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까임방지권"이라 한다. 그것은 누구에 대한 것일까? 일단 까이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권리라면, 까이는 의무도 존재하는 것일까?
바로 그게 문제다. 네티즌은 당연히 연예인을 깐다. 연예인은 당연하게 네티즌에 까여야 한다. 그런데 가끔 까여서는 안 되는 대상이 있다. 은근슬쩍 사람 좋은 척 특혜를 내린다.
"까임방지권을 줘야겠다."
이게 뭐와 같느냐면 민주화시위하는 사람들 때려잡으면서 말 잘 듣는 시민들에 모범시민상 주던 독재정권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독립운동가 대려잡으면서 말 잘듣는 앞잡이들에게는 특혜를 아끼지 않는다.
"보라! 말 잘 들으니 이렇게 잘해주지 않느냐?"
자기가 무도함을 가리려는 것이다. 단지 무도한 폭력에 불과함을 감추려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닌 경우도 있다. 선량하고 성실하고 충성스런 경우에 대해서.
이 얼마나 오만무례한 짓거리인가?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깔 권한을 주었는데? 비판이 아니다. 까는 거다. 비하하고 모욕하고 공격하는 것. 뭐가 그렇게 잘났고 당연한가?
더 웃기는 것은 그놈의 까방권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 꼴리는 대로라는 것이다. 좋게 까방권이라 해놓고 틀어지면 바로 비난 들어간다. 이유인 즉,
"자기가 까방권을 날려버렸다."
곧죽어도 상대 탓이다. 그냥 까고 싶었을 뿐인 것을.
아주 어린아이들에게 칼을 쥐어준 것도 아니고. 이놈저놈 되도 않는 것으로 휘두르며 돌아다니는데.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이런 걸 쓰레기들이라 하겠지?
결국은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의 문제라는 것이다. 집에서. 혹은 학교에서. 한국사회에서는 그놈의 "까임"을 훈계나 가르침, 혹은 징계와 같은 뜻으로 쓰이니까. 대중이 연예인 머리 위에 있다.
타블로 때 그렇게 반성한다 했었지? 아니 반성한 사람도 시늉만 한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타진요를 욕하는 것으로써.
가장 첫째 전제부터 생각해 보기 바란다. 뭐하자는 까방권인가? 누가 준 까는 권리이고, 어디서 비롯된 까이는 의무이고, 어떻게 해서 까임방지권인가?
인간에 대한 예의외 존중이 공존의 첫째 조건이다. 민주주의라는 것도 오롯한 개인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한다. 어째서 지금 한국사회는 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사실 지난정부, 지지난정부서부터 느껴 온 문제였다. 어느 한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의 폭력성에 대해서. 그것이 정의로 포장되는 것에 대해서.
"정의란 무엇인가?"
책이 많이 팔리면 그만큼 바뀌는 것이 있을 줄 알았지만. 책은 읽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해도 행동은 아니다. 웃는다. 참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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