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윤서인의 만화가 이슈가 되었을 때 내가 가장 처음 느낀 게 뭐였냐면,
"이 인간 그래도 낚시기사에 대해 까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아마 그 부분을 캐치했기에 윤서인을 옹호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의 낚시성 제목에 비판을 가하려던 것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왜 굳이 소녀시대는 속옷을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서 그런 묘한 자세를 취해야 했을까? 작중 작가의 대사는?
그런데도 옹호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표현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목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악플옹호론자들이 하는 소리도 그렇다.
"연예인들이 빌미를 제공했으니 악플도 달리는 것 아닌가."
바로 도덕주의가 갖는 - 아니 주의라는 어미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다. 즉 지향이라는 거다. 지상이라는 것이고.
목적이 너무 숭고하니 수단은 도외시된다. 이스라엘을 몰아내고자 아이와 여자들에게까지 폭탄을 들려 자살폭탄테러에 내모는 이슬람원리주의자들처럼.
물론 그들의 목적은 어느 정도 공감되는 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폭탄을 들려 죽음으로 내몰아야겠는가.
미국 역시 관타나모는 그동안 미국이 추진하던 테러와의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온갖 고문과 인권유린과...
뭐냐면 수단이 목적이 종속되는 것이다. 목적이 좋으니 수단도 좋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악플러라는 게 다른 게 악플러가 아니다.
스스로는 악플러라 생각지 않는지 모른다. 그렇겠지. 스스로는 매우 정의로울테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도를 잃었을 때, 그 수단이 선을 넘어섰을 때 그때 악플러가 되는 것이다. 옳고 그르고의 판단 이전에.
선이 악이 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것. 스스로를 의심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것.
한 마디로 그냥 생각없는 거다.
"이게 옳다!"
그 이상은 아무 생각도 못하는.
그래서 내가 하는 욕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야, 이 생각 없는 자식아!"
인 것이고.
가장 정의로운자가 그러나 때로 가장 악한 자다. 어쩌면 하나의 법칙일 것이다.
생각없는 놈들이 항상 문제라는 거다. 하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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