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상속자들 - 김탄과 차은상의 거리, 우울한 현실의 동화를 보다

까칠부 2013. 11. 2. 07:54

흔하디흔한 귀족학교물일 것이다. 가난한 여주인공이 재벌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뻔한 신데렐라물이기도 할 것이다. 인물이며 설정이며 구성이며 무엇하나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어느새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만다. 판타지 안에 시린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네가 왜 걔랑 친구야? 몇 번이나 봤다고 친구야?"

자기의 말을 어기고 최영도(김우빈 분)의 호텔방까지 찾아갔다는 사실에 화를 내는 김탄(이민호 분)에게 차은상(박신혜 분)은 심부름을 온 문준영(조윤우 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답하고 있었다. 그게 더 화가 났다. 문준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몇 번 말도 나눠보지 못한 사이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개 내가 사회배려자전형인 거 알고 있었어. 우리 엄마 직업까지 다! 그런데도 비밀 지켜줬어. 그런데 어떻게 안 가?"

하지만 그것은 문준영도 마찬가지였다. 제국고등학교로 전학한 첫날이었다. 교무실에서 우연히 전학수속을 하던 차은성을 처음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굳이 오해에서 비롯된 차은상의 비밀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먼저 지켜주려 하고 있었다. 윤찬영(강민혁 분)이야 어렸을 적 친구라는 인연때문에 그런다 하더라도 문준영은 무엇때문에 차은상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려 했던 것이었을까? 첫눈에 반한 것일까?

하기는 윤찬영의 아버지 윤재호(최원영 분) 역시 전혀 엉뚱한 곳에서 차은상과 자신의 연결점을 찾아내고 있었다. 어째서 과거 자신이 이에스더(윤손하 분)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 차은상을 향한 김탄의 아버지 김남윤(정동환 분)의 냉혹한 한 마디는 바로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었다. 어째서 김탄과 가까이하면 안되는지 100명의 입으로 듣게 될 것이다. 어째서 이에스더와 가까이하면 안되는지 100명을 통해 들어야 했었다.

윤찬영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제국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대기업 비서실장으로 있는 윤찬영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의 존재와 같았다. 그러나 제국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기업을 경영하는 아버지를 둔 같은 반 친구들을 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들의 눈에 윤찬영이나 차은상이나 별 차이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문준영 역시 제국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차은상과 쉽게 어울릴 수 없는 환경의 차이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교복값조차 부담스럽던 차은상에 비해 그래도 최영도의 괴롭힘만 아니었다면 그럭저럭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은상이 졸부의 딸이라는 오해를 바로잡겠다 말했을 때 윤찬영은 바로 문준영의 예를 들어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하필 최영도가 차은상을 앉힌 자리가 불과 며칠전 이미 전학간 문준영이 최영도에게 끌려와 괴롭힘을 당하던 그 자리였다. 사실상 최영도가 차은상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거나 불리한 행동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차은상의 정체를 알아내려 그녀의 가방을 뒤진 정도가 고작이었다. 짓궂기는 했지만 그것이 딱히 위협을 느낄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준영과 같은 자리에 앉아야 했을 때 차은상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최영도는 자신의 정체를 안다. 졸부가 아닌 것을 안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처지를 안다. 문준영과 같아질 것이다. 문준영처럼 대해질 것이다. 최영도는 아무것도 않고 있었다.

계급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거창하지도 심오하지도 않다. 최영도의 괴롭힘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끝내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등지는 문준영의 뒤에 대고 시원하다 후련하다 말하고 있었다. 아예 이번 기회에 학교에서 사회배려자전형을 모두 내쫓아야 한다고. 다른 학생들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딱히 그에 반박하거나 하지 않고 있었다. 졸부의 딸이 되어 그 말을 듣고 있어야 했던 차은상은 과연 어떤 입장이었을까? 과연 누구의 입장에 동의하고 있었을까? 바로 그것이 계급이다. 공감대. 동병상련.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혹은 나이차이까지 상당하다. 같은 장소에 있지도 않다. 그런데 통하는 것이 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문준영이 곧 차은상이다. 차은상이 또한 윤재호다. 그토록 사이가 안좋아 싸우기만 하는데 김탄의 처지를 최영도가 알고, 최영도의 입장을 김탄이 안다. 그것을 전제한 갈등이다. 그것을 바탕에 깐 다툼이다. 그래서 더 차은상에게 화나는 것이다. 차은상은 자신도, 최영도도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세계만을 기준으로 함부로 판단하려 한다. 하기는 김탄 자신도 차은상에 대해 알려 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전혀 모른다. 어째서 차은상이 자기를 피하려 하는지. 거리를 두려고만 하는지. 자기의 어머니 한기애(김성령 분)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차은상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조차. 차은상의 전화를 김탄 자신이 받았을 때 그 여파가 차은상에게 어떻게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자기는 그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려는 것 뿐이지만, 차은상은 그보다 더 엄청난 것들을 각오해야 하고 또 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다. 이해하는 것은 차은상과 윤찬영 정도다. 차은상을 질투하는 유라헬(김지원 분)마저 어딘가 붕 떠있다. 차은상이 감당해야 하는 것들에 비해 김탄의 진심이란 너무 가볍고 섣부르다. 어리고 유치하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다. 같은 제국고등학교에 다니며, 같은 또래일 텐데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차은상은 김탄을 이해하지 못하고, 김탄은 차은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차은상은 김탄을 이해할 도리가 없고, 김탄은 차은상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가장 큰 장애일 것이다. 그런 김탄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은 차은상의 비극일 것이다. 차라리 김탄의 조건에 눈이 멀어 앞뒤 가리지 않는 속물이었다면 상처는 적었을 것이다.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김탄을 거부하기에 그녀는 너무 무력하다. 이 또한 어쩌면 현실이 아닐까. 어린아이가 어른을 휘두른다.

그렇다면 김탄과 차은상 사이에는 접점이 없는가? 그런데 오히려 최영도에게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은 듯하다. 하필 배경이 제국고등학교인 이유일 것이다. 차은상이 재벌아들과 가정부의 딸이라는 사회의 수직적 구조에 짓눌려 있다면, 최영도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또다른 수직적 구조에 의해 소외되어 있다. 최영도의 아버지 최동욱(최진호 분)은 아들인 최영도에게조차 권위적이고 일방적이다. 어른의 사정 앞에 최동욱이나 유라헬이나 자식들의 입장따위 철저히 무시될 뿐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외롭다는 최영도의 진심을 그래서 차은상도 느끼고 만다. 어쩌면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김탄과 차은상의 거리에 있어 그것은 어떤 열쇠가 되어주지 않을까. 아니면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는 불가능한 동화를 들려주던가.

어쨌거나 흥미롭다. 문준영을 외면하라 말한다. 상관하지 말라고, 어울리지 말라고, 걱정하듯 윽박지른다. 약자들이 될 뿐이다.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될 뿐이다. 자기의 뒤에 숨으라. 자기의 그늘에 기대라. 현실에서도 흔히 듣는 말이다. 약자끼리 서로 연대해봐야 같이 죽을 뿐이다. 강자의 뒤에 숨어, 승자의 그늘에 기대어 자기라도 살아남는다. 그러나 정작 김탄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 마음이 멀어지거나, 혹은 몸이 멀어지거나. 더 이상 차은상을 위해 자신의 그늘을 제공할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만다.

김탄의 배려는 차은상에 대한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차은상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친절이다. 다시 말해 차은상과의 관계가 달라진다면 친절의 내용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준영과는 그런 아무런 전제도 조건도 없었다. 사회배려자전형이라는 공통점만으로도 그들은 굳이 말로 전할 필요 없이 공감대를 찾아낸다. 배려해주고 배려받는다. 문준영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김탄이어야 하고 차은상이어야 한다.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문준영이 떠나고 차은상에게는 윤찬영이 남는다.

동화라기에는 어둡고 우울하다. 살벌하기까지 하다. 주인공이 겁을 먹는다. 여주인공이 겁먹고 불쌍할 정도로 떨고 있다. 짐짓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어 보지만 눈은 겁먹은 채다. 눈물마저 그렁인다. 차라리 당당히 거절할 수 있으면 멋지기라도 할 것이다. 도망가야 하는데 도망갈 용기조차 내지 못한다. 이 가련한 모습을 어떻게 멋지게 풀어낼 것인가.

모든 것을 가져도 행복하지만은 않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불행하지만은 않다.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다. 가진 만큼 누리고, 누린 만큼 행복하지는 못해도 즐겁기는 하다. 그조차도 없다. 거짓말을 한다. 어쩔 수 없이 타인을 속인다. 문득 현실의 어느 장면을 떠올린다. 거짓말과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 무엇이 문제인가. 솔직하지조차 못하다.

차은상이 예쁘다. 정확히 박신혜가 예쁘다. 불안한 눈빛과 초조한 몸짓이 가련한 매력을 더한다. 현실을 딛고 선 판타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확실히 차은상이 사랑을 이루었을 때 그 성취감은 남다를 것이다. 남자들이 멋있다. 확실히 판타지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