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 - 강유정의 비극, 자기희생의 사랑에 취하다

까칠부 2013. 10. 24. 07:36

어쩌면 사랑이란 가장 지독한 에고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함으로써 만족을 얻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행복을 느낀다. 결국은 자기를 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것이다. 때로 그것이 지나치면 기만이 된다. 정작 자신이 위하고자 하는 상대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안도훈(배수빈 분)이 마지막으로 강유정(황정음 분)을 설득하려 할 때 의도한 것인지 강유정은 안도훈을 보고 있지 않았었다. 안도훈 너머의 다른 안도훈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희생으로 완성될 미래의 안도훈이었을 것이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을 때에도 자신을 보며 미안해하고 무어라도 보답하려 하는 안도훈을 그녀는 마주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안도훈에게 상처가 되었고 모멸감과 죄책감에 그동안 고통받아왔는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토록 너무나 쉽게 안도훈을 놓아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만 희생한다면. 나 하나만 희생한다면. 그러면 다 잘 될 것이라. 안도훈도 바라던 꿈을 이루고 자신도 그런 안도훈을 보며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시의 손으로 - 더구나 자신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처벌받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고 있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런 자신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런 자신을 지켜보아야 한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비겁함과 함께.


그래서 발버둥친다. 용서받고자. 인정받기 위해서. 납득하려 한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한다. 처음에는 정의로운 검사였다가, 이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쯤은 되어야 속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의미있는 행동이었다고. 가치있는 선택이었다고. 강유정에게 강요하듯 건네는 돈다발과 같다. 그만한 댓가를 치렀다. 그만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마저 속이려 한다. 자신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옳았고 현명했다. 가장 혐오하는 건 자기자신이다.


아무튼 사랑하는 사람의 그같은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당연히 강유정은 상처받게 된다. 당연히 받았어야 할 보상을 받지 못했다. 차라리 안도훈과 영영 헤어지게 되더라도 숭고한 희생의 결과만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을 터인데 그것이 부도수표가 되고 말았다. 안도훈은 변했고 그것은 강유정이 바라고 기대했던 모습과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희생이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아버지까지 버리고 선택한 길이었는데 이래서야 돌아간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다. 일종의 인지의 부조화일 것이다. 그래도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안도훈과 같은 이유로 그녀는 스스로 비극의 심연으로 자신을 내던지게 된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버틴다. 악착같이, 이를 앙다물고 자신을 추궁해오는 조민혁(지성 분)을 버텨내려 한다. 그러면서 책임을 돌린다. 원망을 돌린다. 다른 누군가 때문이다. 자신도, 안도훈도 아닌 다른 누군가로 인해 이렇게 모든 것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런 자신에 도취되어 버린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사랑에 배신당하고 믿음으로부터 버림받은, 온갖 고통과 불행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자신에 대해서. 세상이 나를 버린 것이다. 세상이 나를 망친 것이다.


과연 강유정에게 당시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었을까? 진실을 감췄다. 알아야 했다. 어떻게 누구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었는지.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용서를 하더라도 누구를 왜 용서해야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럴 권리가 있었다. 엉뚱한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그에게 고통을 주고. 강유정의 아버지느 딸을 대신해서 피해자의 가족과 합의를 보려 하닥 그만 길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 것 역시 기만이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안도훈과 연인사이도 아닌데 당사자도 아닌 강유정이 용서를 받아 무엇을 어찌하려는 것인가.


진실을 요구하는 조민혁에게 차라리 악다구니를 놓는다. 악을 쓰고 고함을 지르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친다. 피해자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며, 당시 피해자의 뱃속에 있던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조민혁이 당연한 권리로서 진실을 요구하는데 그녀는 오히려 그를 거부하며 조민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녀가 지키려 한 것은 과연 안도훈이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허상이었는가. 


역시 강유정의 비극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충분히 불쌍하고 안타깝지만 그것 뿐이다. 자신이 교통사고의 피해자이거나 혹은 그 가족이라면, 그런데 정작 가해자를 누군가 숨겨주고 있다면 과연 그 진실을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일까? 이미 그 진실을 알고 묻고 있는데 오히려 자신을 원망하며 분노를 드러낸다면 그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더구나 처음 실제 가해자가 진실을 밝히고 자수하려 할 때 말린 것이 당사자라면 어떠할까? 결과적으로 안도훈이 저처럼 타락하게 된 계기도 결국 강유정이 제공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씌워 직접 단죄할 정도면 이미 인간의 바닥을 경험했다 보아도 옳을 것이다.


하기는 것이 조민혁에게 건네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신세연(이다희 분)도 다르지 않다. 조민혁을 가지기 위해 조민혁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겠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조민혁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겠다. 집착이며 독점욕이다. 강유정이 안도훈을 대신해서 죄인이 되었던 이유였다. 안도훈이 강유정을 버리고도 강유정에 집착하는 이유다. 조민혁이 강유정에게 강한 집착을 보인 이유 역시 죽은 서지희(양진성 분)에 대한 미련인 것이다. 자신의 죄악감과 무력감을 그런 식으로 대신해 배설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렇게 믿는다.


조민혁은 알지 못하는 사이 신세연과 손잡은 안도훈은 더욱 조민혁을 궁지로 내몬다. 조민혁 또한 안도훈이 인지하는 가운데 안도훈이 지은 죄를 추적하고 있다. 강유정은 안도훈의 죄이며 양심이다. 안도훈은 강유정을 놓지 못한다. 신세연에 대한 안도훈의 유혹은 본격화되고, 조민혁을 가지지 못한 신세연의 상실감은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 조민혁은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의 이 답답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쩌면 강유정은 답을 알고 있다. 강유정은 더욱 비극의 심연으로 자신을 몰아간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어찌되었거나.


물론 그렇다고 강유정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것이 사랑이다. 신세연도 말한다. 자기라도 조민혁이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노라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조민혁과 상관없이 신세연은 사랑을 한다. 안도훈과도 상관없이 신세연은 안도훈에 끌린다. 사랑은 지독한 이타이며 이기다. 비극의 시작이다. 많은 비극의 근원이다.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