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연히 유현상의 인터뷰를 보았다. 거기서 백두산이 해체된 사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뭐랄까... 참 한국스럽달까?
발단은 유현상이 그래도 기왕에 헤비메탈을 시작했으니 라우드니스처럼 해외에도 진출해보고자 2집 앨범의 상당수를 영어가사로 채우면서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그것을 영어가사를 이유로 금지곡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니,
당장 공연을 하려고 해도, 방송에 출연하려 해도, 도무지 2집 가운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백두산 2집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것이 그나마 우리말가사였던 주연배우였었다. 백두산에 관심이 없던 나도 이 주연배우와 Up in the Sky는 기억한다.
더구나 바로 2집을 내고 대마초 사건이 터졌다. 김태원이 잡혀들어간 바로 그 사건이다. 그로 인해 하여튼 당시 락을 한다는 밴드나 뮤지션은 모조리 초토화되었었는데...
나도 들은 바 있었다. 당시 대마초 사건이 터지고 경찰들이 락씬을 아예 뒤집어 버렸다고. 증거나 증언 없이도 무단으로 쳐들어가 뒤지고 뒤집고 심지어 고문도 하고...
백두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유현상은 원래 당시까지도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었다. 오로지 음악만이 전부였던 사람이라 음악에 해가 된다 여겨지는 것은 아예 가까이 하지도 않았고, 대마초는 물론이었다. 그런데 그런 유현상에게까지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잡아서는 어디론가 끌고가 대마초 한 것을 불라고 고문하고, 유현상 뿐만 아니라 김도균도, 한춘근도, 그렇게 경찰에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 고문당하고 그랬었단다. 견딜 도리가 있나?
앨범도 공연 및 방송금지로 묶여, 뭣 좀 하려고 해도 수사관들이 예비 마약범으로 여기고 뒤지고 잡아가고 고문하고 뭘 하지를 못해, 아예 음악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지자 결국 가장 나이가 어리던 김도균이 견디지 못하고 먼저 이탈하고 말았다.
"영국 가서 공부하고 오겠습니다."
이제 백두산의 간판이던 김도균마저 떠나고 나니 더 이상 밴드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유가 있어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남아 있던 유현상과 한춘근에 의해 팀이 해체되었으니...
유현상은 팀이 해체되자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돌 매니지먼트에 대해 배우고 돌아와 이지연과 야차를 데뷔시키며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었고, 영국으로 건너갔던 김도균은 거기에서 팀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돌아와서 임재범과 당시 초유의 슈퍼밴드였던 아시아나를 결성 - 이후 한춘근, 김창식과 백두산 3집을 냈다가 실패하고부터는 락과 국악을 접목시키는 음악적인 실험에 전념하게 된다. 한춘근, 김창식은 각자 연주인으로서 자기 길을 걷다가 몇 년 전 한춘근에 의해 백두산의 이름을 빈 4집이 나오기도 했었고.
결국은 백두산의 해체야 말로 한국 락씬의 슬픈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텐데,
원래 한국에서 락이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어딘가 불손하고, 어딘가 되바라지고, 어딘가 불량해 보이고, 한 마디로 어딘가 이상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머리는 기르고, 옷차림은 단정치 못하고, 하는 음악도 전통적인 가요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하고 있으니,
오죽하면 들국화 1집에 실려 있던 "그것만이 내 세상"이 창법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이고 말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전인권이, 그의 목소리가, 그의 창법이, 그의 노래가, 미숙해서 못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이다. 모든 것은 바르고 성실하고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것. 기존의 질서와 가치에 순응한 바름이고 성실함이고 엄숙함이고 진지함이어야 한다는 것. 거기서 튀어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마초야 말로 가장 확실한 꼬투리였을 것이고.
역대 정권이 그랬다. 아니 특히 군사독재정권에서 그랬다. 독재란 다른 말로 가치의 독점이다. 루이 14세가 말한 "짐이 곧 국가다." 그게 바로 독재다. 그래서 독재자일수록 더욱 엄격하고 더욱 엄숙하고 더욱 진지하다. 성실하고 바르고 도덕적이고. 단지 그게 자기 멋대로라는 게 문제인데,
그래서 박정희도 그랬고, 전두환도 그랬고, 전통적인 어떠한 질서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해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이 젊은이들의 문화이기에 더욱 그랬다. 기성권력으로써 새로운 도전자들은 항상 견제와 경쟁의 대사이었을 테니.
락은 바로 그런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두드러졌기에. 젊은이의 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졌기에. 상당히 도피적이고, 그래도 단정하기는 했던 포크와는 달리 도발적이고 강렬했던, 젊은 열정을 그대로 표현하던 락이란 더욱 그대로 놓아둘 수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정치적으로도 당시 상황이 그러한 이슈를 필요로 하고 있기도 했었고 말이다.
바로 그래서다. 한국에서 유독 락이라면 특별하게 취급당하는 이유, 대중들이며 심지어 락을 하는 뮤지션, 그 팬들까지도 락이라면 뭔가 다른 것이라 여기게 된 이유. 락은 대중적이어서는 안 되며 마니아의 음악이어야 한다고 믿는 마니아까지 나오게 된 이유,
그렇게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독재자의 독단에 의해 락이 철저히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버린 때문이다. 락이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어느새 대중음악 속으로 녹아들어간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락이라면 뭔가 불손하거나, 아니면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이유다.
내가 최근 도덕주의적이고 엄숙주의적인 어떠한 비평가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거든. 당시 군사독재정권과. 자기만의 도덕적인 가치로써 정의하는. 그리고 단죄하는.
독재는 - 권위주의는 항상 도덕주의를 동반한다. 그것도 매우 엄숙하고 엄격한 도덕주의다. 그로써 대중을 압박하고,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강제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것을 정의하고 단죄하고.
아무튼 백두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의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확인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어떠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연예인이 유독 마약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당국이 그것을 원해서 이슈로 터지고 했다는 것. 마약을 해서 잡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미리 단정짓고 저인망으로 훑듯 억지로라도 엮어 터뜨리더라는 것. 필요에 의해서.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당시 한국락의 상징이다시피 했던 최고의 밴드 - 왕의 귀환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진정한 한국 락의 왕이었던 밴드가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진 끝에 무려 22년이 지나서야 그들의 새 앨범을 낼 수 있게 되었으니... 22년의 세월은 백두산 멤버들은 물론이고 그 팬들에게 있어서도 긴긴 기다림의 - 상실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누가 보상할까? 과연 누가?
그러나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도덕주의적이고 엄숙주의적인 잣대로써 개인을 단정짓고 정의하고 단죄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너무나도 정의롭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일 것이다. 대중적으로 인지도도 있고 영향력도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무책임한 한 마디에 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22년만에 낸 백두산의 앨범 "Return of the King"을 들으며 다시 한 번 그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의 잘못인가?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 도대체 바른 것이란, 바른 대중문화란 무엇인가?
개명한 21세기, 민주주의도, 다원주의도, 자유주의도, 모든 근대적인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지금이지만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왕이 귀환한 이때, 왕이 떠나야 했던 그 이유를.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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