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휑하니 시리다. 모니터 너머라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이 숨쉬고 웃고 떠들고 움직이고, 그것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보여진다는 것이. 살아있으되 그 어떤 숨결도 체온도 땀냄새도 나지 않는 그같은 무기질의 무감동이란. 어쩌면 내가 그래서 텔레비전을 잘 안 보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오늘의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는 때때로 모니터를 손으로 만지고 했었다.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고,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고, 땀냄새가 나는 것 같고,
그러고 보니 남자의 자격팀 단체 CF촬영에 스텝도 함께 했다고 했지? 출연자고 스텝이고 없이 하나라는 - 카메라를 통해 전해지는 그같은 끈끈한 마음의 연결이 느껴졌었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는 화면과 그리고 한 번은 쥐가 나서 주저앉는 모습에서. 카메라마저도 날모습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아, 그러니까 김성민의 화장실 문 밑으로 내민 손까지 내보낸 것이리라. 설마 그런 장면까지 내보낼 줄이야. 때때로 들려오는 VJ의 목소리에, 이경규를 걱정하는 PD의 목소리, 또 VJ들을 걱정하는 출연자들의 마음, 그리고 함께 나눠먹는 라면...
확실히 라면이란 음식 그 이상이다. 인스턴트 그 이상이다. 누구나 끓일 수 있기 때문일까? 어디서나 쉽게 끓일 수 있기에 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라면을 끓이게 된다. 큰 냄비에 끓여서 따로 그릇에 나누는 법 없이 함께 덜어 먹다 보면 뭐랄까... 라면국물만큼이나 따뜻하고 진한 정이 느껴진다. 한솥밥의 진득한 느낌과는 다른 인스턴트이니만큼 그 순간을 함께 했다는 여운? 그래서 또 사람들은 모이면 라면을 끓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히 라면을 끓이고, 라면을 나눠먹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김태원의 한 마디.
"나 혼자였으면 절대 여기까지 못 왔어."
하긴 국민시체니까. 국민할매고. 그러나 그의 등을 떠민 것은,
"서현이가 저번 마라톤 보고서 실망했다잖아!"
가족. 딸.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바로 지리산에서 그를 이끌고 버텨준 것은 이경규와 김성민과 이윤석과 이정진과 다른 스텝들. 동료들.
인간은 그렇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힘들어도 버거워도 그렇기에 걸어가야 하고 뛰어가야 하고 올라가야 하고, 그러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걸을 수 있고 뛰어갈 수 있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지리산이라는 자연 앞에, 쌓인 눈과 추위라는 가혹한 환경 앞에, 그래서도 그 말라빠진 몸을 이끌고서도 마침내 지리산에 올라 정상은 아니더라도 노고단까지는 이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인간의 문명이란... 어쩌면 가장 열등한 육체를 가지고서도 자연계의 정점에 서게 된 이유는 그것이 아닐까. 건강하고 산을 잘 타는 사람만이 홀로 달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버거워 주저앉은 사람마저도 보듬고 함께 오를 수 있었던 것. 강한 한 사람이 아닌 약한 모두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정말 의외였다. 국민시체 김태원이 국민약골 이윤석보다 더 건강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 노고단에 오를 때는 오히려 김성민보다도 나아 보였다. 아마도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른 동료들과, 그리고 그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 또한 그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남자이기에.
그 추위에 몸이 얼고 피곤으로 발걸음조차 떼어지지 않는 와중에도 웃음을 주려 했던 이경규도. 그는 역시 천생 예능인이었다. 개그맨이었다. 차라리 지쳐 쓰러질지언정 작은 웃음을 주겠다. 그런 프로의식이. 왜 이경규가 이경규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할 수 있다. 이경규답다. 더 말이 필요한가?
자연은 그렇게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진 인간은 또 한없이 순수함을 드러내고 만다. 그리고 그같은 순수함이란 때로 아름답다. 인간이란. 그리고 남자란. 이경규와 김국진과 김태원과 이윤석과 김성민과 이정진과 윤형빈, 바로 남자라는 이름들.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남자의 자격 또한 역시 예능이라는 것. 버라이어티라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시간대 즐거움을 주자는 프로그램이다. 즐거움을 얻자는 프로그램이고. 너무 리얼리티로 갔다는 것이... 아무리 리얼리티가 좋아도 결국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예능으로서의 재미다. 어쩌면 그것이 남자의 자격의 한계가 아닐까... 그러나 그래서 내가 남자의 자격을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다음주가 그래서 기대된다. 예고편 보다가 무심결에 푸하~ 웃고 말았다. 석유곤로와 성냥과 양은냄비와, 어쩐지 어울려 보이는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감동을 주었다면 웃음도 주어야겠지. 그 정겨움과 그 유쾌함과 그 즐거움... 이런 게 중독일 것이다. 남자의 자격이란. 마약보다 독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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