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텍스트 읽기...

까칠부 2010. 1. 15. 13:09

누군가 전에 그런 말을 했었는데.

 

선 하나를 더 그으면 예술이고 두 개를 더 그으면 종교다.

 

괜하게 넘겨짚어 생각하지 말라는 건데,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참 신통력 있는 사람들이 많다. 뭔놈의 사람 속을 그렇게 잘 꿰뚫어보느냔 말이다.

 

"너 뭐지?"

 

기껏 글이라고 올려놓으면 글의 내용보다는 글 쓴 사람이 누구인가부터 판단하려 든다. 전에도 말한 관계지향적 사고다. 글을 쓴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부터 판단한 다음 그 말이나 행동을 판단한다.

 

예전 특정 정치사이트에 있을 때도 내가 그래서 가장 싫어했던 말이 진정성이다. 아, 그놈의 진정성...

 

진정성이라는 게 뭐냐면 얼마나 말에 신뢰가 가느냐 하는 것이다. 즉 그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개별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그 당사자에 대해 먼저 판단하고서 그 말과 행동을 판단하겠다는 거다. 한 마디로 유명하고 실적도 있는 학자면 설사 성폭행을 했어도 한 게 아니라는 거지. 유명한 정치인이면 비리를 저질렀어도 비리가 아니라는 것이고.

 

한 마디로 텍스트읽기가 안된다는 거다. 텍스트를 읽기 전에 먼저 선험적으로 판단해 버리고 마는데 도대체 뭔놈의 텍스트읽기가 되나?

 

사람은 근거가 있어서 판단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근거가 있어도 나중 가서는 판단이 근거를 만든다. 먼저 판단을 내리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거기에 꿰어맞춰지게 된다.

 

먼저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떻다... 과연 그 글에 대해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선험적인 판단... 때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선악을 판단할 때는 그렇다. 성추행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성추행이란 자체가 악이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겪어서가 아니라 성추행이라는 자체가 악이니까.

 

문제는 그 선험이 행위에 대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가해진다는 것이다. 말한 관계지향적 사고다. 그 사람이 어떠한가... 그러면 그 사람에 따라 행위마저 결정된다. 같은 말이나 행동을 했어도 그 당사자에 따라 판단이 전혀 달라진다.

 

그리고 그런 경험에 비추어 적용되는 진정성...

 

선험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에 맞춰 그 말과 행동을 판단하고... 그게 또 옳고... 나머지는 그에 끼워맞추면 된다. 이미 결론이야 내려져 있으니.

 

세상에 가장 쓸모없는 인간들이 어설프게 똑똑한 인간들이다. 차라리 아예 똑똑하지라도 않으면 주어지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런데 어설프게 똑똑한 인간들은 쓸데없이 머리를 굴려댄다. 이럴 거야, 저럴 거야, 그러면서 예술도 하고, 종교도 만들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본질은 저리 멀리 날아가 버리고.

 

내가 넷좌파, 넷개혁, 넷민주화 어지간하면 비웃는 이유가 그거다. 실제 그런 인간들 올리는 글 가운데 쓸 것이라고는 한 줌이나 될까다. 앞서 말한 텍스트읽기가 전혀 안되거든. 그런 인간들이 뭔 글을 쓰나?

 

모든 전제는 항상 사실이어야 한다. 사실을 전제로 그것을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주위에 지지하는 사람들 없으니 설문조사는 거짓이다... 정확히는 믿고 싶은 것이겠지. 믿고 싶은 추측과 실재하는 사실을 혼동하는 것부터가 바닥이라 하겠다. 믿고 싶은 것과 실재하는 사실조차 분간 못하는.

 

아무튼 내가 최근 게시판활동을 않는 것이 그래서다. 도대체가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아? 하여튼 너무 잘 알다 보니 글을 쓴 의도까지도 꿰뚫는다. 한 줄만 봐도 안다는데 내가 뭐한다고 거기 어울리나?

 

한국에서 토론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이것 때문이다.

 

"넌 뭐지?"

 

이미 상대를 단정짓고 판단하려 드는데 뭔 놈의 토론이 되겠는가?

 

"너는 뭐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야!"

 

과연 토론이 될까?

 

하긴 그래서 또 내가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에 대해 항상 투덜거리며 하는 말이 있다.

 

"세 줄 넘어가면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읽지 않고 리플부터 단다."

 

물론 설마 세 줄 읽고 말았을까? 그러나 이미 그 세 줄에서 - 어쩌면 제목에서 판단은 끝나버린 것이다. 선험적으로 판단하고 나머지는 그를 위한 근거일 뿐이다. 제목 하나만으로도.

 

정말 상대하기 난감하다. 본문에 뻔히 있는 걸 반박이라고 달지 않나, 본문에서 제기한 개념에 포함되는 것을 두고 반박이랍시고 하지 않나, 전혀 상관 없는 것을 들이밀지 않나, 그러나 역시나,

 

"너 뭐지?"

 

그러면 나더러 어쩌라고? 내가 또 블로그에 리플을 안 다는 이유다. 일일이 상대하자니 이제는 성가셔서. 솔직히 이게 돈이 좀 되면 고객관리차원에서라도 하겠는데 블로그가 돈이 안 되더라. 따라서 당연히.

 

하여튼 세상에는 그리 똑똑한 인간들이 많더라는 것이다. 관심법을 쓰는 사람들도 많고. 아마 우리 부모님보다도 나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내 여자친구보다도 내 신체적 특징을 더 잘 알 것 같다. 어쩌면 내 주위에 감시카메라라도 붙여놓은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을 확신하는 순간 소통은 끝난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음을 전제할 때 - 즉 소통이란 불가능함을 알 때 소통은 이루어진다. 그래야만 그래도 남의 말에 귀도 기울이고 하니까.

 

"넌 뭐지!"

"넌 누구야!"

 

뇌가 콘크리트라는 선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그런 어설프게 똑똑한 인간들. 해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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