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나는 가수다 - 순위매기기와 대중모독...

까칠부 2011. 4. 1. 13:34

다수결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다름아닌 소수의 의견이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선거만 보아도 1위 한 한 사람과 그를 지지한 유권자만이 의미가 있지 나머지는 철저히 무시되지 않던가. 그가 당선되기를 바라지 않는 더 많은 유권자가 있어도 후보자 가운데 가장 많은 선택을 받으면 그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간다.

 

당장 지난주 <나는 가수다>만 하더라도 그렇다. 비록 정엽이 7위를 하기는 했지만 정엽의 무대가 가장 좋았다고 투표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들의 바람은 정엽이 탈락하지 않고 다음주에도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1위를 한 것도 대중의 선택이고, 7위를 해서 떨어진 것도 대중의 선택이라면 그러지 않기를 바란 것은 대중의 선택이 아닌 것일까?

 

내가 음악순위프로그램을 잘 챙겨보지 않는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지 않으니까. 서울전자음악단, 부활, 블랙홀, 갤럭시 익스프레스, 슈가도넛 기타등등... 가끔 카라 활동할 때는 챙겨서 본다. 나도 대중이겠지. 저들의 음악이 최고라 여기는 사람들도 대중일 것이다. 다만 음악순위프로그램은 그런 대중의 선택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뭐 순위프로가 아니더라도 음악중심 역시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게 문제인 거다. 숫자로 계량화하는 순간 그 음악과 그 음악인을 좋아하는 이유들마저 숫자로 계량화된다는 것. 그들을 좋아하는 감정들마저 계량화되고 서열화된다는 것. 오죽하면 신곡이 나와서 팬들끼리 싸우는데 누구 무대가 어떻다더라가 아니라 누가 몇 위를 했고 누가 더 팔렸다더라다. 과연 인기가 있어서 좋아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그 음악이 좋아서 좋아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가수가 더 인기가 많고 순위가 높으면 팬들까지 덩달아 함께 격이 높아지는 것일까? 음악도 더 좋아지고 훌륭해지고. 음악인도 더 대단해지고 멋져지고. 당연히 모두가 좋아해야 하 만큼.

 

그러고 보면 <나는 가수다>도 어느새 권력화되어가는 것 같다는 말이지. 너는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수 있겠다. 혹은 출연할 능력이 안 되겠다. 심지어 신해철마저 바로 그 <나는 가수다>를 기준으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고 말이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감동했으니 무슨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 것 마냥. 이제는 가창력을 기준으로 서열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는 가수다>를 보며 감동받는다. 늘 보아오던 모습이기는 하지만. <나는 가수다>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공격의 대상이 된다. 잘 부르는 노래가 뭔지도 감동이 뭔지도 모르는.

 

지난번 김건모 재도전사태때도 가만 보면 참 우스운 것이다. 김건모가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가수들도 마찬가지였고, 김건모에게 투표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도전 정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중이겠지. 하지만 깡그리 무시되었다.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 역시 대중일 텐데도. 대중에 의한 대중모욕. 인터넷상에서 끊이지 않는 팬들간의 서열다툼. 다수만이 정의다. 다수만이 의미가 있다. 다수의 폭력. 오만. 독선.

 

아무튼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사표논란. 당선자에게 표를 주지 않으면 투표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어느샌가 당선자를 기가막히게 알아 투표하는 것이 자랑이 되어 버렸다. 소수의견이지만 그래도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있다는 사실이 무시되고 있을 때. 100만표라도 진심으로 그 정책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있다.

 

대중에 의해 선택되는가? 거기서 배제되는 것도 대중이다. 1위를 했을 때 그가 아닌 다른 가수의 음악을 선택한 대중도 대중이다. 꼴찌를 한 가수에게도 그를 좋다고 선택한 것도 대중이다. 그것을 단순히 숫자로 계량하고, 순위로 결론내리고, 구분짓고 구별하고, 무엇이 대중에 대한 모독일까? 다수만이 대중이라 했을 때 소수는 사라진다. 다수만이 대중이라 정의했을 때 그에 속하지 않는 대중은 대중이 아닌 무언가가 된다.

 

예전 누군가 그랬는데. 인디음악도 대중음악이다. 맞다. 인디음악을 들으려 일부러 음원사이트를 뒤지고,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는 그들 역시 대중이다. 바로 그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디음악은 대중음악이 아닌 것 같다. 다수만이 대중일 테니까. 정의일 테니까. 소수가 좋아하는 음악은 대중음악이 아니다. 세상에 이보다 말도 안되는 교만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교만이라기보다는 비굴일까? 다른 것도 아닌 다수의 권위에 기대어 평가하고 판단하려 들고 있으니. 어이없게도.

 

물론 마음을 비운지가 꽤 되었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인이란 심야프로에만 나온다. 그것도 아주 가끔. 그렇다고 내가 모든 음악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음악을 즐겨듣지도 않는다. 그런 것도 대중이다. 주류만 쫓는 것이 대중이 아니라. 순위가 우스운 이유다. 이제는 웃지도 못하겠지만.

 

<나는 가수다>의 또 하나의 폐해, 노래와 음악에 순위를 매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당연하다. 그래서 가수들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소수란 의미가 없다. 7위를 선택한 대중의 의견따위. 아티스트들의 생각따위.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