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얼버라이어티의 끝은 시트콤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웃음이란 상황을 통해 나오는 것이므로.
어떤 코미디나 개그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왜 그것이 우스운가? 넘어지는 자체가 우스운게 아니다. 말투 하나가 우스운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영구와 땡칠이 시절의 심형래의 말투를 비슷하게 정신지체아가 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스운가? 만일 우스우면 그게 미친 거다.
같은 넘어지는 장면이라도 짐을 들고 가던 할머니가 넘어지는 것이라면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다. 반면 껄렁거리다 순식간에 자빠지는 것이라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
행사진행을 하면서 우스운 멘트를 하더라도 그 멘트는 앞뒤좌우 가려서 상황 봐가며 나온다.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떤 멘트를 해야 할까, 그러나 거꾸로 뒤집어 보면 그런 상황이기에 그 멘트는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구체화한 게 콩트다. 그러나 문제는 콩트라는 게 너무 설정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한껏 눈높이가 높아지고 영리해진 시청자들로 하여금 동의를 이끌어내기에는 작위적인 게 너무 강하다. 버라이어티가 그래서 코미디를 대체한 것이고, 지금에 리얼버라이어티가 대세를 이룬 것도 그래서다.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게 무언가. 리얼리티다. 여기에서 말하는 리얼리티란 설정의 티가 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다. 즉 콩트가 처음부터 짜맞춰진 웃음이라는 부자연스러움과 경직성이라는 한계를 갖는다면, 그로부터 탈피하고자 한 것이 리얼버라어이티라는 것이다. 보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유연하게, 출연자들이 상황을 만들어가며 웃음을 유도하는.
그러나 말했듯 웃음이란 상황 속에서 나온다. 그러면 그 상황이란 무언가. 그래서 또 나오는 말이 리얼버라이어티에서의 상황극이라는 것이다. 콩트와는 다르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에 대해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자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다. 아니 연기한다기보다는 그것이 마치 실제상황인 양.
그래서 캐릭터가 중요한 것이다. 관계가 중요한 것이고. 먼저 캐릭터가 있어야 자기가 어떤 역할을 연기할 것인가가 보인다. 관계가 있어야 누구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보이고. 말하자면 콩트에서의 배역과 같은 것이다. 단지 콩트에서와는 달리 그것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조건반사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체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달까. 작가나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설정되기 보다는 원래 그러니까...
물론 그게 실제 그런가는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능을 위해 그렇게 설정되어 보여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리얼버라이어티에서는 연기력도 요구된다. 아니 연기력이라기보다는 리얼버라이어티 안에서 또다른 하나의 분신을 만드는 것이다. 또다른 자기인.
아무튼 그래서 리얼버라이어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버라이어티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상황극이 되어 버린다. 말하는 시트콤이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의 자격의 예를 들자면, 권위적이지만 허세가 심한 큰 형 이경규와 냉정하지만 엉뚱한 작은 형 김국진,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큰 형을 쫓아다니는 셋째형 김태원, 큰 형 이경규의 하인이지만 최근 반항기인 넷째 이윤석, 의욕이 넘쳐 항상 주위의 원성을 사는 다섯째 김성민과 얼굴만 잘생긴 이정진, 항상 형들 뒤치닥꺼리에 바쁜 막내 윤형빈. 상황이 주어지면 출연자들은 그렇게 자기 캐릭터를 가지고 서로와의 관계를 전제로 연기 아닌 연기를 하게 된다. 자기 역할에 맞게, 관계에 맞게, 그에 충실하면서, 때로 배반도 하면서.
그래서 사람들은 리얼버라이어티를 보면서 기대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 사람은 분명 이럴 거야."
그게 캐릭터라는 것이고,
"그러면 분명 누군가 여기에 이렇게 븐능하겠지?"
그게 관계다.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면 뿌듯함을, 그것이 어긋나면 놀람과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문제는 그러자면 그들의 캐릭터와 관계가 표면적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말했듯 그같은 캐릭터와 관계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무한도전에서처럼 요리를 하든, 에어로빅을 하든, 갱스터를 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떠올리고 관계를 떠올릴 수 있도록. 어울림이다.
즉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 표면적인 캐릭터로서는 안된다. 표면적인 관계로서도 안된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심지어 일상에서까지 그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도록. 아예 방송 자체를 그같은 캐릭터로 - 그것이 자기 본모습인 양 여길 수 있도록.
더불어 그것은 시청자에 대한 기믹이기도 하다.
"나는 원래 이래."
그것은 또한 배려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충실히 그것을 사실이라 여기고 그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를테면 일상에서 즐기는 서바이벌게임과 같은 것이다. 예전 학교 다닐 때 학교를 무대로 일상에서 서바이벌게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즉 강의실에서 서로 보면 쏘고, 학생식당에서 발견하면 뽑고, 독서실에서도 공부하다가 서로 신경전 벌이고, 일상이지만 게임인, 게임이지만 또 일사인.
즉 리얼버라이어티에서의 리얼리티란 버라이어티지만 일상이고, 일상이 곧 버라이어티인, 그같은 기믹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사실과도 같은 콩트, 마치 실제로 그리 되는 것만 같은 상황극,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이 캐릭터이고 관계이고, 그로써 완성되는 것이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거대한 시트콤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대본과 설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트콤이 아닌, 보다 넓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그 구분조차 모호하게 이루어지는 가상의 현실.
리얼버라이어티가 어렵다는 게 그래서다. 구체적인 대본이나 설정 없이 대략적인 상황과 주제만으로 출연자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자면 보통의 실력으로는 안된다. 출연자 사이의 호흡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MC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아마 지금까지 리얼버라이어티 MC로서 성공한 예는 유재석과 강호동, 이경규 정도이지 않을까. 그나마 이경규도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지금에 안착할 수 있었고. 대본 없이 연기하라면 어지간한 프로연기자도 힘들다는 거다. 그것도 수없이 다양한 상황 속에 그러자면.
리얼버라이어티가 진짜 리얼이 되는 것은 그로부터다. 이미 관계가 정립되어 있다. 캐릭터도 있다. 확실한 중심도 있다. 툭 던지는 거다.
"이번엔 이런 것 좀 해 보자."
그러면 그때부터는 조건반사로 바로 반응이 나온다. 굳이 작가나 PD가 개입하지 않고도 그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상황이 만들어지고 장면이 연출된다. 가끔 무한도전을 보면서 소름이 끼친다는 게 그런 거다. 이건 뭐...
아무튼 그래서 리얼버라이어티에서 중요한 것은 캐릭터와 관계. 그리고 중심을 잡고 이끌어갈 MC의 존재다. 이것들이야 말로 시트콤에서 연출가와 작가, 대본, 세트 등 다른 외적 요소들을 대체할 중요한 부분들이므로. 이것들이 제대로 갖추어지느냐에 따라 콩트로 끝나느냐, 아니면 시트콤이 되느냐, 그도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다큐멘터리가 되고 마느냐.
같은 멤버를 가지고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을 몇 년이나 꾸려가면서도 항상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프로그램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 그 캐릭터와 관계가 주는 현실감이 리얼버라이어티를 롱런하게 하는 것이다. 표면적인 캐릭터나 관계가 아닌 그런 것들이.
세상에 거저먹는 건 없다는 얘기다. 대박이라도 하나 터뜨리자면. 리얼버라이어티란 그래서 얼마나 어려운가.
다시 한 번 유재석과 강호동, 이경규는 대단하다. 김태호와 이명한 역시. 리얼버라이어티란 자체가. 정말 대단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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