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로열 패밀리 - 김마리 vs 김인숙...

까칠부 2011. 4. 22. 12:26

“마리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인숙이라면 조니를 찔렀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죽음을 앞에 두고 마치 한지훈(지성 분)에게 고백하듯 들려준 엄기도(전노민 분)의 이 대사야 말로 이 드라마의 주제가 아니었을까? 이제까지의 내용들이 그의 한 마디로 요약된다.

 

우유배달을 마치고 나서는 반드시 남는 우유를 챙겨 가지고 한지훈에게 주고, 인형을 배달하고서도 받은 돈으로 사탕을 사서 어린 한지훈의 손에 들려주었었다. 살인자의 누명을 쓰게 되었을 때는 끝까지 그를 믿고 그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잡아주고 지탱해 주었었다. 어머니 서순애(김혜옥 분)이 말하는 김마리란 그런 여자였다.

 

그러나 JK의 며느리가 되어 버린 김인숙(염정아 분)은 JK의 며느리이자 JK클럽의 사장이며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라는 명예를 포기하지 못해 겨우 자신을 찾아온 아들마저 잔인하게 부정하며 내친다. 달콤한 성공에 도취되어 엄마라 부르며 아들임을 인정해달라는 그 당연한 간절한 요구조차 거부하며 심지어 친아들을 칼로 찌르고 있었다. 김인숙이라는 이름 자체가 과거의 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남편 윌셔와 아들 조니 헤이워드를 버리고 얻은 이름이었다. 죄의 이름이었다.

 

“한 번 버린 자식을 두 번은 왜 못 버려?”

 

그녀가 악녀여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인륜도 도리도 모르는 악인이어서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순수했으며 누구보다 착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놓인 환경이 그녀를 그리로 내몰았다. 하필 고아가 된 그녀를 누군가 데려다 준 곳이 이태원의 포주 강미자의 집이었고, 강미자로 인해 매춘을 강요받고, 처녀경매가 끝나고 겁탈의 위기에서 스티브를 죽이고 도망자가 되었다. 그렇게 윌셔와 결혼하고 조니 헤이워드가 태어났다.

 

“그랬다면 그 아이에겐 트라우마 때문 아니었겠습니까? 그 순간 마리한텐 조니가 아들이 아니라 그토록 인생을 꼬이게 만든 누구로 보였을지도 모르죠.”

 

더구나 겨우 두 번째 남편 조동호의 사랑에 힘입어 새로운 행복을 꿈꾸어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공순호(김영애 분)라는 괴물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쩌면 오해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는 두 사람의 악연은 김인숙으로 하여금 인간이 아니기를 강요하며 다시 그녀를 궁지로 나락으로 내몰고 있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인간으로서 당당하고 싶었다. 한지훈 앞에서는 과거의 김마리로 다시 돌아가 있던 것처럼. 그래서 그녀는 인간이어야 했고, 인간이 되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 했다. 그녀가 속해 있는 - 그녀의 남편과 자식이 속해 있는 JK의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녀 또한 괴물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기는 그래서 공순호와 김인숙은 거울에 비친 서로의 그림자라 하는 것이다.

 

“예, 회장님이 미웠습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 무엇보다 경영권을 놓고 견제당하는 기분, 제 친정 공씨집안의 돈으로 조씨 기업을 일으켰으면서도 전 늘 회장님의 보호보다는 견제를 받으며 살아야 했어요. 그래서 저는 강해져야 했습니다. 독해져야 했구요.”

 

김인숙을 결국 괴물로 만든 것은 공순호의 질투심이었다. 그녀가 갖지 못한 것들이었다. 욕심없는 순수함과 선량함, 무엇보다 남편인 조경탁과 가장 사랑하던 아들 조동호가 그 모습을 그리 좋아하고 있었다. 아내이면서 어머니인 공순호가 아니라 김인숙을 더 좋아하고 인정하는 모습에 질투심을 느껴버린 것이었다.

 

그녀 역시 단 한 번도 인간이었던 적이 없었다. JK를 일으켜 세운 두 집안 가운데 하나인 공씨 집안의 딸이었고, 그녀에게는 공씨 집안의 딸로써 공씨 집안의 재산으로 세워진 JK를 소유하고 지배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녀 스스로 그러지 않으려 해도 남편 조경탁에게 그녀는 단지 사업의 파트너이며 경쟁자일 뿐이었다. 인간이고, 여자이고, 아내이기 이전에 경영권을 다투는 경쟁자로써 견제의 대상일 뿐이었다. 조동호와 김인숙이 결혼하는 과정에서마저 공순호가 추진하던 조동호의 결혼상대에 대한 반발로써 조경탁이 김인숙과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었다 할 정도이니.

 

그저 서툰 것이었다. 그녀 역시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이었다. 가진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기에 스스로 괴물이 되어 발버둥을 쳐야 했던 김인숙 만큼이나, 공순호 역시 인간으로써 여성으로써 자기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 조경탁의 불륜에 대해 의심하면서도 차마 대놓고 묻지 못하고, 아들 조동호가 김인숙과의 결혼으로 인해 자기로부터 멀어진 것을 막기 위해 속임수를 써서 조동호가 상속받은 JK메디컬의 지분을 빼앗은 것이 그런 경우였다. 차라리 의심이 나는 것을 묻고 따지기보다 그 의심의 대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말살한다. 그녀가 배우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아파서 울며 전화하는 딸에게 기껏 유학 갔으니 영어로 전화하라며 매몰차게 굴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결국 조현진(차예련 분)을 가장 사랑하여 그녀에게 JK를 물려주려 한다.

 

공순호 역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여자로써,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단지 그녀에게는 JK가 전부였고 그것을 통해서 밖에는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더 강하게. 더 독하게. 그것은 그녀가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였다. 너무나 서툰 그 모습이 한결 잔인하고 난폭하게 - 정확히는 거칠게 표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공적인 사업에마저 개인적인 감정을 쫓는 의외의 나약함일까? 김인숙과 마찬가지로 그 나약함이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조금 더 강했다면...

 

하긴 그래봐야 공순호는 태어나면서부터 황급수저를 물고 나온 원조 로열패밀리다. 그녀는 그러함에도 김인숙이 마지막 카드로 내던진 그녀의 과거와 조니 헤이워드 살해의 범인임을 밝히는 자술서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손까지 떨고 만다. JK와 정가원은 실체가 없다. 있다면 오로지 한 가지 명예, 마지막은 그 명예를 꺾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김인숙의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막장드라마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고 동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인숙의 제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태생의 차이였을 것이다.

 

진향숙마저 오랜 우정에도 불구하고 김인숙의 치부에 대해 자신이 연루되는 것을 막고자 그 모든 처분을 공순호에 맡기려 한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내리는 결정이다. 무엇을 우선해야 할 것인가? 우정이니 사람의 도리니 하는 것은 그 앞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에 비하면 단지 아내 임윤서(전미선 분)과의 관계에 대한 질투심에 엄기도를 제거하려 하는 조동진 쪽이 훨씬 명쾌하다. 조동진이 공순호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다. 가진 자에게는 가진 자만의 방식이 있다. 물론 서순애는 아들 한지훈을 지키기 위해, 김인숙도 역시 한지훈을 지키기 위해 이보다 얼마든지 더 냉정해질 수 있다.

 

마침내 엄기도가 죽었다. 개인적으로 엄기도의 김인숙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기를 바랐는데. 하지만 단지 고아인 김인숙을 이태원 기지촌으로 데려간 데 대한 죄의식으로 오로지 속죄를 위해서만 김인숙을 도우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임윤서와의 관계가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알게 모르게 도와준 키다리 아저씨라는 설정도 좋지만 보다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래도 약하다는 생각이다.

 

온정공원 2교시라고 하는 퍽치기들은 단지 기믹이었을까? 엄기도의 김여사는 죽이지 않았다는 말도 저렇게 김마리와 김인숙이 나뉘어지며 나름의 설득력을 갖는다. 단지 시청자를 헷갈리도록 현혹하려는 의도였을까? 하지만 엄기도에 의해 전해진 당시의 CCTV영상은 조니 헤이워드가 비틀거리면서도 제 발로 건물을 빠져나갔음을 보여준다. 조니 헤이워드가 퍽치기 일당에게 여권을 스스로 넘겨 준 이유. 그것은 엄기도가 한지훈에게 부탁한 재판이 시작되면 김인숙을 변호해달라는 부탁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미 김인숙은 마지막을 예고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마저 포함해 이대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겠다고. 아들이 죽었는데도 슬퍼하지조차 못하고 오히려 독기를 드러내야 하는 그녀에게 브레이크란 없다. 부딪혀 깨지거나 깨뜨리거나다. 깨지는 것이야 각오한 것이니까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 다음주 한지훈이 활동하게 될 내역일 것이다. 김인숙의 무죄를 주장하며 김인숙의 입장에서 완고한 구조와 맞서 싸울.

 

아무튼 그동안 대사 위주로 정적으로만 이루어지는 드라마가 모처럼 액션도 나오고 동적으로 활기를 띄게 된 것이 좋기는 하다. 매 회마다 이런 장면들이 하나 정도씩은 들어가 주었어야 할 텐데. 간만의 액션장면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이런 게 진작 있었어야 했다.

 

여전히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전개와 구성이 놀랍다. 이제 다음주 2회면 끝이다. 원래 이번주 16회로 끝냈다면 어제의 마지막회는 한결 짜임새있게 완성될 수 있었을까? 늘려서 이 정도라면 원래는 얼마나 타이트했다는 말일까? 흥미를 잃지 않는다.

 

끝이 다 와 간다. 원래는 이미 끝났어야 했을 터다. 기다린다. 그 대미를. 멋진 마무리를. 한 주 남은 시간이다. 멋진 대미를 기대해 본다. 일주일은 가장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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