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매가 9700원... 보아하니 정식발매되고 꽤 후려쳐서 팔려는 사이트기 몇 되는 것 같은데 조금 후회도 된다. 아깝냐고? 글쎄...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겠다.
일단 곡구성은 좋다. 타이틀곡 "생각이나"에 이은 비슷한 분위기의 발라드 "또다시 사랑이", 그리고 요즘 듣기 힘든 후련하게 질러주는 정통록 "OZ", 다시 발라드 "어제""슬픈사슴", 마지막으로 적당한 작열감을 선사하는 "흑백영화"의 끈적거리면서도 시원한 마무리... 어느 정도 일체감도 느껴지고 재미도 있고 그럭저럭 괜찮은 곡구성이기는 한데...
문제는 이게 너무 심심하다는 것이다. 말했듯 생각이나와 또다시 사랑이 두 곡이 모두 발라드다. 어제와 슬픈사슴도 완전 발라드. 원래 슬픈사슴은 김태원식 프로그레시브의 초기작 중 하나로 절규하는 듯한 김태원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꽤나 강한 인상의 락이었지만, 이번 버전에서는 정동하 혼자 목소리만 들리는 터라 그냥 밋밋한 발라드가 되고 말았다.
2집 앨범에서 회상3과 슬픈사슴에서의 김태원의 목소리를 유일한 에러로 꼽은 평을 보았던 것일까? 하긴 슬픈사슴을 비롯 부활의 히트곡 대부분이 리메이크되었던 이승철 1집 파트2는 내가 가장 혐오하는 앨범 가운데 하나다. 아주 노래들을 어디 병신들로 만들어 놓아서. 슬픈사슴도 그런 경우다. 원작자인 김태원의 입장이야 어떨지 몰라도 이런 건 슬픈사슴이 아니다.
그나마 "어제"의 경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라 새로운 느낌이 있었다. 리메이크라지만 영화 아이러브유가 완전히 망해버린 탓에 - 여기에 그 유명한 김남주, 오지호, 윤상현이 출연하고 있었다. - OST도 완전 죽어 전혀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7집스런 분위기에 최근의 편곡과 연주가 더해지면서 독특한 느낌이 들었다. 이성욱과 정동하의 보컬을 은연중 비교해가며 듣는 재미도 있었고.
그리고 "흑백영화"... 처음에는 그렇지 않아도 심심한 앨범에 이건 또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슬픈사슴"이나 "흑뱅영화"나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음악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때와는 또 전혀 다른, 정동하의 색깔을 덧씌우고, 지금의 멤버들의 색깔을 더한, 심심하기만 하던 앨범의 끝에서 살짝 두드려주는 절제된 힘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곡 자체도 좋았고, 배치도 좋았고. 그러나 역시 원곡을 부른 김재기와의 비교는 어쩔 수 없었다. 워낙 김재기의 포쓰가 강했던 터라. 정동하는 목소리가 너무 맑다.
끝으로 두 번 째 트랙이지만 어쩔 수 없이 마지막으로 몬 서재혁 작곡 김태원-정동하 공동작사의 "또다시 사랑이"... 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확실히 서재혁의 발라드는 뭔가 부족하다. 너무 세심하달까? 아니면 배려한달까? 중요한 데서 한 걸음 물러서는 느낌? 멜로디도 괜찮고 다 괜찮은데 확 다가서는 맛이 없다. "노을"도 그래서 별로인데, 그러나 반면 "개미"나 "섬""이번 앨범의 "OZ"만 보더라도 어쩐 부분에서는 아주 괜찮은 곡을 쓰기도 하더란 말이지. 발라드는 아무래도 맞지 않는달까? 역시나 이번 앨범의 구멍이었다. 가장 재미없었던, 여전히 듣기는 듣는데 어디다 포인트를 둬야 할 지 몰랐던.
신곡 셋, 리메이크 셋,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원래는 싱글로 내려던 것을 - 그래서 딱 신곡 셋이다. 신곡 셋이면 디지털 싱글 하나 채울 분량 나온다. 리메이크 셋은 앨범으로 구성을 맞추려 조금 급조했달까? 곡이라는 게 바로 쓴다고 나오는 게 아니고, 밴드음악이라면 더욱 준비에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런 점에서 싱글이 아닌 앨범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다. 비록 슬픈사슴에서 약간 실망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꽤 수준높은 음악을 들려주었고. 다만 그럼에도 미니앨범EP주제에 예약할인해서 9700원이라는 가격은 조금 센 감이 없잖아 있다.
물론 나름대로 돈값은 한다고 특전은 있다. 앨범 케이스가 북형식으로 되어 있어 멤버들의 사진과 사인, 리더 김태원의 멘트들이 심심치 않게 내용을 채우고 있고, 시디 내용을 보면 용량이 남아서인지 뮤직비디오와 따로 음원 추출하는 수고 덜라고 MP3파일도 고용량으로 넣어놓고 있고. 월페이퍼니 해서 사진도 꽤 많다. 그냥 비싼 것은 아니라는 건데,
다만 문제라면 나의 경우 부활의 확실한 팬까지는 아니라 그런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원도 따로 FLAC파일로 추출해서 964kbps로 듣고 있고, 멤버들 사진이야 아이돌 팬클럽도 아니고 그닥 필요를 못 느끼고, 뮤직비디오 또한 굳이 따로 챙겨 볼 필요가 있나 싶게 그리 잘 만든 것이 아니고. 워낙 소속사 없이 자체적으로 만든 뮤직비디오이다 보니 저예산이라는게 한눈에 들어오는데다, 중간에 뜬근없는 CG가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곡 자체가 좋으니 별상관은 없지만, 굳이 뮤직비디오로 음악을 듣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달까? 그래서 이래저래 다 치우고 나니 남는 것은 곡 여섯 달랑...
참고로 얼마전 나온 백두산 4집을 내가 9800원엔가 배송비 없이 주고 샀다. 물론 백두산 4집도 신곡 네 곡에, 리메이크 둘, 신곡 리믹스 둘 해서 곡구성이 고만고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여덟 곡 꽉 채운 정규앨범과 여섯 곡 헐렁한 미니앨범의 차이로는 확실히 그렇다. 아주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비싸달까?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래도 부활 멤버들의 사진과 김태원이 직접 쓴 친필 메시지, 시디모양의 플라스틱에 인쇄된 사인을 갖고 싶다면 가치는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음원과 따로 넣어준 MP3와 뮤직비디오, 월페이퍼 등의 이미지 등에도 매력을 느낀다면. 단지 나는 그런 것들에 별 매리트를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고.
아무튼 간만에 꽤 괜찮은 앨범이었다. OZ에서 약간 기계음을 쓰기는 했지만 정말 간만에 듣는 보컬의 날목소리에, 또 간만에 듣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날연주에, 그립달까? 마치 인스턴트식품만 먹다가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은 그런 느낌이다. 아니 어머니까지는 그렇고 여자친구? 그동안의 부활의 앨범들에 비해 딱히 더 낫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 부활스런 장점들은 아마도 11월께 발매되는 파트2에 실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비나, 날개같은 곡들이나, 1971년 여름, second demension, 4.19 코끼리 탈출하다 같은 연주곡 같은 것들 - 그래도 나름대로 돈값은 한 앨범이라 하겠다. 아쉽지만 아쉬움조차 만족스러운. 다만 이 음반이 대박이 날까는 나로서는...
써놓고 나니 어째 까는 글이 되고 말았는데 그러나 이런 긴 글을 쓴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앨범이라 하겠다. 가치가 없는 앨범에 굳이 시간씩이나 들여 이런 긴 글을 쓰지는 않을 테니. 다만 현재의 대세가 그러하니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 뿐. 그리고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곡이 몇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11월 발매되는 파트 2를 기대해 보겠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부활만의 색깔을 바라며.
아무튼 또 하나 이 앨범의 강점이라면 김태원의 신곡이 한 곡, 서재혁의 신곡이 둘이나 된다는 것. 부활을 김태원의 원맨팀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안된 이야기지만 그동안 부활의 앨범에는 부활의 다른 멤버들의 곡이 곧잘 실리고 있었고, 라이브에서도 이들이 작곡한 곡이 연주되곤 했었다. 이번에는 무려 그 비율에서도 김태원을 넘어서고 있는 셈. 부활의 새로운 변화랄까? 나로서는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라 하겠다.
결론은... 최소한 약간의 비싼 만큼은 하는 앨범은 된다는 것.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상도 될 수 있겠고. 나야 워낙 메마른 사람이라. 음악은 좋았다. 일단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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