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판단했다. 구하라는 캐릭터가 없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강력한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현아의 언니!"
유치개그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사람들이 보기에 그냥 언니다. 그래서 이름도 유치자매 아닌가.
처음에는 이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았었다. 캐릭터를 만들려면 다른 사람들과 더 관계를 가져야지.
그러나 보니까 정작 청춘불패 안에서 모든 멤버와 고루 관계를 갖는 캐릭터란 자체가 없다. 곰태우도 기껏 유리, 선화, 현아, 하라까지만 건드리고, 김신영도 거의 효민, 써니와만 논다. 나르샤는 여기저기 끼기는 하지만 깊이 관계를 맺은 멤버는 없다. 막내 현아도 현재 하라와만 함께 다니고 있고.
전부터 부쩍 신경에 거슬리던 것이었다. 그래도 리얼버라이어티인데 왜 청춘불패에서는 멤버간의 교류가 없나. 물론 팀을 나눠 촬영하다 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관계란 너무 제한적이다. 그동안 청춘불패에서 캐릭터 형성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이기도 한데,
그렇다 보니 하라와 현아와의 관계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어제 분량에서도 그랬다. 오로지 하라와 현아 사이에서만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기대할 수 있는 토크가 나왔다. 콩트가 아닌 자연스런 상황 속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하라는 언니, 현아는 동생, 그러나 하라나 현아나 한 살 차이로 고만고만한 어린아이.
하라의 사차원스러운 백치미와 현아의 어린아이같은 해맑음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마치 어린 꼬맹이 둘이서 언니라고 묻고 동생이라고 대답해주는 그런 모습이랄까? 굳이 캐릭터를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캐릭터가 강조된다.
더구나 둘은 그동안 사적으로 친하다는 이미지를 계속해 쌓아 왔다. 즉 둘의 관계가 프로그램 안에서의 예능을 위한 관계가 아닌 실제로 여겨지기 쉽다는 것이다.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마치 그것이 실제 상황인 양 기믹이 되어 준다. 물론 실제로도 칠한 하라와 현아이다 보니 상당부분 실제이기도 할 테지만 말이다.
언니 하라와 동생 현아, 사차원 백치 하라와 징징이 막내 현아, 하라를 통해 현아의 캐릭터는 더 강조되고, 현아를 통해 하라는 이제까지 없었던 캐릭터를 얻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더하고 얻는 윈윈이랄까? 원래 그러자고 그토록 관계를 강조했던 것이었다. 그 시너지를 위해.
다만 문제라면 이것을 하라와 현아의 꿀현자매 - 혹은 유치자매에서 그치지 말고 다른 멤버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청춘불패 자체가 아이돌 버라이어티이다 보니 관계가 매우 취약하다 보니, MC나 제작진의 도움 없이는 유치자매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각자와의 관계를 주도해야 하는 탓에.
나르샤가 굳이 다른 관계 없이도 캐릭터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나르샤가 최연장자엿기 때문이다. 노주현을 제외하고 곰태우와 가장 나이가 많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관계를 주도할 수 있다. 그런데 멤버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둘이 관계를 주도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재 청춘불패에서 완성된 관계란 곰태우와 유리 이외에 구하라와 현아 뿐이더라는 것이다. 곰태우와 유리의 관계에 선화가 끼어들었듯, 구하라와 현아의 관계 역시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재생산할 필요가 있다. 다른 멤버와 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서 또 관계를 만들고, 거기에서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다듬고. 역시 MC의 역할이라는 것일 텐데.
확실히 청춘불패는 MC의 존재가 아쉽다. 그저 웃기는 개그맨이 아닌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방향을 설정하고 흐름을 조율할 수 있는 그런 MC말이다. 아마 제대로 된 MC만 있었어도 멤버들이 저리 따로 놀지는 않을 텐데.
아무튼 구하라로서는 유치개그 말고도 한 가지 중요한 무기가 생긴 셈이다. 굳이 유치개그가 아니더라도, 아니 유치개그조차도 오늘처럼 현아와의 토크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다. 아예 유치개그의 스승과 제자 그대로 둘이서 유치개그를 연구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 보여줄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달까.
이번주는 바로 그런 부분들을 보여준 한 회였다. 유치개그를 주고 받으며 나누는 대화는 소소하지만 가능성이 보였고, 나이를 가지고 나누는 대화는 당돌했으며 귀여웠다. 더불어 청춘이 집 앞에서의 묘한 섹드립들은... 오히려 순수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발칙한 귀여움을 보여주었다.
그래. 자꾸 잊는다. 구하라는 현아 다음으로 청춘불패에서 막내라는 사실을. 아직은 현아와 어울리는 모습 쪽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새는 발음에 어눌한 말투라는 것도 그런 때 더 자연스럽고 생명력을 보이고.
프로그램은 망했지만 그런 점에서 구하라는 흥했다고 본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 워낙 예상들이 많이 빗나가서 - 구하라 보는 재미에라도 청춘불패를 볼 수 있을지도.
캐릭터란 그런 것이다. 혼자 잘해서가 아니라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리얼이기에 더욱 깊숙이 마치 사실과도 같은 관계가 있어야 한다. 스스럼 없이 자연스러운.
다음주 청춘불패를 그 하나를 위해 기대해 본다. 과연... 구하라와 현아, 꿀현 자매는. 아니 유치자매는. 그나마 오늘 유일하게 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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