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무엇보다 감미로운 복수, 진실을 쥐다

까칠부 2013. 7. 19. 07:05

사람은 누구나 하나쯤 후회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랬더라면. 만일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선택을 하게 된다면 과연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아니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래도 진실했다면 자기에게 조금은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 후회하더라도 자신에 대해 조금은 뿌듯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이 옳았다. 그렇게 했어야 했다. 장혜성(이보영 분)이 12년 전의 선택을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진실하지 못했던 자신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자신의 진실과 진심을 부정당하고 말았다. 조금만 더 당당했더라면. 조금만 더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었더라면. 자신에게 부끄럽지 말았어야 했다.

 

비로소 장혜성은 서대석(정동환 분)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었다. 일부러라도 피해왔던 만남이었다. 얼마전 다시 만났을 때는 그때보다 더한 굴욕으로 서대석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 장혜성은 오히려 서대석을 위해서 내려다보며 그를 희롱하려 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굴욕을 고스란히 다시 돌려주고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오만해지게 했을까? 진실의 힘이었다. 서대석의 거짓을 보았다. 서대석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보았다. 서대석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강하지 않다.

 

하기는 서대석이 그토록 죄를 지은 범죄자를 엄벌하는데 강한 집착을 보인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죄인이 되어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었다. 그 사실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바로잡지 않았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알량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모른 척 눈감고 말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으로 인해 찟기고 짓밟힌 명예와 자존심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것은 옳았다. 목적이 옳다면 그 수단 또한 옳다. 자신은 옳은 행동을 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자신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의 잘못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철없는 아이의 얼굴을 완고한 가면으로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진실이 강한 것을 알았다. 진심이야 말로 무엇보다 강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후회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지금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시. 박수하(이종석 분)가 두렵지 않다. 자신은 당당하다. 속일 것도 숨길 것도 없다. 자신이 박수하를 남자로서 좋아하는 것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스스로 인정했다. 박수하를 좋아한다. 언젠가 사랑의 감정이 식고 서로 헤어지게 되는 순간에 오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애써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속이느라 노심초사하는 시간들이 아깝다. 그래도 지금에 충실하다면 행복했던 기억은 남지 않겠는가 말이다. 후회는 짧고 추억은 길다. 추억이 되지 못하는 감정들만이 후회로 남게 된다. 사랑하지 못했을 때 진정으로 후회하게 된다. 만일 그때 법정의 문을 열리 않았다면 그녀는 더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어차피 그때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밖에 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차라리 지금의 후회가 낫다. 그래도 더 나은 선택을 하고서 후회를 하는 것이다. 단호하다. 차관우(윤상현 분)의 어수룩함은 그같은 맹목적일 정도의 올곧음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국선전담변호사라고 하는 꿈을 향해, 그리고 국선전담변호사로서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그리고 남자로서 마음에 두고 있는 여성 장혜성을 위해. 어리석지 않다. 무능하지도 않다. 장혜성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묻어두라 말하는 단호함에서는 남자다운 강인함마저 느껴진다. 차관우의 그같은 매력을 드러낼만한 에피소드가 없었다는 점이 이제와 아쉬운 점일 것이다. 전지적 박수하 시점의 가장 큰 피해자였을 것이다. 차관우가 장혜성의 눈을 뜨게 만든다.

 

어차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박수하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알면서도 속아준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 넘어가준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진심이 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진실이 진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거짓을 다시 거짓으로 되돌린다. 하지만 두렵다. 아직 박수하는 어리다. 그래서 장혜성이 필요했다. 장혜성만이 박수하가 읽은 진심을 진실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는 박수하가 읽은 진심보다 더 깊은 진실을 추구하고자 한다. 박수하가 자유로워진다. 굳이 박수하가 장혜성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아도 된다. 박수하도 어쩌면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장혜성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미련이라 할 만한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인지도 모르겠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마 이 뒤에는 다음의 말이 생략되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무언가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자신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처분을 묻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장혜성이 답을 한다. 진실을 쫓는다. 진심이 필요없는 진실을. 굳이 박수하가 아니더라도 장혜성도, 차관우도, 신상덕도, 아니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그렇게 역설처럼 박수하의 능력이 사소해지고 만다. 다음주를 기대해도 좋을까?

 

민준국(정웅인 분)이 차관우를 찾아와 전하려 했던 것도 결국은 진실이었다. 민준국이 가장 바라고 그리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진실을 남기려 했다. 진실을 알면서도 박수하는 그것을 장혜성에게 말하지 못한다. 차관우도 그것을 말하지 말라 하고 다짐을 주고 있었다. 진실이 키워드다 장혜성이 서도연에게 감춰져왔던 진실을 전하려 한다. 불편하지만 자신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 후회하더라도 부끄럽지는 않고자. 서도연이 진실을 전해듣게 된다. 서도연의 선택만 남았다. 그녀의 감춰진 진심은 무엇일까. 막바지에 이르렀다. 민준국과 서도연의 진실이 장혜성과 함께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드라마가 끝나가려 하고 있다.

 

귀를 막고 살아간다. 선의는 선의로써. 굳이 감춰진 악의로 드러난 선의를 재단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두는 그런 것을 모르고 산다. 박수하의 헤드폰이 갖는 이유다. 장혜성 앞에서는 헤드폰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누구보다 진실하다. 진실의 끝을 예감한다. 그늘이 없다. 아직 많은 것을 남겨두고 있는 드라마에 어울리는 장면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박수하는 귀를 닫는다. 예정된 예감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래도 지금을 즐긴다.

 

까메오로 출연한 엄기준의 극중 동명의 국선전담변호사 캐릭터가 무척 흥미로웠다. 비용이 정산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무원의 월급까지 변호사 자신의 수입에서 갹출해 지불해야 한다. 그들의  활동에 대한 뒷받침이 너무 부실하다. 의욕넘치던 국선전담변호사가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만다. 그래도 현실을 그리고 싶었을까? 너무 열심히 하는 국선전담변호사는 필요없다. 하기는 거기에 지불되는 모든 인건비나 비용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가는 것이다.

 

아무튼 라이벌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장혜성과 서도연이 이후 다시 첨예하게 맞붙는 장면이 보이지 않았다. 전지적 박수하시점이다. 박수하는 모든 것을 안다. 더구나 서도연은 너무 착하다. 미덕이기도 하다. 민준국마저 어쩌면 악하지 않을지 모른다. 흥미롭다.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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