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비밀의 숲 - 열흘의 시한, 영은수 살해당하다

까칠부 2017. 7. 23. 07:20

여기서 또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나? 설마 영은수(신혜선 분)를 죽일까? 아니 죽이나 마나 저 의욕만 앞서는 순진한 아가씨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생각지 않고 있었다. 또 어디 가서 사고나 치고 있겠거니. 그래도 나름대로 검사고 절박하니까 황시목(조승우 분)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잔인하다. 정확히 냉정하다. 어차피 이야기의 인물이란 주제를 위한 수단이고 대상일 터다.


역시나 윤과장(이규형 분)의 문신은 작가가 파놓은 의도된 함정이었던 듯 싶다. 문신의 뜻이 대한민국 특수부대인 UDT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동안 UDT를 거쳐간 사람만 수만일 텐데 그 가운데 윤과장만 그런 문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윤과장이 같은 문신을 하고 있을 용의자를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어째서 영은수가 살해당한 현장에 윤과장이 넋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일까. 영은수가 윤과장의 문신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윤과장과 같은 문신을 한 누군가를 기억해냈기 때문은 아닐까. 황시목이 이미 영은수와 서동재(이준혁 분)에게 자신의 집에 침입한 범인의 사진을 보여주고 정체를 물은 바 있었다.


하필 성문일보에 살해당한 박무성이 과거 서부지검 검사들에게 스폰서 역할을 했었다는 사실을 제보한 것은 서부지검 검사장 이창준(유재명 분)의 뒤에 도사린 한조그룹과 성문일보 사이에 얽힌 미묘한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조그룹만한 굴지의 대기업과 관련한 기사를 아무 거리낌없이 내보낼 정도라면 역시나 그만한 대기업을 배경으로 둔 계열사여야 할 테고, 그러면서도 같은 대기업인 한조그룹에 불리할 수 있는 기사를 덮거나 묻지 않고 바로 내보낼 확실한 동기를 가져야만 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원래는 셋이었다. 과거 성문일보 사장과 문제가 된 혼담으로 얽힌 한조그룹의 회장 이윤범(이경영 분)과 딸 이연재(윤세아 분), 그리고 성문일보 사장과 혼담이 오가던 이연재를 낚아채 결혼한 이창준 자신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정은 오류를 드러낸다. 과연 그 이윤범과 이연재, 혹은 이창준이 자신들에 불리할 수 있는 내용을 그것도 성문일보에 흘릴 가능성이란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와 동기가 그들에게 있을 것인가.


그래서 새로운 용의자가 등장한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장관까지 그만두고 너무 오랫동안 야인으로 지낸 탓에 감이 아주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나중에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성문일보에 박무성과 서부지검의 관계를 제보한 사람이 누구인가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 굳이 나서서 성문일보 사장과 이창준 사이에 얽힌 과거의 악연까지 들려주고 있었다. 영일재(이호재 분) 전장관 또한 성문일보와 한조그룹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던 또 한 사람이었다. 황시목은 바로 영일재 전장관을 용의선상에 올렸는데 만일 그마저 영일재가 의도한 것이었다면 그같은 사실을 아는 또 다른 누군가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자신을 통해 진범에게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은밀하게 단서를 던진 것이거나. 


굳이 오랫동안 깊숙이 감춰두었던 한조그룹과 관련한 증거를 다시 찾아서 손에 쥔 이유와도 관계까 있지 않을까. 황시목에 의해 주변의 상황이 바뀌며 영일재의 내면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황시목의 생각철험 그렇게 이론만 파는 학자이기만 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적을 앞에 두고 숨죽이고 자신을 감추려 하는 것은 비단 맹수의 노림을 받는 초식동물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가 한 번의 기회를 노리기 위해 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숨긴다. 더구나 자신이 정의라 말했던 지켜야 할 가족이 - 그것도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어차피 안 될 것을 모르고 필사적이었던 애처롭고 안쓰럽던 딸 영은수가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더이상 세상을 등진 무력한 노인으로 남아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도 하나의 변증법이라 할 수 있을까? 스폰서로부터 부당한 향응을 받은 고위검사가 그러나 누구보다 검사로서 사명을 가지고 검찰이라는 조직을 위하고 있었다. 자신의 비위를 밝히려는 후배검사를 적대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누구보다 그를 아끼고 감싸주고 있었다. 누군가는 돈을 받고, 누군가는 비밀스럽게 뒤를 캐고 있고, 누군가는 인정에 이끌려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진심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혼자서만 살기 위한 술책이었다. 먼저 사과하고 양심선언을 했던 탓에 형사계장에 대한 징계는 최소한으로 그치고 말았다. 위에서 하루빨리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지으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김경장을 희생양삼아 자기만 살겠다고 그리했던 것이다. 경찰서장의 지시를 받아 못할 짓도 많이 하고 미운 털도 박혔던 김경장이지만 나름대로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하긴 원래 인간이란 그런 것일 터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으며, 오른쪽이 있으면 왼쪽이 있다. 자석은 아무리 쪼개고 부숴도 항상 S극과 N극으로 나뉜다. 마치 놀리듯 매번 등장인물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딱 오해하기 좋게 보여주고, 그것이 오해란 것을 밝히고, 다시 그마저도 오해였던 것처럼 다른 모습을 연출해 보여준다. 황시목을 위한 것이다. 아직도 단순한 흑백의 세계에 살고 있는 황시목을 위해서 세상은 이렇게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을 이해할 때 인간과 세상을 보다 따뜻한 눈으로, 무엇보다 인간인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어쩌면 황시목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지 않을까.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첫째 전제다.


특임팀이 마침내 해체되었다. 다시 다른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아예 언론에 흘려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 부장검사인 강원철(박성근 분)은 검찰총장에 의해 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다시 강원철은 황시목을 형사 3부장으로 임명하고 있었다. 사실은 적당히 타협하자는 유인책이다. 검사장까지 되었으니 더이상 전처럼 마음대로 날뛰지 말라. 부장까지 시켜줄테니 이쯤에서 적당히 눈감고 시키는대로 넘어가라. 기회가 아니다. 오히려 리미트다. 징계가 아닌 호의에 의한 승진이기에 더욱 거부하기 어렵다. 방송에서 국민과 약속한 두 달의 시한이 이제 열흘 남았다. 열흘의 말미를 얻는다. 열흘 안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강원철이 시키는대로 연수든 뭐든 떠나야 한다. 아직 단서도 거의 없는데 과연 열흘 안에 황시목은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순간 영은수가 살해당당하며 새로운 계기가 만들어진다. 무려 현직검사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중대한 사건인 것이다. 막바지에 어울리는 더 강한 동기와 계기다. 그리고 위기감과 절박함이다.


확실히 황시목과 한여진(배두나 분) 사이에는 뭔가가 있다. 황시목이 한여진이 선물한 그림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고 한여진은 그것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굳이 커피를 사들고 황시목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찾으면 어딘가에는 반드시 단서가 있다. 우악스러울 정도로 집요한 정공법을 보여준다. 모든 CCTV를 뒤져서 마침내 황시목의 집에 침입했던 범인의 모습까지 잡아낸다. 이윤범이 황시목이 영일재를 찾아간 것을 알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회수하라 지시를 내린다. 김가영의 실종과 영은수의 살해까지 막바지처럼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혼란이 어쩌면 기회가 되어준다. 그 와중에 어쩌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증거들이 자연스럽게 원래 있었던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허무한 결말을 예정한 것이 아니라면.


그러고보면 어느새 이창준이 아닌 황시목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었다. 마치 악의 보스처럼 한가운데서 드라마를 주도하던 이창준이 이윤범에 의해 주변으로 물러나며 황시목이 중심에서 사건을 끌어가고 있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해결한다. 그동안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건의 얼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째서 죄는 저질러지는가. 악은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그 악과 죄는 어떻게 처단해야 하는가. 남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