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 - 한 남자의 타락, 천사가 들려주는 악마의 속삭임

까칠부 2013. 10. 19. 16:02

천국과 지옥이 있다. 욕망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끊임없는 고통과 시련 속에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일까?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냐. 네가 책임질 일이 아냐. 내가 대신 다 책임져 줄게. 문제 없을 거야. 괴로워하지 마. 너는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야."

"너는 죄인이야. 죄를 지었으면 댓가를 치러야지. 사실을 알리고 벌을 받자. 평생을 고통속에 죽은 이를 위해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자. 자신을 용서하려 하지 마."


과연 어느것이 천사의 목소리이고 어느 것이 악마의 유혹일까?


사고는 실수였다. 물론 사람을 친 것을 알고서도 도망친 것은 고의였다. 하지만 당황해서 그랬다는 정상참작은 할 수 있다. 최소한 어느 순간까지 안도훈(배수빈 분)은 자신의 지은 죄의 댓가를 치를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강유정(황정음 분)이 죄를 대신하겠다 나타났다.


물론 그럼에도 강유정의 희생을 가슴에 새기고 검사로서 두 사람의 꿈을 이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가능할 것이다. 강유정이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왔을 때 다시 단절된 시간을 이어가는 것도 제법 감동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강유정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고민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다. 약하기 때문에 편한 길을 찾는다. 더 쉽고 편한 길을 찾아 그것에 자신을 맡긴다. 마음으로야 당연히 양심이 시키는대로 행동하고 싶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힘들게 이루어 놓은 모든 꿈과 희망을 놓아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검사의 자리도, 검사가 되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도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던 모두를 실망시킬 수 없다. 차라리 이대로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처음 사고가 있었던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란 약하면서도 강하기에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동안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 온 그런 식으로 내몰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뒤에 숨어 짓지도 않은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고 죄인이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모멸이다.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안도훈의 그같은 다짐이 관철되었다면 검사자리는 내놓게 되더라도 원래의 정의롭고 다감한 안도훈 자신의 모습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강유정이 안도훈의 죄를 대신해 죄인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 한 편으로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생겼다. 강유정이 말해주었다. 그렇더라도 검사가 되라고. 검사가 되어 꿈을 이루어달라고. 그것이 자기의 꿈이기도 하다고. 그것을 위해 자기가 원해서 희생 아닌 희생을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안도훈은 기꺼이 조민혁(지성 분)이 내민 조건을 받아들여 그녀를 더욱 궁지로 내몰 수 있었다. 어차피 그런 자신이고 그것이 강유정이 바라는 바이기도 할 테니까.


악역이라고 하기에는 안도훈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었다. 갈등하고 또 갈등하고 있었다. 강유정을 사랑하고 있었다. 강유정을 사랑하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유정과 함께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죄가 떠오르고 만다. 강유정의 아버지 강우철(강남길 분)이 그렇게 된 것도 결국은 자신의 탓이었다. 강유정이 감옥에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보호시설로 보내졌다가 죽은 것도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다. 강유정과 자신의 꿈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자신이 해 온 일들이 있었다. 강유정의 어깨에 일그러진 화상자국은 바로 그 흔적이었다. 지울 수 없는 죄의 낙인이었다.


그래도 검사로서 최선을 다하려 했었다. 법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좌절했다. 검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부모는 여전히 돈을 가지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그까짓 것. 강유정이 마침 자신을 놓아주었다. 너무 쉽게 자신을 용서해주고 있었다. 자신도 자신을 용서해주어야 한다. 그의 분노와 좌절은 조민혁에 대한 증오로 이어진다. 모두가 조민혁 탓이다. 조민혁과 자신의 앞에 놓인 현실의 탓이다. 합리화한다. 인간이 악에 빠져드는 과정이다. 그렇게 쉽게 정의롭고 다감하던 청년 안도훈은 야망과 증오에 몸을 내던지게 된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물론 강유정도 악의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의 섣부른 관용이 아이를 망치는 것과 같다. 무한정 용서하고 감싸준다. 자신의 잘못을 돌이킬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바로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안도훈은 충분히 어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상처가 되었다. 자신의 양심따위. 자신의 이상따위. 조민혁의 말처럼 자신의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죄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조민혁은 강유정을 위해 싸우는데 자신은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너무 쉽게 자신을 놓아버린다. 자신에 대한 모멸이며 혐오다. 타락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데서 시작된다.


악마의 유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다 책임져준다. 너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죄를 잊게 만들고, 양심을 잊게 만들고, 자신의 존엄마저 잊게 만든다.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고 저지른 모든 죄가 용서될 때 인간은 자신의 존엄마저 내던져버리게 된다. 천사의 목소리지만 그러나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그에 넘어가고 만 것이 안도훈의 나약함이었다. 어떻게 인간은 타락해가는가. 아직도 타락해가는 과정에 있다. 누가 안도훈을 불행케 했는가.


과연 강유정의 그같은 행동을 보며 죽은 서지희의 부모는 딸을 잃은 상처를 치유받고 있었을까. 조민혁이 보낸 선물까지 돌려보냈다. 그렇게 딸을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의 상처는 깊다. 그런데 원망할 수조차 없다. 원망하기에는 너무 좋고 착한 사람이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딸이 죽었는데 누구에게 원망을 돌려야 할까? 더구나 딸을 죽인 것은 강유정이 아니다. 진실을 알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알아야 할 기회마저 빼앗고 말았다. 거짓된 진실 앞에 원망할 이유마저 잃어버렸다. 차라리 못되고 나쁜 사람이어서 원망이라도 할 수 있으면 그 힘으로라도 살아가련만.


조민혁이 강유정을 괴롭히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조민혁은 천성적으로 악인이 될 수 없다. 이유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안도훈에 비해 조민혁에게는 처음부터 이유따위는 필요없었다. 그냥 원하면 원하는대로 한다. 내키면 내키는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내키는대로 행동했다. 내키는대로 강유정에게 자신의 분노와 원망, 죄책감을 뒤집어씌웠다. 그런데 이유가 생기고 말았다.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나쁜 놈이 된 것 같다. 잘못한 것은 강유정인데. 마지막에 분노한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실제 죄를 지은 것은 안도훈이었을 텐데. 조민혁이 원망해야 했던 것도 증오해야 했던 것도 모두 강유정이 아닌 안도훈이었다. 조민혁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감정만 낭비한 것이었다.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오히려 자신이 죄를 짓고 있었다. 역시 누구의 탓이었을까? 누가 조민혁을 죄인으로 만든 것일까?


사랑이 차라리 증오가 된다. 자기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면 차라리 부숴버리고 말겠다. 조회장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 조회장의 위기는 곧 조민혁의 위기로 이어진다. 하필 조민혁이 안도훈이 지은 죄의 진실을 알게 된 순간이다. 신세연(이다희 분)의 분노가 조민혁을 다시 위기로 내몬다. 안도훈에게는 기사회생의 기회가 주어진다. 조민혁에게는 적이 많다. 강유정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부디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기회이기를.


죄를 짓고자 해서 짓는 것이 아니다. 악해서 나빠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떠민다. 서로의 상처가 서로를 버르적거리며 떠밀리게 한다.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다. 진정 악한 것은 약한 것을 약한 채로 있게 하는 것이다. 조민혁은 강해질까? 다행히 강유정은 조민혁에게 죄책감과 함께 원망의 마음도 가지고 있다. 전처럼 마냥 용서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쉬운 과정들이 여전히 안도훈을 더욱 약하게 만든다.


물론 통속드라마로서의 보편적 코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죄까지 뒤집어쓰고 희생하는 연인이란. 그리고 이어지는 배신. 그러면 그 배신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통속적인 코드를 전혀 통속적이지 않게 이해해 본다. 낭비다. 하지만 유희다. 때로 전혀 진지하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통속지라는 평면에도 그림자는 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더구나 그것이 상대의 존엄과 양심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일 때는. 사랑이 오히려 상대를 죄인으로 만든다. 사랑해서 도리어 상대를 타락하게끔 만든다. 천사가 들려주는 악마의 속삭임이다. 역설일 것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