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또 오해영 - 아파라, 아파라, 헤어짐을 견디기 위한 주문

까칠부 2016. 6. 14. 04:52

차라리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열병이 이별보다 덜 아프다. 작은 신발이 실연보다 더 편하다. 아주 잠깐 문득 마음을 놓은 사이에도 다 헤아리지 못할 생각과 기억들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든다. 떠밀려간다. 술에라도 취할 수 있었으면. 잠에라도 빠져들 수 있었으면. 엉망이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한다. 무엇도 헤어짐보다 지독하지는 않다.


헤어짐을 홀로 견디는 오해영(서현진 분)의 모습이 먹먹하도록 절절하다. 싫어서 헤어진 것이 아니다. 미워서 멀어진 것이 아니다. 헤어져야 했기에 헤어졌고 멀어져야 했기에 멀어졌다. 인정해야만 했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박도경(에릭 분)과 자신의 사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헤아리고 따지고 각오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는 없다. 자신이 없어진다. 겁이 난다. 더구나 박도경마저 먼저 도망치고 있다. 믿을 수 없다는 것보다 불행한 것은 없다. 이제는 자신부터 살아야 한다.


자신들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자신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사랑하기 전이었다. 만나기도 전이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고 사랑하게 된 뒤 이전의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용서할 수 없는 잘못과 그럼에도 용서해야 하는 마음이 서로 만났다. 사랑하기 이전의 자신도 자신이고 사랑하고 난 뒤의 자신도 자신인데 어떤 자신을 우선해야 할 것인가. 과거의 잘못이 두려워 박도경은 도망가고 그럼에도 지금의 사랑이 소중하기에 오해영은 용기를 냈다. 먼저 도망쳐버린 박도경을 오해영은 더이상 믿을 수 없다. 오해영이 분노한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갈 내일의 시간이다.


때로 자기가 자기를 배신하기도 한다. 무수한 시간 속에 무수한 자신이 존재한다. 후회하는 것도 자신, 원망하는 것도 자신이다. 주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일로 비웃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당당히 회사에 출근한다. 아무렇지 않노라 힘주어 말한다. 그들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문제다. 박도경 자신의 문제다. 둘 사이의 문제다. 비로소 박도경도 깨닫는다. 이것은 지금 자신의 문제다. 먼 과거가 아닌, 사랑하기 전의 자신이 아닌, 오해영이라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난 지금의 자신의 문제다.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다. 단 한 마디가 필요했다. 바로 지금의 자신의 진심이 담긴 한 마디가.


오래 걸렸다. 쉽지 않다. 한 번 깨진 믿음을 다시 되돌리기란 무척 어렵다. 하기는 처음부터 믿고 싶어 했다. 믿지 않아도 어떻게든 믿으려 했었다. 단지 핑계가 필요했다. 계기가 필요했다. 고작 말 한 마디가 그 이유를 만들어준다. 별 것 아닌 말 한 마디인데 어느새 이유가 되어 준다. 오해영 자신의 말처럼 여전히 그녀는 쉬운 여자다. 아무에게나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단 한 사람에게만 누구보다 쉬운 여자다. 진심이 되어 달려간다. 우연히 마주친 병원에서 비명처럼 터져나오는 독설에 북받친 듯 뒤쫓아 달려가 박도경에게 안긴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설득당한 것이 아니다. 설득당해준 것이다.


어쩌면 헤어진 연인들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주 조금이라도 상대에 대한 진심이 남아 있다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대가 떠난 빈자리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 상실감과 공허를 어떻게든 견디며 내일을 맞아야 한다. 엉마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아무나 시비가 붙다가 낯선 곳에서 멍투성이가 되어 눈을 뜨고, 가끔은 해서는 안되는 일들까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만다. 오늘이 어제같은 것이 싫다. 내일이 오늘같은 것이 싫다. 아무렇지 않게 시작되는 똑같은 날들이 겨우 잊어가던 상처를 헤집는다. 무엇보다 애써 태연한 척 당당한 척 어깨에 힘을 주고 오늘을 견디는 오해영이 안타깝다. 그녀를 위한 박도경의 한 마디가 시청자에게도 구원이 된다. 다행이다.


차라리 헤어짐보다 더 시린 것이 잊혀진다는 것이다. 쓰리고 아린 것이 아무렇지 않게 되어간다는 것이다. 특별함마저 사라진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가장 간절했고 아팠던 사랑이었다. 그렇게라도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랐다. 서로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상처로라도 남길 수 있게. 어느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 버렸다. 더 큰 새로운 상처가 옛상처들을 가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더이상 자신은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특별한 의미가 아니다. 상실과 공허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것은 상당히 전형적이다. PPL인가는 모르겠지만 너저분한 음식찌꺼기들을 한꺼번에 하수구로 버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어찌되었든 예쁜오해영(전혜빈 분) 역시 전혀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지금을 견디며 내일을 살아야만 한다.


조금씩 달라진다. 죽음을 앞두고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 뿐이지만 박도경 자신의 의지에 의해 조금씩 그 회상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실제 있었던 사실인가.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비록 꿈일지라도 바로 자신의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은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 오히려 이제 곧 죽을 것이기에 더 구애될 필요가 없기다. 어떻든 결국 꿈속에서라도 자기가 행복하면 된다. 자기가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않을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단지 회상이기만 했을까? 부디 자신의 회상속에서만이라도 그 사람에게 행복한 기억만을 남길 수 있기를.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남의 이야기일 때 비극은 희극이 된다. 공포는 헤프닝이 된다. 아무리 친구의 누나라도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남이다. 그렇게 여긴다. 그리고 공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은밀하게 다가온다. 이진상(김지석 분)의 철없는 웃음이 차라리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진상 자신이 파놓은 덫이 조금씩 그의 목을 조이고 있다. 노련한 사냥꾼처럼 박수경(예지원 분)이 그를 노린다. 박훈(허정민 분)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터무니없는 오해로 넘어지고 뒹굴며 한 바탕 코미디를 보여준다. 모두가 바쁘다. 마음이 분주한 빈 자리를 채워준다. 드라마에서는 양념이지만 각각이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과연 디테일이 강하다. 배우들의 연기가 마치 시청자 자신이 실제 겪는 듯 생생한 감정들을 전해준다. 함께 슬퍼하며 함께 웃는다. 함께 화내고 함께 원망한다. 그리고 기뻐한다. 안타까워하며 안달한다. 어떤 기억들을 떠올린다. 과거이거나 아니면 먼 미래이거나. 박도경의 꿈이며 시청자 자신이 꾸는 꿈이기도 하다. 꿈속에서 웃는다. 현실에서도 웃는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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