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남자의 자격 - 남자답다는 것은...?

까칠부 2009. 12. 7. 11:21

어제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김태원이 중간에 일찌감치 포기하는 모습에 감탄했었다.

 

"아, 진짜 쿨한 사람이로구나..."

 

남의 눈치 보고 그러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간단히 포기하지는 못하거든. 그것도 카메라 돌아가는데.

 

사실 그게 현명한 거다. 아무리 방송이 좋다고 목숨까지 걸어서야 되겠나? 부모가 있고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는데. 부활이라는 팀이 있고 멤버들이 있고 해야 할 음악이 있는데.

 

위험을 무릅써도 좋은 것은 진정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서. 가치를 위해서. 이상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비겁해져도 좋다. 더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잠시 비겁해져도 좋다. 무엇을 위할 것인가? 누구를 위할 것인가?

 

그것이 남자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겁해질 수 있는 것.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모욕도 굴욕도 참아낼 수 있는 것. 그저 자신을 내던지고 마는 것은 그건 만용이다. 지킬 것이 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해서까지 용감할 수 있는 것이 남자다.

 

카메라 돌아가니까... 시청자가 보니까... 그건 가식이다. 그건 그냥 허세고 만용일 뿐이다. 남자라면.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남자라면.

 

그러면 이윤석은 무언가? 그가 달리며 한 말을 못 들었는가? 경규형님이 뛰고 계시다. 어머니께 야단을 맞았다.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무엇 하나 끝까지 한 게 없는데 이것만큼은 끝까지 하고 싶다.

 

이경규도 그랬지. 윤석이가 달리고 있다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지키고자 하는 바였던 것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 그리고 가족, 자존심...

 

솔직히 말하자면 만일 이윤석이 내 친구거나 가족이었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말렸다. 미안하지만 패서라도 끌어내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찌나 심장이 벌렁거리던지. 이미 결과를 알고서 본 것이라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무슨 큰 일이라도 치를까 가슴 졸일 뻔 했다.

 

결과야 훌륭했지만 과연 그의 행동은 옳았는가? 그러나 또 그게 남자라는 거다. 일단 한 번 정했으면 누가 뭐라든 끝을 보는 것.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카메라 돌아간다고, 시청자 본다고 일부러 허세부리는 것이 남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가족이 걱정해도, 지인이 안달하며 말려도 한 번 정한 바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남자들이다. 이 모두가 남자들이다. 내가 남자답다는 말을 그리 싫어하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쓴다. 무어라 말할까? 이 남자들을.

 

끝까지 달린다고 남자가 아니다.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고 남자가 아니다. 남자는 당당한 거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당당한 거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 남자다. 다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에 의해서. 바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

 

남자는 쟁취하는 존재가 아니다. 남자는 지키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을. 친구를. 가까운 사람들을. 꿈을. 희망을. 이상을. 가치를. 남자가 용감해지는 것은 바로 그 지켜야 할 것을 위해서다.

 

그저 숨을 헐떡이는 모습만을 보고 감동한다면 그건 남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왜 저들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달리고 있는가? 왜 저리 보는 사람조차 안쓰럽게 달리고 있는 것인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려는 그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바를.

 

참으로 생각이 짧은 것인지, 아니면 인생경험이 부족해 생각이 없는 것인지, 멈춰야 할 때 멈추는 것도 지혜다. 멈춰야 할 때 한 걸음 더 나가는 것도 지혜가.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이 용기다. 멈춰야 할 때 다시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 용기다. 스물 넘었으면 알 때도 되었을 텐데...

 

말하지만 용기란 멈출 줄 아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남자답다는 것은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기꺼이 멈출 수 있는 것이 남자다.

 

이윤석의 완주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경규의 완주가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대단한 것이지 멈춰 선 이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 지키고자 하는 것이 달랐을 뿐 그들은 여전히 남자였다는 것이다.

 

아마 시간이 가르쳐 줄 것이다. 경험이 가르쳐 줄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진정으로 나아가고 멈출 때란. 남자란. 남자답다는 것이란. 남자답게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과연 그런 것들은?

 

하여튼 나이들이 어려서인가? 별 같잖지도 않은 악플들에 이런 쓸데없는 긴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나도 아직 남자라기엔 뭣한데 말이지. 남자로 태어나기는 쉬워도 남자로서 살아가기는 어려운 법이라.

 

다시 한 번 진정으로 아름다운 남자 일곱 명에게 찬사를 보낸다. 진정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훌륭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