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청춘불패 - 아이돌 버라이어티와 천덕꾸러기 아이돌...

까칠부 2010. 2. 14. 10:21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청춘불패를 보는가. 재미있어서? 재미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연 굳이 시간을 내어 챙겨볼만큼 청춘불패는 재미있는가. 리얼버라이어티로서 그만한 재미가 있는가. 글쎄...

 

결론은 아니다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청춘불패는 리얼버라이어티로 보기엔 너무 서툴고 미숙하다. 아이돌치고는 나름대로 예능감도 있고 하지만 그래봐야 아이돌, 날고기는 선배 예능인들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오히려 예능을 하려 하면 그래서 짜증까지 나려 한다.

 

그런데도 나는 왜 굳이 청춘불패를 보는가. 결국 하라구 때문이다. 원해 구하라 보자고 보기 시작한 청춘불패였고, 지금도 순규, 유리, 선화, 현아, 나르샤, 효민 등의 G7 걸그룹 아이돌들을 보려고 본다.

 

프로그램의 포맷? 물론 나쁘지 않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포맷이 여자아이돌의 존재 없이도 안착할 수 있었을까. 성인남자였다면. 혹은 중년의 여자연예인들이었다면. 그러고도 농촌생활체험이라는 청춘불패의 포맷이란 지금과 같이 10% 내외의 시청률을 찍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안착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랬다면 포맷 자체를 지금과 다르게 바꾸었을 것이다. 출연자들에 어울리도록.

 

말 그대로다. 지금의 청춘불패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바로 아이돌이 있기에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제작발표를 하면서 공개한 사진 그대로, 화려한 아이돌의 모습과 몸뻬로 상징되는 농촌의 질박한 삶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과 대비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굳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없어도 한 번 쯤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청춘불패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라는 것도 그런 아이돌이 농촌에서 열심히 마을주민들과 어울려가며 흙투성이가 되어 땀흘려 일하는 진실한 모습에 대한 감탄에서 비롯되었다.

 

만일 아이돌들이 아니었다면? 여자아이돌이 아닌 다른 기존의 예능인이었다면? 말했듯 프로그램 포맷을 달리 했거나, 아니면 단지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리얼버라이어티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청춘불패를 있게 한 것은 바로 여자아이돌이라는 것이다.

 

즉 청춘불패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여자아이돌이라는 것이다. 청춘불패의 핵심도, 청춘불패의 요체도, 무엇보다 청춘불패라는 프로그램 자체도 여자아이돌의 존재에 기대고 있는 바 크다는 것이다. 내가 시간 되면 하라구 얼굴 보려 텔레비전에 앉는 것처럼. 아니 나만일까? 많은 시청자들이 청춘불패로부터 바라는 것이란 아이돌과 아이돌이 보여주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어떤 진솔한 모습일 것이다. 혹은 진솔하다고 믿는.

 

그게 문제다. 정작 청춘불패의 주인공은 아이돌이다. 그런데 청춘불패에서 가장 홀대받고 있는 것도 아이돌이다. 지난주 청춘불패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끄적이려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속에 없는 말은 어떻게 해도 못 쓴다. 시작은 할 수 있는데 그 다음을 잇지 못한다. 없는 말을 지어서 하는 재주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뭔가 놓치고 지나간 부분은 없는가. 마침내 다시보기를 하다가 무심코 지나쳤던 바로 그 장면을 발견하고 말았다.

 

"언니, 여기서 세수하면 분량 나와."

 

생얼을 드러내기 위해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하는 장면에서 하라구가 효민에게 한 말이었다. 그동안 내가 청춘불패를 보면서 가장 거슬렸던 말,

 

"분량!"

 

그것은 마치 계모에게 혼날까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 우물을 부지런히 왕복하는 콩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부모님께 야단맞을까 성적표 앞에 안달하는 아이의 그것과도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닮은 것은 돈을 벌어오라며 다그치는 부모에게 돈을 못 벌어와 불안해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어리다기에는 현아조차 어느새 주민등록증이 나올 나이다. 그러나 연예인으로서 그녀들은 이제 갓 데뷔한 신인들이다. 경험도 부족하고 연륜도 부족하고 아직 예능에서 자기 못을 하기엔 한참 어리고 미숙하다. 제작진에 자기주장을 하기에는 더더욱이다. 그런데도 하는 말이란 분량, 분량...

 

얼마나 그게 구차하게 보이느냐면 언젠가 말할 것처럼 때로 그렇게 분량을 만들기 위해 보이는 어설픈 예능들이 구걸처럼도 보이더라는 것이다. 예능감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자연스럽게 자기를 연기하는 선배예능인들에 비해, 되도 않는 예능을 억지로 쥐어짜내가며 하는 모습이란 마치 어린아이가 맞지도 않는 작업복을 걸치고 갱도로 들어가는 모습마저 연상시킨다. 솔직히 이것도 순화된 표현이고 이보다 더 심한 것도 느꼈었다.

 

언제부터인가 청춘불패에서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분량을 따지고 분량을 챙기려 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청춘불패의 관계가 파탄을 내기 시작했다. 억지 예능을 하고, 억지 개인기를 짜고, 그러면서 자연스러워야 할 캐릭터며 관계는 어느샌가 분량 뒤로 사라져버렸다. 오로지 분량. 어떻게든 분량. 그러면서 각종 굴욕도 당하고, 심지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은 세면하는 장면에서까지 분량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바로 얼마 뒤에 이어 나오는 효민의 방귀 이야기가 불편해진 것은 그래서였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분량을 뽑아야 하는가. 그래야 했는가.

 

말하자면 청춘불패에서 아이돌이란 노동자다. 더 정확히는 노예다. 제작진이 시키는대로 분량을 뽑아내는. 어쩌면 그것은 소속사의 요구이거나 강요인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분량을 늘리고 자기를 알려야 자기가 속한 팀, 나아가 소속사에도 이익이 될 테니.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이돌로서의 자연스러움을 잃고 분량을 만들어내는 예능노예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세면하는 그 짧은 순간에조차 분량을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철저히 길들여진. 아이돌스러운 순수함과 발랄함마저 예능에 종속당해버린. 이 얼마나 처참한 장면인가.

 

내가 그렇게 김신영을 싫어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가장 재미있다며 김신영을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김신영이야 말로 이렇나 구조에서 가장 첨단에 있을 테니까. 아이돌들에 분량을 강조하고 분량을 강요하며 억지예능을 시키는 것은 항상 김신영이었다. 그래서 김신영과 함께 있으면 어떻게든 쥐어짜듯 분량이 나왔다. 그것이 콩트이든 개인기이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재미있어 하고, 나같은 사람들은 그런 과정들에 불쾌해 하고 불편해 하는 것이리라.

 

곰태우에게 호감을 갖는 이유는 따라서 그 반대다. 굳이 분량을 욕심내지 않고 분량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냥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인다. 콩트를 하거나 개인기를 시키기보다는 스스로 악역이 되어 아이돌과의 관계에서 이야기를 만들려는 모습이 보인다. 크게 우습지는 않아도 그런 사이사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어떤 개성과 매력들이 그리 좋더라는 것이다.

 

아무튼 말했듯 내가 청춘불패를 보자는 것은 아이돌을 보자는 것이었다. 구하라를 보자는 것이었고, 최근엔 현아와 순규, 나르샤, 유리, 효민, 선화 모두를 보자고 보는 것이었다. 덕분에 관심도 없던 시크릿 음악까지 찾아듣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보자던 아이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분량에 안달하며 초조해 하는 햇병아리 예능인들만이 있으니. 아이돌이 아닌 어떻게 하면 분량이라도 뽑을까 망가짐을 자처해야 하는 더자란 예능인 뿐이더라는 것이니. 내가 기분이 좋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이번주는 그래도 꽤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주 분량에서는 굳이 분량에 대한 집착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자연스럽게 자기 모습을 연기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그리 마음에 들었던 것인데, 문득 지나치고 말았던 그런 부분들이. 단지 생얼이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세면을 하면서도 분량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모습들이.

 

정말 천덕꾸러기 자체랄까. 정작 프로그램은 아이돌이 주인공인 아이돌 버라이어티인데, 그렇기에 어떻게든 방송분량을 뽑으라 닥달당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들이다. 설마 그래도 이번주에서도 이랬는데 다음주는 더 심할까. 그러나 워낙 널뛰는 프로그램이라 안심할수가 있어야지.

 

다시 말하지만 내가 청춘불패를 보는 이유는 거기에 아이돌이 나오기 때문이다. 화려한 무대의상을 뒤로 하고 수수한 몸뻬 차림에 흙투성이가 되고 땀투성이가 되어 열심히 일하는 아이돌의 순수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억지예능을 하느라 주눅든 어설픈 예능인이 아니라 말이다.

 

도대체 그렇게 분량 뽑아서 어쩌자는 것인지. 아이돌 망가뜨리고, 아이돌 망신주고, 그래서 아이돌 이미지나 소모하려 들고, 하긴 그런 게 방송이기는 할 테지만 말이다. 언젠가 말한 것처럼 방송이란 그렇게 연예인의 이미지를 소모해서 돈버는 장사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연 제작진이 제대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했다면 아이돌의 이미지나 소모하면서 빌붙는 모습이란 가능했을까.

 

그래서 또 하는 말, 캐릭터와 관계. 그리고 상황. 분량을 짜내라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분량을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자기 캐릭터를 가지고 관계 안에서 상황에 대해 반응하면서 자연스럽게 분량을 만들어내라. 그래서 돋보이면 좋은 것이고 그래서 묻히더라도 또 다른 기회를 노리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약간은 드러나지 않게 배려해 주거나. 굳이 아이돌을 소모하지 않고서도 제대로만 만들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는 것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구하라더러 청춘불패에서의 병풍을 자임할 것은 권하고 싶어진다. 이대로라면 청춘불패를 통해 인지도는 높일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소모하고 말 것이니. 청춘불패따위에 그렇게까지 충성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복귀도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항상 구하라 자신임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항상 활달하고 건강한 구하라의 웃는 모습임을. 그것을 보자고 보던 청춘불패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면 과감히 버릴 밖에. 그깟 예능따위. 예능 못한다고 구하라가 구하라가 아닌 것도 아니고.

 

모르고 지나쳤어도 좋았을 생각들을 떠올린 바람에 기분이 좋지 않다. 설마설마 하면서도 그러나 단 한 줄도 더 나가지 못하겠더라는 것은 진심이라. 아니기를 바라지만. 아무튼 그렇다. 기분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