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가요톱텐의 기억...

까칠부 2010. 2. 6. 09:11

처음 시작은 5십 몇 위였다. 그리고 점차 순위가 올라가더니 한 달 뒤에는 3십 몇 위, 다시 한 달 뒤에는 10위권, 다른 노래들과 엎치락뒷치락,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마침내 1위... 1위까지 했었나?

 

누구였더라? 한 번은 앨범을 내고 거의 1년 가까이 지나서야 순위권에 들어선 경우도 있었다. 가수조차 거의 포기한 앨범이었는데 점차 입소문이 퍼지면서 뒷심을 받기 시작하더니 상당한 정도까지 순위가 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초동으로 결판나지만 당시는 초동보다는 뒷심이었다. 조용필이나 전영록 같은 기본적인 팬층이 되는 가수들이야 앨범을 내는 순간 대세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1위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했었다. 아마 서태지의 3주만에 1위가 당시 최고기록이었던가? 그만큼 음악을 소비하는 계층 전반에 알려지고 소비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신인이라면 더욱.

 

워낙에 음악을 들을 수단이란 텔레비전과 라디오, 그리고 길보드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그래서 좋으면 호의를 가지고 주위에 소개하고, 그렇게 입소문이 퍼지면서 겨우 신인들은 자기 음악을 알릴 수 있었다. 인내를 가지고. 자기 음악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흥미로운 것이 당시는 순위권 안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트로트에서부터 댄스음악, 블루스, 발라드, 가요, 락, 시청자층도 넓었고, 적극적인 참여층도 넓었다. 특정계층에 전유된 지금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같은 다양한 취향 가운데 대중을 설득하고 선택받는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1위라는 것은 가치가 있었다. 또 흥미도 있었고. 이번주는 어떤 노래가 1위가 될까. 물론 당시도 10대위주의 가요시장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나왔지만.

 

아무튼 그러나 지금은 이미 앨범이 나오는 순간 결정된다. 기획사의 파워와 팬덤의 힘과 기타 여러 외적인 요소들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기획사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신인은 설 자리도 없고, 초반에 기세를 잡지 못하면 그대로 잊혀질 뿐이고.

 

결국은 저변이 엷어진 때문이다. 시장 자체는 커졌는지 몰라도 참여자 자체가 한정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팬덤에 의해서만 주도적으로 음반이 소비되고, 음원이 소비되고, 따라서 대세는 초반에 결판난다. 뒷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올라와 1위... 그런 건 꿈이고.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알려져서 마침내는 1위...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는 거다. 시간을 두고 알려지고 알게 되는 그런 즐거움이라는 것이...

 

뭐 그것도 하나의 흐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조금은 아쉽다는 게... 정말 재미있었거든.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신인이 차근차근 순위를 올리더니만 10위 안까지 진입했을 때, 그리고 순위가 오르고 내리고 업치락뒷치락하는 것들이. 한편의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게 또 가요톱텐의 매력이었고.

 

아무튼 발매 첫주 1위가 당연해진 것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스친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어진 것일까. 음반을 내고 좀 더 알려져 더 많은 사람들이 앨범을 사고 음원을 사고, 힘들어진 것인가. 1년 가까이가 지나서도 여전히 팔리는 음악이라는 것은.

 

그냥 나이 먹은 넋두리라 생각하면 되겠다. 예전과 지금은 환경이 다르다. 음원이 나오는 순간 알고, 바로 판단하고 바로 소비하게 되었다. 그만큼 빨라졌다는 것이고 민첩해졌다는 것이다. 단지 재미가...

 

그래서 내가 지금도 음악순위프로를 잘 안 본다. 재미가 없어서. 의외성도 없고, 긴장감도 없고, 드라마도 없고, 순위프로라는 게 음악을 듣는 것 말고도 순위 자체를 즐기는 재미도 있는 건데. 아쉽달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