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청춘불패 - 노유민을 통해 보는 청춘불패의 문제...

까칠부 2010. 2. 27. 08:11

사실 이건 전에도 했던 말이었다. 청춘불패에서는 사건이 안 일어난다.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밋밋하게 캐릭터도 관계도 없이 흘러간다.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유능한 MC가 있어서 적절하게 상황을 이용해 상황극을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성 강한 캐릭터가 있어서 중심으로 다른 캐릭터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다시 남자의 자격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만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이경규, 후자가 김태원과 김성민이다.

 

전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후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역시 남들보다 강한 개성으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일 게다. 더 수선을 피우고, 더 호들갑을 떨고, 더 망가지고, 더 굴욕을 당하고,

 

어느 정도는 비호감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이미지관리는 신경쓰지 않는 무모함과 대범함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아이돌이 그럴 수 있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지금 한선화가 당하는 굴욕만 그리로 상당부분 돌려도 그런 게 나온다. 지금 나는 한선화가 무척 아깝다. 그런 식으로 백지캐릭터나 소모하고 있을 한선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신영이 쉐프놀이를 할 때 김신영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해맑은 모습은 그녀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히려 백지 캐릭터이기에 아무 거리낌없이 순진무구하게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은. 그러나 김신영의 한계인지 제작진의 한계인지 결국 한선화는 백지캐릭터만 소모당할 뿐이다. 효민은 솔직히 지금 하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의 병풍캐릭터가 거의 한계로 보이고. 더 들어가면 위험하다. 아직 효민은 수위를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청춘불패를 보면 일단 G7은 아이돌이라 무리고, G8이 되고 싶어하는 김신영도 웃음욕심은 있는데 굴욕에 대해서는 상당히 꺼려하는 것이 있다. 김태우가 김신영보다 낫다는 것은 다른 멤버들의 공격을 스스로 받아줄줄 안다는 것일 테지만 역시 김태우도 선을 넘으려 들지 않는다. 노주현이야 뭐...

 

즉 그렇게 사건을 일으켜줄 사람이 없다 보니까 모두가 어디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는 거다. 자기 캐릭터가 이거다 보여주려 해도 보여줄만한 사건이 없으니 어영부영 일이나 하다가 개인기나 하고, 콩트나 하고,

 

그것을 어제 노유민이 제대로 보여주었었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출연한 게스트 가운데 가장 유용한 게스트가 아니었을까. 그냥 자기 혼자 예능감을 드러내고 만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 나르샤의 입을 빌어 동바오의 캐릭터를 만들어 G7 사이에 녹아들었고, 구하라와 노주현 등에 적절히 반응함으로써 그들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상황극을 이끌었다.

 

정말 간만이었다. 구하라가 오빠를 농락하는 못된 여동생이 되어 노유민을 잘한다 부추겨 부려먹고, 그것을 다시 유리와 나르샤에게까지 선동하여 분위기를 노비 노유민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구석에서는 신동이 현아와 노닥거리다가 그와 비교되고 있었고. 딱 이런 게 상황이라는 것인데. 정말 오랜만에 구하라의 진짜 예능감이라 할만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본이면 나이스고! 구하라의 애드림이면 판타스틱이고! 그러나 그 모든 전제는 나서서 굴욕을 당해주는 노유민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노유민이 탐난다 한 것이었다. 노유민의 굴욕에 어울리는 캐릭터는 스스로 망가짐으로써 다른 G7들에게도 여지를 만들어줄 수 있을 테니까. 노유민이 바보같고 우스워 보이는 만큼 다른 멤버들도 보다 큰 부담 없이 자기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을 테니까.

 

이를테면 G7이 감당해야 하는 모든 굴욕과 부담을 흡수하는 역할이라 할 것이다. 마당쇠랄까? G7이 망가지기 전에 알아서 망가져주고, G7이 굴욕을 당하기 전에 알아서 굴욕을 당해주고, 개울에 발을 담글 때도 유리와 나르샤는 살짝 발만 담그고 마는 대신 노유민을 두 발을 모두 담그던 것처럼. 원래는 벌칙도 그렇게 독하게 주어야 하는데 아이돌이다 보니 그런 것이 부족한 게 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이 없다 보니 아이돌들은 아이돌답지 않게 스스로 나서서 망가지지 않으면 안 되었고. 지금은 아예 청춘불패를 아이돌 망가지는 예능이라 여기며 아이돌 망가지는 것만을 기대하게 되었다. 아쉬운 부분이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하여튼 문제는 프로그램의 캐릭터 구성이다. G7까지는 좋다. 그런데 김신영은 굴욕캐릭터로 어울릴 줄 알았더니 정작 다른 아이돌에게는 굴욕을 줘도 자기가 굴욕을 당하지는 않는다. 노유민과는 달리 아이돌을 망가뜨릴수는 있어도 자기가 망가지지는 않는 타입이다. 김태우가 그나마 굴욕에 익숙하지만 나름 가수로서의 커리어도 있으니 한계가 있고, 설마 노주현에게 그런 역할을 맡길까?

 

즉 전혀 아이돌을 보호할만한 배려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돌을 대신해 망가질수도, 굴욕을 당할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역할이라곤 어디에도 없으니. 그래서 결국에 아이돌 자신이 망가져야 하고, 굴욕을 당해야 하고, 그래도 아이돌인데도.

 

솔직히 효민이나 한선화나 써니나 지금은 무척 아깝다. 완전 개그캐릭터가 정착되어 버려서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한선화야 생짜 신인이지만 효민과 써니는. 아이돌 망가뜨려서 웃기는 타입이 아닌, 자기가 망가짐으로써 아이돌을 살리는 타입이 MC가 있어주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굴욕을 당하며 G7을 아이돌로서 보호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굳이 이미지관리할 것 없이도 그냥 노는 것만으로도 분량이 나오도록 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이라는 것이.

 

아무리 마당쇠가 나서서 웃겨봐야 굴욕은 굴욕, 망가짐은 망가짐이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G7아이돌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했을 것이다. G7이 아이돌로서 한 발 물러서서 단지 그에 묻어가며 재미를 줄 수 있었다면. 그러면 좀더 해맑은 분위기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청춘불패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 아쉽고 아깝고.

 

참 재미있었다. 노유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상황극이. 거기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들이. 관계들이. 개구지고 짓궂고 그러면서도 해맑고 밝고. 초반 잠시 나오고 이후로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라. 더구나 새삼 노유민이 끼어든다고 흐트러질만한 관계라는 것도 전혀 없다는 것이. 이걸 도대체 뭐라 말해야 할까? 재미는 있었지만.

 

아무튼 노유민을 통해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과연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인가. 이미 너무 늦었기는 하지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