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자기복제...

까칠부 2011. 8. 4. 13:05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한 사람이 평생 쓰는 단어의 수가 몇 개나 될 거라 생각하는가? 의외로 그다지 많지 않다. 대신 적은 가지수의 어휘와 문장에 여러 의미를 담아 '표현'하게 된다.

 

과연 나는 몇 가지 단어와 문장과 배열을 통해 글을 쓰고 있을까? 그것도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상당히 적은 단어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조금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내 글쓰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단어가 단순하고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거든. 구성도 뻔하고.

 

음악은 언어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그것을 멜로디와 가사, 연주에 담아 들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한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의 가지수는 몇 가지나 될까? 남의 말이나 표현을 빌리지 않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 했을 때.

 

결국 음악인이 자신이 만든 음악을 내놓을 때는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에 내놓을 것이다. 만일 좋지도 않은데 단지 대중이 좋아하니까 거기에 맞춰 내놓는다면 그것은 거짓이겠지. 그냥 팔아먹기 위한 상품에 불과하다. 역시 한 사람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스타일이란 또 몇이나 있을까.

 

당장 나 역시 누군가 늘 쓰는 단어와 문장을 빼고 쓰라고 해도 - 물론 쓰려면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쓴 글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과연 내가 의도한 바대로 제대로 내용이 전달되었는가 나 자신이 스스로 알지 못한다. 내가 쓰는 말이 아니니까.

 

그래서 음악을 들어도 멜로디나 리프 혹은 비트를 들으면서 누가 쓴 노래인가 알아맞추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매우 대단한 것이다. 아무리 히트곡이 많아도 멜로디만 듣고 누구 노래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데 가만 듣고 있으면 이것 누가 썼는지 알 것 같다.

 

대가들이 그렇다. 고흐의 그림에는 고흐만의 개성이 녹아 있다. 고갱의 그림에는 고갱만의 개성이라는 이름의 습관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림도 진위를 판별하고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도 과연 그 작가가 자주 쓰는 표현인가 아닌가를 가지고 위작을 판별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미 자기만의 스타일을 정립한 대가들의 몫이다. 그도 아니고 기존의 스타일을 쫓아가느라 급급한 사람들은 매번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과연 한 귀에 누구의 음악인 줄 알겠다 하는 것이 나쁜 것인가? 아니면 아무리 들어도 누구의 음악인지 모르겠는 그런 음악이 더 좋은 것인가? 도대체 자기복제라는 말이 왜 나왔는가? 확고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그것이 반복되어 쓰일 때 그것은 자기복제인가? 그러면 훌륭한 음악인은 매번 다른 장르, 다른 스타일을 일부러라도 찾아서 해야 하는가?

 

사실 이 자기복제라는 말도 조금 우스운게, 조금 비슷하다 싶으면 표절이고 복제다. 그것이 어떤 확실한 근거가 있고 해서 복제고 표절이 아니라 그냥 느낌이다. 얼마나 비슷한가? 얼마나 같은가?

 

아다치 미츠루만 하더라도 늘 뻔한 플롯이고 구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다치 미츠루가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이야기의 구도일 것이고, 다만 그 안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변주를 한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매번 그의 작품을 사서 읽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외적인 스타일의 유사성이 아니라 그 내용일 것이다. 얼마나 그 내용에 충실하고 만족하는가.

 

쓸데없는 논란이다. 정히 그같은 스타일의 음악이 싫으면 다른 사람 음악을 찾아 듣던가. 세상에는 음악의 장르 만큼이나 다양한 음악과 음악인들이 있다. 자기가 진심으로 좋다고 생각해서 내놓은 것인데 다른 스타일로 하라? 다른 장르를 해보라? 거짓말을 권하는 사회도 아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자기가 전할 수 있는 진심을.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아티스트의 지위란 단지 내가 원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주크박스와 같은 것이니. 동전 누르고 버튼 누르면 그 음악이 나와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가수다>와 같다. 신청곡 있으면 알아서 좋아할만한 스타일로 편곡을 해서.

 

아무튼 결론은 음악이란 언어라는 것. 메시지라는 것. 대중에 전하고 싶은 그의 생각이고 마음이고 감정인 터다. 그것을 내 입맛에 맞추라. 듣지 않겠다는 소리다.

 

하긴 TOP밴드도 조금은 인기를 모으다 보니 출전밴드에 대고 그러더라. 그런 음악 대중적이지 못하니 이런 음악을 해 보라.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중음악이 획일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중이 음악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통제하고 제한하려 든달까?

 

음악인은 음악을 하고 대중은 그것을 듣는다. 좋으면 듣고 싫으면 만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오지랖이다. 내가 김어준 싫어하게 된 이유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음악인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