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프레지던트 - 산천어는 계곡에만 산다...

까칠부 2011. 2. 10. 12:22

신희주의 절망을 이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꿈꾼다. 정의를. 공정함을. 당당함을. 그리고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고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를. 그것을 바라고 아마 많이들 정치에 입문하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내가 "프레지던트"라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분이 다 해주실 거야."

 

그런 정치인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다. 오로지 이상만을 추구하면서. 정도만을 지키면서. 올곧고 바르게. 자신이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고 고백한 정치인보다 끝까지 그런 것 없었다고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바란다. 솔직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과 결코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후보보다는 그저 듣기에 좋은 소리만을 늘어놓는 후보를 바란다. 설사 거짓이더라도 이야기는 크고 화려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희망과 미련은 사실 같은 말이다. 다만 희망은 현실에 기대는 대신 미련은 기대를 기댄다. 현실의 위에 쌓아 올리는 것이 희망이라면 기대를 가지고 그 위에 쌓아올려가는 것이 미련이다. 같은 꿈이더라도 그렇게 다르다. 희망을 꿈꾸는가. 미련 속에 잠드는가. 그러나 국민 스스로가 미련을 놓지 못하고서는.

 

지역주의와 조직표에 좌우되는 정치. 흑색선전이야 어디에나 있다. 화려한 선거 이면에 치열한 암투란 어느 나라 어느 정치에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물보다는 어디 출신인가, 정책보다는 누구의 줄을 타고 있는가, 신희주가 저렇게 맥없이 물러나야 할 인물은 아니었을 터다. 김경모를 안타깝게 만들 정도로, 장일준을 끝내 회의케 만들 정도로 그녀는 무척 올곧고 바른 제대로 된 깨끗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그녀가 현실을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절망하여 정치를 떠나려 한다.

 

차라리 장일준을 원망할 수 있었으면. 차라리 장일준을 비난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정치에 대한 작은 희망이라도 남아 있었겠지. 이대로라면 더 이상 자기를 지킬 수 없으리라. 장일준이 바라는 항상 감시하며 꾸짖는 역할을 그때까지 남아 할 수 있을 지 자신할 수 없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판을 떠나려 한다. 그것은 냉엄한 정치현실에 대한 패배선언이다. 승복이고 인정이다. 그리고 그런 정치판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하고자 하는 장일준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어느새 정치라는 괴물에 잡아먹힐까 겁을 먹고 물러나는 자신과는 달리 끝까지 그 괴물과 맞서싸우는 그 의지에 대한.

 

권력에 대한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을까? 그러나 승리하고서야 주장할 수 있다. 승자가 되고서야 비로소 행동에 옮길 수 있다. 그 또한 우울한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는 냉엄한 법칙이다. 그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정치다. 신희주처럼 홀로 깨끗하려고 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것이 장일준이 끝내 승자가 되어 대통령후보로 나선 이유일 테고. 김경모에게는 절박함이 없다. 다시 말해 그래야만 하는 당위가 없다. 누가 더 권력에 절박하며 그 권력 이후에 절박한다.

 

그래서 또 조소희가 중요하다. 그녀는 장일준의 그림자다.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괴물에 잡아먹힌 군상. 원칙도 무엇도 없이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며 개인의 인정을 놓지 못한다. 타인에게는 엄격하되 자기에게는 관대하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장일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과 싸우려 하며, 원칙을 지키려 하고, 이상을 추구하려 하는. 설사 거짓을 말하고 배신을 일삼아도 꿋꿋하게 자기가 만든 길을 가려 하는. 솔직히 조소희는 어떻게 해도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다. 그리 전면에 나서는 일 없는 전 영부인도 결국 그로 인해 문제가 일어나고 말았었다.

 

음모와 음모, 배신과 배신, 그리고 그 사이에 상처받는 순수와 회의하는 이상. 올곧기에 패배하고, 순결하기에 포기하며, 스스로 더럽혀졌기에 승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이상을 위해 배신도 할 수 있다. 배신이란 또한 원칙이다. 상대의 정보를 알아내려 도청하고, 도청하려 불리한 내용을 언론에 알리고, 그것을 알고서는 역정보로 상대를 혼란시켜 이익을 취하고, 내부를 흔들어 분열시키니, 승리하고 마침내 예정된 배신을 한다. 아내조차 속이는 완벽한 기만. 그 끊임없는 변화 가운데 오로지 한 가지 존재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의지. 얼마나 절박하며 그 권력으로써 무엇을 하려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을 드라마. 그러나 불편하겠지. 신희주 같은 사람이 주인공이었어야 하는데. 아니면 김경모이거나. 그러나 현실에서도 유권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장일준이다. 젊고, 잘생겼고, 남자고, 말 잘하고, 이미지 좋고, 인맥과 조직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어쨌거나 드디어 장일준이 저격당하는 장면이다. 이후 조소희가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밝혀지며 장일준이 검찰조사를 받고 그 과정에서 저격을 당하지. 하필 저격을 하는 것이 청암의 집에 머무는 사람이라. 또 총을 맞은 자리가 어깨다. 의심해 봐도 좋지 않을까? 장일준은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니.

 

기대하고 본다. 항상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권력에 대해서. 이상에 대해서. 선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사람에게 항상 가장 좋은 것은 끊임없이 생각케 한다는 것일 게다. 답이 없이 그 답을 스스로 고민토록 하는 드라마. 도저히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오늘은 유독 더욱. 멋졌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