지 꿈보다 해몽이었다. 제작진이 꾸었던 어처구니 없는 꿈에 출연자들은 정말이지 멋진 해몽을 보여주었다. 망상에 불과한 개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출연자들에 의해 용꿈이 되었고 돼지꿈이 되었다. 참 멋진 사람들이다. 연예인이라는 것도 보통의 근성이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나 할까. 어지간한 사람이면 그 상황에서 웃음까지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 간만에 노홍철과 홍수아의 합작사기가 나왔다. 와인을 요구하는 홍서범에게 가짜 와인 갖다주기. 뭐 말도 안 되는 재료를 섞어서 그럴싸하게 갖다주고 있는데. 그만큼 홍서범이 편하기 때문이겠지? 연치가 그리 만만하게 대할 사람은 아닌데,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한참을 웃었다.
홍수아의 노골적인 호객행위에, 홀에서의 손님뺐기 쟁탈전, 그러나 한 편에서는 묵묵히 자기 일에만 열심인 니콜이 있고. 잠깐, 이진은 뭘 하고 있었지? 주방일의 부담이 사라지니 비로소 예능이 된다. 왁자하게 웃고 떠들고 서로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홍수아도 유인나도 신봉선도 노사연도 심지어 박가희마저 자기 분량을 챙기고 있다. 지연과 서인영 아이유. 원래는 이런 게 목적이었겠지. 원래 예능이라면 이래야 했을 것이다. 여유에서 웃음도 나온다. 물론 좋았지만 후반부의 그런 자연스런 예능이, 예능인 - 아니 연예인으로서의 모습이 - 그리고 영웅호걸의 멤버로서의 캐릭터들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터뜨린 웃음 만큼이나. 지은 미소만큼이나. 제작진은 오늘 출연자들에게 큰 빚을 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한 가지 인정해야 할 것은 무리하게 웃음을 탐내기보다 말조차 잊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무리하게 웃음을 유도하기보다 그대로 내보낼 수 있었던 그 센스. 정가은이 지난주 사람들로부터 욕을 들어먹자 그녀를 프로그램을 통해 변호하던 그 배려. 조금만 일에 집중하느라 말을 잊으면 되도앉는 개인기나 시키며 출연자를 소모하려고만 들던 어느 제작진을 보았던 터라. 당연한 것일 터임에도. 그러나 매력적인 그녀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탓에 그것이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무리한 욕심만 아니었다면.
제작진은 꿈을 꾸었고, 연기자들은 그 꿈을 풀어 보여주었고, 꿈은 개꿈이었으되 해몽은 세상에 다시 없을 아름다운 해몽이었다. 땀이 얼마나 소중한가. 무언가에 열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찌푸린 미간과 화상을 입은 손과 지쳐 말을 잊은 얼굴과. 그래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덧, 나는 예능에서 좋은 일이란 결국 부록이라 본다. 예능을 통해 열심히 무언가를 해서 돈을 벌고 그것으로 기부를 하고 좋은 일도 한다. 그것은 단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예능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재미. 좋은 일도 했으니 착한 예능이라 가산점. 나는 그런 것 없다. 아예 그런 이슈를 만들려는 시도 자체를 싫어한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예능은 또 예능대로. 웃음은 또 웃음대로 공감은 또 공감대로 감동은 또 감동대로. 감동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고 웃음만이 최선은 아니다.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기부는 기부대로. 따라서 그에 대해서는 패스. 예능 그 자체로만 본다. 영웅호걸은 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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