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녀의 법정 - 성범죄, 때린 사람의 추억 맞은 사람의 악몽

까칠부 2017. 11. 15. 10:10

한 마디로 피라미였던 것이다. 성범죄의 유죄입증이 얼마나 어려운데 그것도 2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혐의만으로 로펌 고문시절부터 자신을 보좌했던 대변인을 내치고 있었다. 조갑수로부터 버림받고 막다른 궁지에 몰려 먼저 자신을 찾아온 김형수를 보고 마이듬(정려원 분)은 과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과연 김형수의 장담대로 그에게서 조갑수를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증언과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까?


때린 사람은 웅크리고 자고 맞은 사람은 발뻗고 잔다. 개소리다. 때린 사람은 자기가 때린 이유를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다. 때린 것이 아니라 장난삼아 살짝 툭탁거린 것 뿐이다. 상대가 먼저 자신을 때려서 정당방위로 할 수 없이 마주 때린 것 뿐이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때렸다. 심지어 아예 때린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은 때린 적도 없고 아무 잘못도 한 적이 없다. 그러면 맞은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합리화할까? 때린 사람이 잡히지도 않고 처벌받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고 있는데.


김형수가 징역 5년형을 선고받는 것을 보고 법정을 나서며 피해자가 간절하게 내뱉은 한 마디가 바로 그것을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김형수가 처벌받는 것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기의 잘못이 아니다. 자기의 탓이 아니다. 오로지 김형수가 잘못한 것이다. 김형수가 나빴던 것이다. 그것을 국가라고 하는 보편적인 권위에 의해 객관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닌 김형수가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동안 남성들을 두려워한 진짜 이유였는지 모른다. 자신이 없는 것이다. 자신조차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환멸이고 혐오이고 증오였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자신은 다른 남자 앞에 나서서는 안된다. 다른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도 안된다. 같은 상황이 오면 그때도 자신은 자신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잘못한 것은 지키지 못한 자신이 아닌 자신을 그렇게 만든 범죄자였을 것이다.


비로소 아직은 힘들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마주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함께 사랑해 줄 수 있다. 그래서 국가의 사법제도가 중요한 것이다. 오히려 사적인 복수보다 더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준다. 범죄자들의 죄를 밝히고 처벌함으로써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영혼의 상처마저 어쩌면 구원할 수 있다. 확인해준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해자의 책임이다. 범죄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피를 토하며 법에 범죄자의 처벌을 호소하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저놈이 나빴다고. 피해자인 나와 가족인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고. 그래서 검사는 때로 형사에서 피해자를 위한 변호인이기도 해야 한다.


확실히 마이듬에게 변호사는 적성이 아니었다. 마이듬의 적성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상대를 허물어뜨리는 검사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 만큼은 변호사로서 상당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변론은 자신의 잘못을 가려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대신해 상대의 잘못과 죄를 당당히 밝혀서 처벌받게 하는 것이다.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서도 반드시 조갑수의 죄를 밝히고 그를 법정에 세워 처벌받게 만들 것이다. 새삼스런 다짐이다. 민지숙(김여진 분)이 처음으로 마이듬과 그 과정을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마이듬의 어머니 곽영실(이일화 분)이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반전이 아니었다. 설마 죽었을까 싶었다. 그럴 것이면 그동안 곽영실의 생사로 그렇게 길게 오래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여진욱(윤현민 분)과의 관계가 걸렸다. 만일 백상호(허성태 분)의 말대로 곽영실이 조갑수의 지시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 마이듬으로서는 여진욱의 어머니 고진숙(전미선 분)을 용서할 최소한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머니가 납치당하고 감금당하는 것을 도왔던 공범인데, 더구나 그로 인해 목숨까지 잃었는데 아무리 여진욱과 사이가 좋아도 그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어머니 때문에라도 여진욱과 사이가 좋아지는 것마저 용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쁘지는 않지만 마이듬이든 여진욱이든 너무 불쌍해진다. 드라마의 미덕은 현실과 다르게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드라는 것이다.


어쩌면 고진숙이 자신과 일하던 간호사를 요양병원으로 보내 곽영실을 보살피게 한 것일 수 있다. 백상호의 지시, 혹은 부탁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조갑수의 악의로부터 곽영실을 격리하여 지금까지 보호하고 있었다. 아마도 백상호가 만일을 위해 감춘 단서가 있다면 그곳에 있을 것이다. 하긴 곽영실의 존재만으로도 조갑수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마이듬과 민지숙이 곽영실의 생존을 알고 만나게 된다면. 


수십년간 조갑수 한 사람만을 노리고 준비해 온 민지숙이 있었다. 그녀의 협력자로 인해 킹덤의 존재가 드러났다. 바로 이곳에서 조갑수의 모든 인맥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필 안태규의 살인도 바로 그곳에서 일어났었다. 그 살인의 목격자이며 공범인 백민호가 오히려 살인의 죄를 뒤집어쓰고 형마저 살해당한 원한을 품은 채 감옥에 갇혀 있다. 조갑수의 아내 역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하다.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