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성형논란을 보고 있으면 우리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알 수 있다. 성형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미 고대에도 돌로 이마를 눌러 반듯하게 눕히거나 하는 원시적이지만 나름 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한 성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
그런데 그걸 못 참아하는 것이다. 왜?
"천연이 아니잖아!"
마치 도미를 먹는데 그게 자연산인가 양식산인가를 따지는 것처럼.
실제로도 보면 성형을 가지고 뭐라 문제삼는 사람들 가운데 성형여부를 두고 자연미인을 찾고 하는 경우가 거의 태반이다. 누구는 성형을 했으니 의학의 힘을 빌린 가짜이고, 누구는 성형을 하지 않았으니 자연미인이라 진짜이고... 그래서 어떤 성형을 어떻게 했는가의 여부보다는 성형을 했는가의 여부만을 놓고 따진다. 심지어 치아교정까지도 얼굴의 형태를 바꿨으니 성형이라...
이 얼마나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인가. 더 지독한 경우는 화장까지도 인정하지 않는다. 화장을 지우고 나서야 민낯을 보고서 미인인가를 결정한다. 화장을 하고 예쁜 화장미인은 물론 패쓰, 성형을 해서 - 설사 그것이 교정일지라도 - 예쁜 미인도 패쓰, 오로지 순혈, 유전자의 혜택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예쁜 사람만.
내가 성형논란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이유는 그래서다. 굳이 옛날 사진을 들추어가며 지금 모습과 비교하고, 지금만 못한 옛날 모습을 비웃고 조롱하고, 심지어 사실로 확정되지 않은 추측에 대해서마저 마치 기정사실인 양 욕하고 비난하고. 더 악랄한 인간들은 오히려 동정하는 척 아닌 척 그런 사실들을 퍼뜨린다. 같잖은 우월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 한 마디를 덧붙이며,
"우리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이 얼마나 같잖은 수작인가? 그런 인간이 남의 얼굴 가지고 이런저런 상상력이나 발휘하며, 굳이 필요도 없는 옛날 사진 들춰내서 비교질하고 그러나? 겉생김에 별 상관을 않는다면 굳이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가며 옛날 모습을 찾아 비교할 것 없이 지금의 모습만으로 판단하면 그만일 것이다. 예쁘거나 못생기거나 상관없다면 과거의 모습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러나 그게 아니니까.
비유하자면 처녀막재생수술에 대한 뭇남성들의 증오와 같다고 할 것이다. 왜 처녀막재생수술에 그리 민감하느냐? 처녀를 감별할 수 없게 되니까. 자기야 막 놀아도 결혼은 처녀랑 하고 싶은데 처녀막재생수술을 하고 나면 처녀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인지 아닌지 처녀막 말고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내려 별 우습지도 않은 유사과학까지 동원하고. 아마 책까지 있었지?
즉 한 마디로 그런 비교를 하는 이면에는 앞서 말한 순혈에 대한 집요한 추구가 있는 것이다. 성형을 하지 않은 순혈의 외모에 대한 집착이다. 그래서 순혈이 아닌 것들을 혐오하고 그래서 저리 증오하여 쫓아다니며 밝히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그런 주제에 또 입만 열면 외모지상주의...
더 고약한 것은 그렇게 성형사실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정작 성형사실을 감추려 하면 그것 가지고서도 또 비난하고 한다는 것이다. 성형사실이 밝혀지면 그리 욕을 먹을텐데 누가 좋다고 밝히려 하겠는가? 어차피 밝혀도 욕먹고 밝히지 않아도 욕먹는데. 그러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순혈이니까.
그렇지 않은가? 백인들만 다니는 학교에 백인이 아닐지도 모르는 놈이 들어와 다니면 어떻게 해서든 18대 조상까지 뒤져서라도 밝혀내고 마는 것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도 족보를 뒤져서 가계에 유대인이 있으면 유대인이라고 수용소에 보내고 처형하고 했었다. 어차피 성형을 하지 않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이면 당당히 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할 것을.
그렇게 억지로 밝히고 싶지 않은 사실을 밝히도록 내몰고는 또 그것 가지고 비난질. 내가 강심장을 싫어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다. 그것을 보고 말았다. 설사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다손치더라도 출연 연예인의 그다지 밝히고 싶지 않은 예전 사진을 갖다가 비교하며 놀리고 당황하는 모습에 즐거워하는 것을. 그 가운데는 성형에 관련된 사진도 있었다. 당사자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따위 저열한 대중의 속물적 욕구에 충실한 프로그램따위. 그런데 이제 20살 갓 된 여자아이돌 입에서 성형고백까지 이끌어냈으니.
그런 프로그램을 좋아라 보는 대중들이나,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이나,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앉았는 강호동, 이승기나, 그 밖에 그들의 협력자들이나, 제대로 우리 사회의 왜곡된 단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나마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외모 가지고 가장 많은 모욕을 당하고 조롱을 받는 모 걸그룹의 경우도 외모와는 상관없이 좋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더 고무되는 것은 성형이야 어찌되었든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늘었다는 것이다. 과거야 어찌되었든,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현재의 모습에 충실하라. 순혈따위, 천연따위, 완전무결한 유전자형 자연미인따위.
물론 자연미인이면 좋기는 하다. 그러나 아니면 또 어떤가? 과거의 모습이 어떠면 또 어떤가? 예뻐지고 싶었고 그래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일단 예뻐졌다. 보기 좋고 사랑스럽다. 그러면 좋은 거고 사랑스러운 거다. 보다 더 솔직하게. 구애됨 없이.
그러나 아직까지도 세상에는 참 뭣같은 인간들이 넘치는 터라, 더구나 뭐라도 되는 양 쓸데없는 자만심까지 가지고서는,
"성형 어쩌고 블라블라블라..."
"외모지상주의 블라블라블라..."
조금 더 유식한 척 하는 인간들은,
"자본주의 어쩌고 블라블라블라..."
장담하건데 진짜 다른 사람 외모 안 보는 사람이면 저런 데에도 별 관심이 없다. 남 외모에 항상 신경을 쓰고 하니까 성형여부가 그리 궁금한 거다. 그래서 그리 찾고 비교하고 쫓아다니며 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그런 주제들이 또 남 가르치려들기는.
이제 와서는 거꾸로 성형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가가 외모지상주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재는 척도라 하겠다. 성형을 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나마 순정주의는 넘어섰다 할 수 있으리라. 갈 길은 멀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야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니.
하여튼 가장 짜증나는 인간들이 쓸데없이 말많고 정의롭고 도덕적인 인간들. 똑똑하기까지 하면 아주 제대로다. 정히 그렇게 성형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가? 그러면 스스로를 돌아보라. 무엇이 그리 성형에 집착하게 하는지. 지혜란 먼저 자기를 돌아보라 있는 것이다. 쓰레기들. 같잖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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