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 - 모성상실과 모성본능, 그들이 사랑하는 이유

까칠부 2013. 11. 7. 07:10

흔히 남자를 아이에 비유한다. 여성에 대해서는 모성을 먼저 떠올린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남자는 여전히 아이같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모성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절묘하게 만난다. 아이같은 남자와 이미 아이의 엄마인 여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모성상실이란 대부분의 남자들이 성장기에 겪게 되는 통과의례와 같을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쫓겨나 차가운 세상과 만난다. 어머니의 품에서 쫓겨나 마침내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그 경험이 보다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자신때문에 평생을 불행하게 사셨는지 모른다. 하기는 그래서 모든 자식들은 부모 앞에 죄인이 된다. 특히 어머니란 그리도 서럽고 아픈 이름일 것이다. 어머니란 자궁이며 모든 자식이 갖는 원죄일 것이다.


조민혁(지성 분)이 강유정(황정음 분)에게 끌리는 이유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진다. 험하고 고된 감옥생활을 견디며 심지어 끝내 엇갈린 채 헤어지고 난 뒤에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죄를 끝까지 안고 가려 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이의 배신과 추악한 뒷모습을 확인하고 나서도 원망하고 분노하더라도 후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준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위해 세상과도 맞선다. 끝까지 자신의 곁을 지키며 자신을 지지해준다. 다 자란 아이는 그것이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다.


안도훈(배수빈 분)이 강유정의 헌신과 희생에도 오히려 그것을 부담스러워하며 끝내 그녀를 멀리하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극성스러움이 부담스럽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그리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과도함이 버겁기도 하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어야 했던 조민혁과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책임져야 했던 안도훈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쫓겨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세상으로 나와 아버지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야심도 있지만 조민혁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신세연(이다희 분)에 대한 연민 역시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항상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어머니를 대신해 무언가 베풀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새 자라 어른이 되었다. 키도 커지고 힘도 세졌다. 그때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가능해졌다. 그런데 더 이상 어머니는 세상에 없다. 칭찬받고 싶은데. 인정도 받고 싶은데. 그래서 대신할 누군가를 찾게 된다. 자신을 되찾는다. 잃었던 자존을 되돌린다. 조민혁은 항상 방황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원수이기 이전에 여전히 아이인 채인 조민혁에게 강유정의 모성은 가장 절실한 대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기는 강유정도 아이를 잃었다. 안도훈과의 사이에서 낳은 '산이'도 그녀의 아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강유정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안도훈은 검사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안도훈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 기꺼이 자신이 희생한다. 희생하고 나서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듯 보이자 먼저 떠나보내는 모습마저 보인다. 남녀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자기 아이에 대한 모성에 더 가까워 보인다. 보살필 대상이 필요하다. 희생조차 자기를 위한 위로가 된다. 조민혁이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그녀 자신이 그렇게 시킨다. 조민혁을 대신해 상처받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라. 자신의 앞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 조민혁이기에 그대로 보아넘길 수 없다.


아파서 누워 있는 조민혁의 침대에서 그같은 두 사람의 입장이 만난다. 여전히 보살핌받고 싶다. 이제는 자기가 보살펴주고 싶다. 자신을 간호하러 온 강유정에게 조민혁은 마음껏 어리광을 부린다. 마치 아이가 된 것만 같다. 그리고 그런 조민혁에게 강유정은 아이가 있었음을 말한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이가 되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는 조민혁에게 강유정은 이미 아이의 엄마였던 자신을 내세우며 그를 위로하려 한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가 어머니를 만나고,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아이를 만난다. 그들은 하필 남자와 여자였다.


조민혁이 신세연에게서 여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조민혁이 바라는 여성이란 어머니다. 항상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자신 역시 편들어주어야 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 어떤 불합리와 부조리에도 자신을 품에 안아줄 포근함과 따뜻함. 자신의 존재가 간절하게 필요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있다. 서지희를 잃고 절마에 몸부림치던 조민혁이 신세연의 화실에서 자살을 시도할 때 그곳은 조민혁이 회귀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자궁이었을 것이다.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다. 하지만 신세연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 그날 무모했던 일탈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 더구나 안도훈과 가까이 지내며 조민혁에 불리한 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 조민혁의 신세연에 대한 모든 감정은 끝나버리고 만다. 더 이상 조민혁 자신도 필요치 않고, 조민혁 자신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단절이다. 너무 기대가 크다. 그리고 그 기대를 신세연은 따라갈 수 없다. 신세연은 어머니가 아니다. 그녀의 품은 그녀 자신을 감당하기에도 너무 좁다.


신세연의 비극일 것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신세연에게 조민혁이란 여전히 감당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제멋대로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 어른으로서의 사랑따위 무지하다. 어른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조민혁처럼 아이가 될 수는 없다. 조민혁으로 인해 상처받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한 꺼풀 어른의 가면이 씌워진다. 무료하고 무표정한. 아무런 감정도 감동도 없는 얼굴이다. 하필 그녀의 곁에 안도훈이 있다. 안도훈의 노골적인 계산이 차라리 편하다. 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조민혁과의 결혼과 마찬가지로 단지 필요에 의한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조미혁은 항상 가장 아픈 순간에조차 진심으로 부딪혀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같은 계산없는 순수함에 이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이끌린다.


아무튼 과연 그 순간 강유정 역시 자신으로 인해 비롯되었을 안도훈의 상처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겠는가. 자기가 원해서 간 것이었다. 조민혁을 위해서였다. 조민혁에게 아무거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바랐다. 자기만 희생한다면. 조민혁을 대신해 자기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으면. 그러나 그것이 조민혁에게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 자기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수모를 당하고 굴욕을 당한다. 참을 수 없다.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던 여자가 죄인이 되어 법의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과연 그같은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다만 강유정을 직접 찾아가 화를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민혁과 안도훈의 근본적 차이가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혜택받은 환경에서 자란 넉넉함이다. 항상 쫓기며 살아가는 안도훈에 비해 조민혁은 여지가 많다. 조민혁은 어지간한 상황은 스스로 알아서 감당할 수 있다. 안도훈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치명적이기만 하다. 


선녀와 나무꾼이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선녀가 하늘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옷을 감춘다. 혹시라도 강유정이 날아갈까봐 조민혁 역시 그녀의 아버지의 빵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강유정도 어머니처럼 자신을 버리고 떠나갈지 모른다. 서지희도 그렇게 자신은 갈 수 없는 곳으로 혼자서 멋대로 떠나버렸다. 역시 강유정에 대한 조민혁의 집착을 은유하여 묘사하고 있을 것이다.


시련이 시작된다. 쉽지 않다. 일게 동네빵집 딸이다. 가진 것 없이 조민혁 소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처지다. 전과자에 미혼모이기도 했다. 대기업 2세인 조민혁은 그녀에게 너무 먼 상대다. 서지희에게 고백한다. 조민혁이 강유정에게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다. 강유정이 조민혁에게 마음을 열기도 쉽지 않았다. 강유정이 조민혁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버스에 타려는 강유정을 조민혁이 끌어안는다. 시련은 항상 밖에서 온다. 세상의 눈을 대변하듯 모두 모여 그녀에게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 이미 시작된 감정이라 고통은 더 커진다. 다행히 안도훈의 죄에 대한 단서들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자기를 용납하지 못해서. 자기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 차라리 고통받고자 한다. 강유정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차라리 그녀를 미워하려 한다. 강유정을 원망하고 미워할수록 오히려 안도훈 자신이 상처를 입고 만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조민혁을 보다 못해 신세연은 안도훈과 하룻밤을 보낸다. 안도훈을 사랑하지 않는다. 차라리 자기모멸이다. 자기를 학대하는 고통이 조민혁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차라리 편하다. 조민혁을 상처주고,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고. 악순환이다. 악하기보다 슬픈지 모르겠다. 안도훈은 안중에 없는 듯한 모습이 잔인하기까지 하다.


어두운 골목길은 자궁으로 이르는 통로다. 여성들만이 있는 공장은 여성의 자궁일 것이다. 조민혁은 항상 그곳을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가장 솔직한 모습이 되어. 그 안으로 강유정이 숨는다. 거짓으로 상처입힌다. 안도훈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민혁이 그것을 듣는다.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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