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가창력에 대해서...

까칠부 2009. 8. 31. 06:42

예전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고음이 올라가고, 얼마나 기술적으로 능란하고, 얼마나 감정표현이 잘 되고...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다 부질없더라는 것이다. 간단히 원더걸스의 텔미를 이승철이 불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녀시대의 지를 김연우가 불렀다면? 브라운아이즈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를 빅마마가 불렀다면 또?

 

그렇지 않은가? 결국 다 자기에게 맞는 노래가 있는 것이다. 아니 노래에 맞는 목소리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승철이 부른 사랑할수록처럼.

 

물론 이승철의 사랑할수록을 들으면 뭔가 명쾌하다. 아름답고 능란하고. 그런데 정작 사랑할수록이라는 노래의 맛을 살려내는 것은 그보다 훨씬 격이 떨어진다는 정동하다. 더 정확히는 김재기다. 소나기도 그렇다.

 

부활의 음악을 상징하는 것은 음울한 서정성이다. 마치 안개비가 자욱이 내리는 날 창 너머로 어스름한 빗소리를 듣는 듯한 그런 촉촉함? 그것을 가장 잘 살린 보컬이 김재기다. 그 다음이 김재희. 그와는 다른 색깔로 음울함을 살려낸 것이 김기연. 정동하다 또 그와 닮았다. 개인적으로 부활 역대 최고라 일컫는 이성욱보다 정동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카라의 "미스터" 같은 노래는 역시 카라에게 어울린다. 그녀들이 갖는 깜찍함? 그녀들이 갖는 어쩐지 활력이 느껴지는 귀여움이야 말로 그들의 음악에 맞는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가 부르는 "미스터"라니. 아니 프리티 걸이야 말로 카라의 노래였지.

 

그러면 된 것이다. '프리티 걸"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그런데 그 노래가 카라와 너무 잘 어울리지? 그러면 카라가 그 노래에 있어서는 최고의 가수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맛인 것이지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전인권의 갈라지고 깨지는 고음도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누가 그런 깨지는 목소리를 내겠는가? 누가 그런 상처 가득한 목소리로 대중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겠는가? 그런 노래를?

 

한때 아이돌의 가창력에 대해 비난도 하고 아예 외면도 하고 하던 내가 오히려 노래 못하는 아이돌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다. 그것이 좋으니까. 매력적이니까. 기술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아무튼 언제부터인가 노래라 하면 고음이 전부가 되어서, 그리고 기술이 전부가 되어 버렸다. 음색이 어떻고 저떻고, 그게 음악의 전부냐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인기가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달까? 그냥 인기가 있는 음악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들을만하다."

"돈을 내고 드을만한 가치가 있다."

 

시장은 냉혹하다. 대중도 냉혹하다. 단지 멍청할 뿐.

 

아이돌 가창력 논란이 우스운 이유다. 누가 더 노래를 잘부르고 못부르고, 단지 색이 맞고 안맞고일 뿐인데. 아주 음치만 아니라면. 하여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