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인정은 사실 같은 말이다. 팔 안쪽에 둔다. 대상과의 거리를 없앤다. 동화된다. 정확히 동일시한다. 대상과 내가 같다. 다른 걸 용납하지 못한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억지로라도 끼워맞춰야 한다. 선의에 의한 것이니 그 수단 또한 얼마든지 정당화된다. 상대를 위한 것이다. 좋은 뜻에서 그리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자기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더구나 당사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가방을 함부로 열어본다는 것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수사기관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의 가방을 임의로 열어볼 수 없다. 그런데 용납된다. 좋은 뜻에서 하는 행동이니까. 가정부 박복녀(최지우 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고,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 그리하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의 개인사를 캐고 다니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 주머니에서 임금이 나가는 고용인의 처지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인신에 대한 모든 권리가 고용주에게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계약된 사항에만 충실하면 된다. 고용계약에 명시된 일을 어김없이 해낸다면 그에 따른 댓가만 올바로 지급하면 그만이다. 업무와 상관없는, 고용계약상에 문제가 될만한 사안이 아닌데도 굳이 고용인의 사생활을 캐묻는 것은 결례일 수 있다. 더구나 당사자가 한사코 거부하는데 알려고 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행위다. 과연 박복녀가 가정부가 아닌 아버지 은상철(이성재 분)의 직장동료이고 어머니의 친구였어도 그렇게 했을까?
어떻게 보면 상당히 불쾌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박복녀가 은상철 가족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두결(채상우 분)이 보인 행동은 동등한 인격을 가진 개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연상이었다. 어머니 또래의 한참 어른이었다. 그러나 두결은 철저히 박복녀의 인격을 무시하고 모욕과 멸시를 일삼고 있었다. 그 연장일 것이다. 도움을 받았으니 무언가 베풀고 싶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박복녀 개인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된다. 박복녀 개인의 사정은 철저히 무시된 채 자신들의 일방적인 선의만을 강요하려 한다.
하기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그래도 나이도 먹고 어른도 되고 하면 주위의 눈치 때문에라도 사람을 대하는데 한결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최소한 겉모습만이라도 상대를 위해주는 척 존중해주는 척 꾸밀 줄 안다. 속마음을 숨기고 착한 사람을 연기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무엇이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지, 무엇이 자신의 평판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보다 어떤 행동을 해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재는 법도 꾸미는 방법도 모른다. 순수하기에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만다. 인간이 인간에게 아무 거리낌없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도 그래서 가장 어린 나이일 때다. 선의만 있으면 그것으로 다 된다고 믿고 만다. 자신들은 그저 좋은 뜻에서 박복녀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자 그러고 있을 뿐이다. 박복녀 개인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다.
물론 그것이 아주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기도 그렇고 과정도 문제지만 때로 그런 것들이 크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울고 싶을 때다. 아무에게나 모두 털어놓고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어질 때다. 누군가 와서 물어주었으면 싶다. 누군가 와서 억지로라도 들어주었으면 싶다.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을. 끝내 털어놓지 못한 사정들을. 외로운 탓이다.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그 짐이 너무 무겁다.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박복녀 자신도 무척 지쳐있었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쉽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상철의 가족에 대해서. 오히려 그것이 더 은상철 가족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을지 모른다.
한 마디로 오지랖들이라 할 수 있겠다. 굳이 은상철 가족의 일에 깊이 끼어들고 마는 박복녀 자신이나, 박복녀에 대해 지나치게 파고들려 하는 은상철의 가족들이나. 그저 지켜보아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텐데. 그러나 그러기에는 인간이란 너무 외롭다. 쿨해지기에는 인간이란 너무 불완전하다. 그같은 질척거림이야 말로 한국드라마만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다만 이번 경우는 불쾌감도 꽤 강했다.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끝만 좋으면 다 좋다. 끝이 좋으니 인정이 된다. 인저이란 때로 꽤나 성가시고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윤송화(왕지혜 분)는 악녀가 되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이기적이다. 착한 사람이고 싶다. 나쁜 여자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은상철의 아내가 자살하자 은상철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다른 남자를 찾았다. 버림받고도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았다. 은상철을 위해 다시 돌아가려 했었다. 하지만 은상철에게 거절당하고 그 딸에게마저 거부당하자 그녀는 시원하게 그 마음을 접고 만다. 미련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자신을 내던질 용기가 없다. 좋게 말하면 현명하고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비겁하다. 종합적으로 영리하다. 장도형의 말처럼 어쩌면 그녀가 조금만 덜 영리하고 덜 현명했다면 더 행복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처세에 대해서다. 무언가 안타까운 캐릭터다. 그것이 매력이기도 하다.
최수혁(서강준 분)의 개인사정이 조금씩 표면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다. 단지 환경이 그를 비뚤어지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기는 그렇게 대놓고 나쁜 역할은 아니었다. 한결(김수현 분)을 잠시 곤란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이내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있었다. 음험한 욕심을 채우려는 듯 보이면서도 정작 끝까지 한결을 배려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들어주었다.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역시 캐릭터는 입체감이 있어야 한다. 신우재(박우빈 분)에게 섣부른 위로의 말을 전한다.
박복녀의 개인사는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궁금한 것이 없다. 차근히 드러나고 있다. 어떤 사연이 있을지 짐작가는 바도 있다. 박복녀 자신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지도 않다. 은상철은 이미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두결과 세결, 혜결 또한 일단 마무리가 되었다. 한결이 남았지만 그것은 주변으로 족하다. 중심이 비었다. 딱 적당한 때이기도 하다. 박복녀가 중심이 되면 드라마도 지금처럼 한가롭지는 못할 것이다. 은상철과 윤송화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될 것인가.
한국드라마 특유의 끈끈한 정이 오지랖스러운 민폐와 만난다. 아이들이기에 용서된다. 하지만 아이들이기에 부정적인 그늘도 짙어진다. 자기집 사정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의 집 일에 참견인 옆집 어진엄마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조차 필요한 사람이 있다. 미덕일지. 아니면 기괴함일지. 쿨해서 안쓰럽고 쿨하지 못해서 또 안쓰러운 커플도 있다. 여러가지로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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