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동하에 감탄하는 이유다. 실제 내가 그리 말한 사람이 있었다.
"뭔 노래인지도 모르고 가사도 모르겠는데 그냥 듣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더라."
김태원의 이론이지. 노래에는 비브라토가 있어야 한다. 비브라토가 있어야 감동이 극대화된다.
정동하의 비브라토에는 관조하는 서정이 있다. 다른 말로 아련함이라 한다. 마치 봄안개가 낀듯, 안개비가 자욱하게 내리는 그런 촉촉한 감성이. 더구나 노래 가사가. 멜로디도.
지나고 나서 고마웠던 이를 추억한다. 시간이 흐르고 미안했던 이를 생각한다. 사랑했던 이를.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감정들을. 행복했고 즐거웠고 그래서 미처 더 잘해주지 못한 시간들이 미안하고 아쉬운. 그것이 돌이켜 보니 그립고 그리고 후회스럽다. 후회스럽기에 더 그립고, 그립기에 더 후회스럽다. 사랑해서. 사랑해서.
이광기에게는 올해 정말 말로 할 수 없이 아프고 슬픈 일이 있었다. 차마 방송에 나온 그를 보기가 미안할 정도로 너무나 비극적인 일이었다. 이윤석 역시, 아니 김태원마저 눈물을 짓고 마는 것은 역시 남자의 자격에도 그리워할 이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더라도 그동안의 시간들은 여전히 그는 아끼고 사랑하는 동료이며 후배다. 동생이다. 가족같지 않았는가.
음악의 힘이라는 것이겠지. 바로 신해철의 말처럼.
"서로 다른 개성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김태원이 노래를 쓰면서 지금의 일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광기의 일이 있기도 한참 전에 노래는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시공을 뛰어넘어 노래는 다시금 서로의 마음을 잇고 가슴을 울린다. 전혀 상관없는 노래일 터인데도 자기의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노래란 말이다. 대화다. 박칼린도 말했다. 말로 하다가 감정이 너무 북받쳐 말로는 부족하다 여겨지면 그때 노래가 나온다. 그렇게 노래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하고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수단이다. 춘추시대 관중은 그래서 자기를 죽이려 뒤쫓는 노나라의 군대에 대해 자신을 호종하던 병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목숨을 구하지 않았던가.
힘든 일조차도 힘들지 않게, 괴로운 일들마저 괴롭지 않게, 가슴에 묻어두었던 슬픔이 상처를 째고 나와 눈물이 되어 흐를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에 이른다. 눈물은 사람의 영혼을 씻는 성스런 물이다.
과연 음악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 흘리는 눈물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난 여름 사람들은 이들 30명의 합창단원이 들려주는 하모니에 감동했고, 지금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뭉클해하는 것일 게다. 그 맞지도 않는 남격밴드의 연주에도 흥겨워한 것일 테고.
어쩌면 요즘은 음악이 음악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SBS의 인기가요를 보고 바로 남자의 자격을 본 것인데. 역시나 세련되기는 프로들의 무대인 인기가요였다. 그러나 가슴을 울리기로는 남자의 자격이었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음악이 아닌 공감하는 무엇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일 테지. 콘서트란 음악을 듣는 공간이 아닌 아티스트와 공감하며 교류하는 공간이다.
이아시의 노래실력은 정말 놀라웠다. 신보경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합창에 묻혀 미처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오늘 또다른 놀라움과 감동으로 들린다. 프로이기에 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은가 하는 것을 넘어서 진정 감동을 줄 수 있는 목소리들이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 그녀들의 공연이 있으면 찾아가 듣고 싶을 정도로 모니터가 안타까운 순간들이었다. 배다해와 선우의 목소리는 마치 천상의 소리인 양 맑고 투명했고, 가슴 저 아래에서 끌어올려진 이아시와 신보경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있었고.
그리고 또 감탄한 것이 트로트 가수 한수영이었던가? 그 비브라토가. 또 나온다. 비브라토. 원래 트로트는 꺾기가 아니었다. 비브라토였다. 그 미묘하면서도 깊은 떨림이 트로트의 감동을 전해주었던 것이었다. 홍기훈도 그것이 되었다. 성악을 전공했다더니 정확한 발성과 아름다운 비브라토가 트로트가 주는 원초적인 감수성과 감동을 그대로 전해준다. 마치 그녀의 깊은 이야기를 듣는 듯.
정말 성찬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들이었다. 훈련되지 않은 목소리지만 박슬기 역시 남다른 재능과 실력을 보이고 있었고, 상을 받은 개그맨 듀엣 또한. 다만 아무래도 프로 가수가 노래자랑에 나와 아마추어들과 상을 겨룬다는 자체가 반칙이기 때문에 상이 모두 개그맨들에게 돌아간 것은 어쩔 수 없다 할 것이다. 프로는 역시 프로라는 것일 테지. 어찌 보면 하나같이 그다지 인기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이들이지만 바로 이래서 이들을 프로라 하는 것이로구나. 진정 감탄하고 감동했다.
이경규의 진행이야 이미 데뷔 30년차의 경륜이 어디서 땅파서 주운 게 아니라는 것일 게다. 조이고 당기고 풀고 흩뜨리고. 마치 회장 자체를 악기삼아 연주하는 노련한 악공과도 같다. 긴장할만하면 풀어주고, 지루할만 하면 조여주고, 사이사이 적당히 양념을 더해 흥을 돋우고. 배다해를 꽝으로 놀릴 때, 사진작가와 정동하를 커플로 엮을 때, 그 전에 박은영을 끌어들여 제대로 낚고 있었다. 아무나 대상을 주는 것은 아니로구나. 그와 동년배 가운데 아직까지도 그만큼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가 없는 이유다. 과연 타고난 희극인이로구나. 그는.
정돈되지 않은 넬라판타지아가 좋았다. 어수선한 만화영화주제가 메들리가 좋았다.
"플랫을 하든 샾을 하든 마음껏 즐기라."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하고 하면서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것. 실수하는 것을 보면서도 비웃거나 탓하기보다는 그저 함께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것. 이건 대회가 아니라는 것이겠지. 완벽함을 겨루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단지 보여주고 들려주고 즐기고. 불러서 즐겁고, 보여주어서 즐겁고, 함께 해서 즐겁고, 또 보고 듣는 이들은 보고 듣고 있기에 즐겁고. 음악이란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구나. 지나치게 울궈먹는 것은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또 전혀 다른 무대 아니던가. 단복도 없이 다른 어떤 압박감도 없이 순수하게 추억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 또한 송년에 걸맞는 선물이라 할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한 자리에 모였기에 오가는 정겨운 대화들. 배다해와 동물자유연대 사람들과의 대화라든가. 처음 보는 얼굴일 텐데도 격의없던 중국집CEO아주머니와 한준희 해설위원. 지난주 솔로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도배학원 원장 이하 솔로 테이블 사람들. 남자의 자격 멤버들을 위해 알공예를 선물로 가지고 온 강사.
"죽을 때까지 보자!"
김태원의 말 그대로. 기억이 있어 즐겁고. 함께 한 시간들이 있어 행복하고. 웃고 떠들고 노는 가운데 또 음악이 있으니 감동일 테고. 비록 화면에는 비추지 않았지만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과 마음들과 시간들과 기억들이 그 자리에서 함께 하고 있었을까. 이런 것이 바로 송년회 아니던가. 어제의 인연을 오늘의 정겨움으로 그리고 내일의 가능성으로. 항상 함께. 언제라도 영원히.
가장 멋진 송년의 밤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남자의 자격에 이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게 대체 뭐냐. 내가 어제 무한도전에서 느꼈던 것처럼. 하지만 이런 자리는 어디까지나 팬을 위한 서비스 아니겠는가. 단지 남자의 자격이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어진 내년의 5대 기획도 좋았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음악이 있어서 좋았다. 아름다운 여성들과 그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어서. 지나는 해가 아쉬워 돌아올 정도로. 최고의 콘서트 아니었겠는가.
"어차피 또 볼 사람들인데도 어쩐지 마지막이라는 게 뭉클하다."
"눈물이 계속 나와 주체할 수 없다."
"우리 멤버들만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또다른 멤버들이 있구나 해서 아주 든든하고..."
내년을 기약하며. 새로운 해와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인연들을. 유례없는 추위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멋진 선물이었다 생각한다. TV로나마 함께 했던 시청자를 위해서도. 팬들을 위해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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