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 - 안도훈의 비루한 본색, 신세연 웃다

까칠부 2013. 11. 8. 07:24

어쩌면 출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다시는 아버지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 아버지와 같이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줄 아는 검사가 되겠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


약하니까. 힘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검사가 아니면 어떤가. 변호사도 못되면 또 어떤가. 그리 많이 배우지도, 그렇다고 대단한 자리에 있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찾아 직접 실천하고 있다. 검찰에서 밀려나고, 그 과정에서의 안 좋은 소문 때문에 변호사로서도 성공하기 힘들 것 같고, 하지만 과연 다른 선택은 없었는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겠다. 그 말은 곧 나의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좌절이었다. 아버지와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위해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 자신이 그것을 직접 대신하겠다. 다만 여기에서 선택이 갈린다. '도움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인가. 결정적으로 강유정(황정음 분)이 자신을 대신해서 뺑소니의 누명을 쓰고자 했을 때 말리지 않은 것 부터가 안도훈(배수빈 분)의 선택이 무엇인가 드러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젠 누구에게도 무릎꿇지 마! 꿇어도 내가 꿇어!"


아마 그 순간 강유정도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자신이 오해하고 있던 안도훈의 진심에 대해서도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 무릎까지 꿇은 강유정에게 조민혁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무릎을 꿇겠다. 내가 수모를 당하고 내가 굴욕을 겪겠다. 강유정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일이 있어도 강유정만은 지키겠다. 안도훈이 진심으로 강유정을 지키고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 했다면 조민혁처럼 화를 냈어야 옳았을 것이다. 조민혁이었다면 어쩌면 강유정이 뺑소니의 누명을 대신 쓰겠다 말한 순간 먼저 경찰에 가서 자수부터 했을 것이다.


힘을 가지고 싶었다. 권력을 가지고 싶었다. 한을 풀고 싶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겪어야 했던 수모와 굴욕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것은 정의감이라기보다는 증오였다. 자신을 그렇게 몰아간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증오였다. 그것은 얼핏 정의감과 닮아 있었다. 그렇게 합리화하고 있었다. 자신은 단지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려 할 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좌절을 겪게 되었을 때 알량한 변명은 곧 그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너희들이 싫다. 밉다.


신세연(이다희 분)과 조민혁은 기득권에 대한 안도훈의 모순된 심리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동경하다. 가지고 싶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거짓된 관계로라도 그 주위를 맴돌고 싶다. 한 편으로 질투한다. 증오한다. 빼앗고 싶다. 부수고 싶다. 파멸시켜 지금의 위치에서 끌어내린다.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처지가 된 그를 위에서 굽어보며 비웃는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신세연을 연민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조민혁을 질투하고 증오한다. 합리화한다. 그럼에도 조민혁을 증오하는 것이 바로 정의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저지른 모든 잘못들마저 조민혁의 탓이라며. 조민혁을 응징함으로써 모든 잘못들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승리자가 되는 것이 가장 옳다.


다만 안타깝게도 신세연은 그같은 안도훈의 비루한 본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둘은 닮아 있었다. 단지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풍요와 안락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걸어야 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친구가 되었다.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친구로나마 조민혁의 주위에 남아있기 위해. 조민혁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좋다. 상황에 기대고 주위에 모든 것을 맡기며 조민혁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정체를 잃어간다.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눈물까지 흘리며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은 것은. 조금만 더 일찍 자신을 내려놓았다면 어땠을까? 조민혁의 진지한 거절은 그녀를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그런데도 신세연 자신을 위하겠다. 신세연 자신이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막겠다. 지키겠다. 귀엽기까지 하다. 조민혁의 곁에 남아있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사이를 연기해야 했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조민혁을 질투하지도 않았고, 필요에 의해 자신과 결혼하려는 조민혁 앞에 기쁜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렇게 철저히 가면을 쓰고 자신을 위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믿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가. 결국 자신의 위기 앞에 안도훈도 본색을 드러내지 않던가. 진심을 거절당했을 때 신세연의 진심은 집착이라는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비웃는다. 만족스러운 웃음이다. 안도훈이 자기 앞에서 그 바닥을 드러냈다.


끊임없이 변명하고, 다른 사람에 탓을 돌리고, 그리고 쉽게 무릎을 꿇는다. 가장 혐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터다. 힘없는 자신이다. 무력한 자신이다. 아버지다. 아버지야 말로 자신의 과거이며 미래다. 마지막 가면마저 벗어던진다. 이제는 자기가 무엇을 위하는지도 모르겠다. 신세연도 이제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부순다. 짓밟는다. 능욕한다. 학대다. 자기에 대한 가장 지독한 학대다. 자신의 약점까지 내보이며 조민혁을 협박하는 신세연과 바닥을 드러낸 안도훈의 표정이 공허하다. 그런 것까지 읽힌다. 얼마나 대단한 배우들이고 연기인 것인가.


화가 난다. 비슷한 처지인 것 같은데 최광민(이승준 분)조차 자기와는 다르다. 


"제 살 길 찾는 대신 내가 지켜야 할 사람 지켜보고 싶었어요!"


조민혁만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이 아니다. 최광민 역시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는 순간 안도훈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일 테지만 안도훈은 자기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평범한 사람이다. 겁나면 움츠리고 무서우면 도망친다. 신세연을 지키겠다는 다짐마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만다.


과거에 구애된다. 아니 과거를 인정한다.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를 부정하려는 순간 오히려 과거에 더 얽매이게 된다. 과거와 달라지기 위해.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정한다는 자체가 강하게 의식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안도훈 자신이 끝내 놓지 못하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인 것이다. 하나의 선을 그린다. 너무나 쉽게 그 바닥을 드러낸다. 과거마저 끌어안고 강유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다만 드라마의 특성상 과거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워진 강유정을 보기란 힘들 것이다.


여자와 어머니가 만난다. 신세연은 여자다. 여자로서의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다. 강유정은 어머니다. 어머니란 지키는 존재다. 신세연마저 걱정한다. 강유정을 용납할 수 없다. 신세연과 강유정이라는 두 캐릭터를 대비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이같고 어른같다. 철없는 딸과 걱정많은 어머니의 대화를 보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놓아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모습은 한 세상 산 듯한 고단함마저 느끼게 한다. 알면서도 끝내 반발하고 마는 것은 아직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찾아온다. 안도훈의 과거 행적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안도훈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강유정의 태도가 단호하다. 어떤 연민도 동정도 보이지 않는다. 안도훈은 마지막 선택을 한다. 갈 곳을 잃은 신세연의 광기가 조민혁을 궁지로 몰려 한다. 조민혁을 궁지로 몰아 강유정의 선택을 강요한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조민혁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 브레이크를 놓아버린 안도훈과 신세연은 어디까지 가게 될까.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까. 벌써 여기까지 달려왔다. 마지막 시청자의 기다림을 조인다. 가장 잔인하다.


화가 나는 것은 자신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연민하고 마는 것은 자신을 연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그래서 더 강하게 과거에 구애되고 만다. 그렇게는 살지 않겠어. 그래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주인공은 안도훈이다. 조민혁의 유치할 정도로 솔직하고 순수한 사랑도 사소하기만 하다. 그만큼 격렬하다. 


누구나 강유정처럼 강하지 못하다. 조민혁처럼 솔직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슬프다. 삶이란 가장 슬픈 비극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모두는 해피엔드를 꿈꾸게 된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하며 사는 이유다. 남은 시간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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