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소료 후유미 - 체사레...

까칠부 2012. 5. 21. 19:44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전전작 <마르스>를 읽으며 어쩌면 소료 후유미의 타입은 체사레 보르지아가 아닐까? 난폭하고 아름답고 강렬하다. 전작인 <영원의 안식처>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위험한 남자였다, 이삭은.


예전 그런 여자를 알고 있었다. 이 여자는 뜻밖에 생쥬스트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를 위해 역사라는 학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당시까지 아직 혼자였다. 생쥬스트같은 남자가 아니면 자신을 반하게 만들지 못하리라.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20세에 이미 모든 것을 이룩한 그에 비해 한참 모자른 자신을 한탄하고 있었다.


아마 안타깝다면 나 역시 역사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럴만한 대상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워낙에 남자의 역사이다 보니 매력적인 여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하기는 남자라면 그런 여자 타입의 여자가 조금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여자이기에 느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을가?


만화 자체는 그다지다. 체사레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다. 더구나 작중 화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안젤로 또한 지나치게 정적이다. 무엇보다 소료 후유미의 작품 자체가 무채색이 강하다. 무채색의 작품이 무채색의 체사레와 만났다. <마르스>의 레이는 무채색이지만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안젤로와 체사레를 하나로 합치는 편이 좋았다. 밋밋해서 6권까지 읽는데 한참의 노력이 필요했다. 소료 후유미도 정체기인 것일까?


아니 아니다. 아마 어쩌면 내 추측대로 사랑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지고 보니 그 열정이 넘쳐 정작 그림에는 표현되지 않은 것일 게다. 맹목이야 말로 가장 지독한 무채색일 것이다. 확실히 작품속 체사레는 내가 아는 어떤 체사레보다 매력적이다. 안젤로가 아닌 작가가 개인적 감정으로 체자레를 보고 있다.


역사만화를 읽는 한 가지 불만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끝을 안다.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안다. 그다지 아름답게 끝나지는 않는다. 체사레 보르지아의 성장과 투쟁, 그리고 성공의 과정 역시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안젤로는 역시 체시레의 말처럼 무의식에 의해 그를 배신하게 될까?


처음에는 약간 와타나베 타에코의 느낌도 있었다. 그림체가 소료 후유미치고 상당히 여성스럽다. 와타나베 타에코가 정색하고 약간 길죽하게 그리면 비슷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아직 와타나베 타에코는 신센구미에 빠져 있지. 보다 말았는데. 다시 챙겨봐야겠다. 역시 사랑에 빠진 탓이다. 나쁜 남자를 여자는 좋아한다.


안젤로가 묘하게 여성스럽게 묘사되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림체 자체가 여성스러워진 가운데 안젤로가 어쩌면 작가의 체자레에 대한 마음을 대변할 것이다. 그것이 불편한 이유의 하나. 사내자식들 연애놀음을 내가 보고 있어야 할 까닭이 어디 있을까? 당시 동성애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궁금해진다. 이후 체사레 보르지아가 보이는 파격적인 행보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 안젤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체사레 보르지아의 비참한 최후는 또한. 덕분에 줄리아노 데 로베레와 조반니 디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이상하게 묘사되었다. 나중에 사보나롤라가 참 대단한 일을 해낸다. 이건 또 어떨까?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소료 후유미와 야치 에미코는 항상 기다리며 일일이 챙겨본다. 요즘 일본만화가 가운데 빼놓지 않고 작품을 챙겨보는 것은 이 두 사람에 더해 아다치 미츠루밖에 없다. 와타나베 타에코의 <바람의 빛>도 한 번 몰아서 보기는 해야 할 텐데...


말했듯 그다지 만화로서는 재미없다. 오로지 체사레 보르지아라는 개인에 대한 매력을 쫓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 체자레 보르지아가 시작이자 끝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나의 경우 체사레 보르지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소료 후유미에 대한 기대가 체자레 보르지아를 이겼다.


아마 국내정발은 안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대여점까지 망하며 더 이상 만화책 수입은 돈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저 한숨만 흘릴 뿐. 뭐 그렇다고 사서 볼만한 만화는 아니다. 안타까운 것이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