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흔히 '넝쿨째 들어온다'라고 했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복이 따라들어온다는 뜻으로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쓴다. 하지만 과연 호박에 딸려온 넝쿨이란 반갑기만 한 것인가? 수박을 따는데 길게 딸려오는 넝쿨이란 어쩌면 처치곤란한 거추장스러운 혹일 수도 있다.
드라마는 어쩌면 아주 단순한 한 가지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제라도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떠할 것인가? 아주 어려서라면 잃었던 가족을 다시 찾은 것이니 마냥 기쁘고 고마울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반가운 감정 만큼이나 어색함도 커져간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며 다른 인연과 기억을 만들어왔다. 그것이 서로 부딪힌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전통적인 고부간의 갈등이 더해진다. 어색한 만남 가운데 더 어색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만남이 있다. 30년간의 해후라고 하는 감동이 고부간의 갈등으로 짓궂은 긴장을 더한다.
돈 잘 버는 고아가 이상형이라 했었다. 시집살이는 죽어도 싫다. 자신의 친정어머니마저 올케에게 시어머니노릇을 하는 것이 그리도 보기 싫다. 방귀남(유준상 분)과 결혼하면서 여주인공 차윤희(김남주 분)이 남들에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바로 방귀남에게는 친부모가 안계시다는 것이다. 길러준 양부모가 있기는 하지만 외국에 있고 그다지 오가는 것도 없다. 그녀가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극중 드라마 '귀신은 뭐하나'의 막장스러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그같은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극적 요소를 심화시키는 장치다. 그런데 하물며 서로 앞집에 살면서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아 뒤에서 험담하던 상대가 자신의 며느리이고 시어머니다. 과연 그토록 서로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던 차윤희와 엄청애(윤여정 분)가 그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어차피 3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한결같이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가족이었다. 굳이 어려서 헤어진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방귀남의 캐릭터 자체가 진실하고 순수하다. 그들 사이에 다른 갈등이 있을 까닭이 없다. 사소한 오해나 작은 다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실제 지금까지 드라마를 이끌어 온 것도 장차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될 차윤희와 엄청애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었다. 굳이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시어머니라는 존재에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차윤희와 그런 차윤희를 전혀 달갑게 여기지 않는 엄청애의 캐릭터만으로도 앞으로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기대와 긴장을 높이게 된다.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했다. 방귀남과 방장수(장용 분)가 서로가 오래전 잃어버린 가족임을 확인하기 위해 고아원을 찾던 그 순간 차윤희와 엄청애는 엄청애의 세 딸 일숙(양정아 분)과 이숙(조윤희 분)과 말숙(오연서 분) 등과 더불어 명품가방을 두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감정의 날을 세우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제 방귀남과 방장수가 부자지간임이 밝혀지려 하는데 서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될 이들은 과연 어찌할 것인가? 일숙 등의 세 자매들과도 올케와 시누이 사이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방귀남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어떤 가족이든 방귀남의 아내로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차윤희의 다짐 또한 진심일 것이다. 드라마가 예고된다. 말 그대로 드라마다.
가족이 모여 함께 보기에 적당한 시간대다. 아직 밤도 깊지 않고 주말이라 여유도 있다. 가족이 모여 가족을 생각한다. 전혀 생소한 - 전혀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다투고 갈등하며 하나의 가족으로 완성되어 간다. 말이 시어머니고 며느리이지 엄청애와 차윤희란 서로 남남일 것이다. 엄청애의 딸 방일숙의 시어머니인 남남구(김형범 분)가 그것을 보여준다. 아들이 불륜을 저질렀는데 불륜의 상대가 지어준 집으로 인해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온 고마운 며느리조차 외면한다. 굳이 일숙이 아니더라도 아들 남남구와 인연이 있고 그로 인해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된다면 그가 곧 며느리다. 아들과의 관계가 끝나는 순간 그는 이미 남인 것이다. 차윤희와 엄청애는 전혀 남이었다가 이제 서로 가족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이미 단초는 있다. 엄청애가 아들을 사칭한 사기꾼에게 당한 사실이 드러나고 차윤희가 드라마제작현장에서 감독에게 모욕을 당하던 그날, 그들은 함께 술을 마시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있었다. 엄청애는 차윤희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차윤희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고 했을 때 그녀는 차윤희의 계획을 지지해주고 있기도 했었다.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인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다만 차윤희의 경우 시어머니이기도 한 친정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맹목이 걸린다. 차윤희로 하여금 시어머니라면 질색을 하도록 만든 장본인 가운데 하나다. 친정어머니 한만희(김영란 분)과 올케 민지영(진경 분)의 관계 또한 그래서 중요하다.
하여튼 이것도 묘한 고부관계일 것이다. 노골적으로 아들편을 들며 시어머니로서 위세를 보이려는 전형적인 시어머니 한만희와 조곤조곤히 그럼에도 할 말 다 하고 사는 며느리 민지영의 관계란. 의외로 속에 감추는 것 없이 할 말 못할 말 다 하고 산다. 서로를 끔찍이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래서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며느리 민지영을 인정할 수 있고, 아들 차세중(김용희 분)과 차세광(강민혁 분)에 대한 집착을 덜 수 있을 때 이들도 서로 화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다시 여주인공 차윤희의 관계와도 이어진다.
주변의 관계 역시 매우 쏠쏠하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나쁜 여자 방말숙은 어쩌면 한 번 큰 코 다칠 것 같고, 여자이기를 잊어가고 있던 방이숙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아닌 척 하면서도 천재용(이희준 분) 역시 자신의 입으로 좋아하는 상대에게만 장난을 친다고 벌써부터 고백한 바 있었다. 하는 말은 참으로 똑똑하고 옳은데 허당기가 있는 방장수의 막내동생 방정배(김상호 분)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띠동갑의 어눌한 아내 고옥(심이경 분), 무엇보다 방귀남이 미아가 되는 과정에서 엄청애의 바로 아랫동서 장양실(나영희 분)의 감추어진 비밀이 흥미를 자극한다. 그녀가 그토록 방귀남이 부모를 찾는 것을 방해하려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장양실과 관계해서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가족드라마에 미스테리의 요소를 더한다.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 포근한 가족의 정에 흐뭇해한다. 그러면서도 가족이라고 하는 진정한 의미를 생각케 한다. 전혀 작위적이지 않은 진지하기까지 한 자연스러운 장면과 대사들이 더욱 드라마에 몰입하게끔 만든다. 단순히 작가에 의해 쓰여진 허구의 이야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TV너머에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강부자와 장용, 윤여정, 유지인, 양희경, 김영란 등의 베테랑들의 연기는 이미 연기가 아니다. 그들의 대사와 몸짓들을 따라가는 사이 어느새 필자 또한 드라마 한가운데 있다.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가 유쾌함과 진지함의 경계에서 드라마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아무튼 어쩌면 바로 주제였을 것이다. 그토록 타박하고 못마땅해하면서도 정작 맞선에서 차이고 돌아왔을 때 여전히 막내인 엄순애(양희경 분)의 편을 들어 그녀를 찬 상대를 욕하던 엄청애와 엄보애(유지인 분)에게서. 아무리 밉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쨌거나 가족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서도 여전히 엄순애는 언니들의 사랑스러운 막내일 뿐이다. 서로 못된 소리도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바로 동기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마냥 편들어주는 것. 스스로도 뚱뚱하다 생각하면서도 남이 말하면 그저 한목소리로 성토할 수 있는 그 맹목과 다정함. 그것이 독이 되어 한만희는 아들 차세중을 망치고 며느리 민지영과 대립한다. 일숙 또한 어머니를 위해 남편과의 이혼을 속이고 부모의 집으로 품을 찾듯 찾아 들어간다. 바로 그런 이유없는 것이 가족 아니겠는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그 웃음이 좋았다. 짓궂게도 웃고, 공감해서도 웃고, 유쾌해서도 웃고, 흐뭇해섣 웃는다. 삶이란 울고 화낼 일도 많지만 웃고 즐거워할 일들도 많다. 슬퍼서 울고 아파서 우는 가운데서도 사람은 웃을 일을 찾으려 하고 웃음으로 넘기려 한다. 진정으로 기뻐서 웃는다.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서도 희망이 있다. 기분좋게 만든다. 드라마를 보는 중에도 그리고 보고 나서도 한참 기분이 좋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가족을 잃은 나머지 가족의 마음이 절절하다. 어려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30년 세월이 아프도록 가슴을 후벼온다. 그럼에도 비극에 천착하기보다는 웃으려 한다. 차라리 자신들에 사기를 친 젊은이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처럼. 희망을 버리지 못해 절망 속에 산다. 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평생 가슴에 묻지조차 못한 채 자식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일그러진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위로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방귀남처럼 우연처럼 운명처럼 마침내 오랜 기다림의 보답을 받게 된다.
차윤희가 보여주는 드라마외주제작의 현실이 참으로 흥미롭다. 어쩌면 <넝쿨째 굴러온 당신>역시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지지난주 종영한 타방송사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패러디한 '왕을 품은 중전'이라는 제목에서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당시 다른 방송사들이 느꼈을 당혹과 좌절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드라마 제작PD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새삼 감탄한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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