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었을까? 처음 애니메이션으로 접했을 때 느꼈던 위화감은? 오히려 소설로 읽으면서 더 분명해진다. 아, 고등학교 2학년이구나. 아니 그보다 내가 그새 또 그만큼 늙었구나.
원래 사람은 아무것도 모를 때 오히려 더 완전하고 완결된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몇 년 전 불었던 안철수바람 같은 것이다. 안철수가 처음은 아니었다. 더 멀리는 박찬종이 있었고, 안철수보다 먼저 문국현이 그런 경우였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문재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의 정치에 실망한 나머지 기존의 정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새롭고 깨끗한 무언가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있을까?
아마 아는 사람도 드물 일본만화 '나의 마리'에서도 여신으로 숭배하기까지 했던 짝사랑상대 마리가 다른 남자와 잤다는 사실을 알고 패닉에 빠져 아예 상대를 부정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든데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만화의 주인공 카리가리 히로시 역시 여성에 대한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풋내기 동정이었었다. 여성을 이성으로 접한 경험이 없기에 여성을 제멋대로 이상화 우상화 대상화하게 된다.
주인공 히키가야 하치만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진실된 것'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히키가야 하치만에게 여자캐릭터들인 유키노시타 유키노나 유이가하마 유이, 심지어 후배인 잇시키 이로하까지 흔들리는 이유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 겪었던 수많은 관계의 실패가 마침내 관계를 부정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이상적인 관계를 그리게 된다. 여우의 신포도와도 같다.
히키가야 하치만이 가진 가장 큰 트라우마의 주인공 오리모토 카오리에 대한 이후 독백에서도 그것은 그대로 드러난다. 원래 자기의 감정은 그것밖에 안되는 것이었다. 전혀 진심도 아니었고 진실도 아니었다. 그런데 원래 처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란 그런 정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만나자마자 한 눈에 반해서 어떤 결점도 단점도 모두 눈감고 목숨까지 내거는 경우란 거의 소설에나 있는 것이다. 과연 오리모토 카오리가 히키가야 하치만의 마음을 받아주었어도 히키가야 하치만은 그런 결론을 멋대로 내릴 수 있었을까.
문제는 유키노시타 유키노나 유이가하마 유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히키가야 하치만이 이상적인 집단과 관계를 설정하여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한다면, 거꾸로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이상적인 자신을 앞세움으로써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려 한다. 보다 자신을 채찍질해서 이상적인 자신 - 처음에는 언니 하루노, 그리고 다음은 동경의 대상인 하치만이 될 수 있다면 지금의 단절과 고립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히키가야 하치만과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대립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며 이후 그같은 서로의 차이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면 유이가하마 유이는 조금 나은가. 오히려 관계에 대해 가장 겁먹고 두려움에 떠는 것은 유이가하마 유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주위의 눈치를 보며 주위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 자기 주장이나 생각같은 것 없이 주위에 맞춰 따라가며 그런 자신에 안도한다. 말하자면 유이가하마 유이 역시 관계에서의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관계를 절대시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잇시키 이로하는 조금 더 영악한 유이가하마 유이였다. 그보다는 조금 더 영리한 유키노시타 유키노였다. 그리고 조금 더 긍정적인 히키가야 하치만이기도 했다. 적당히 비관적이고 적당히 부정적이면서 그러면서도 그를 위해 자신마저 적절히 이용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잇시키 이로하에게도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란 한 편으로 맞지 않은 옷과 같은 컴플렉스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지점을 히키가야 하치만의 고백이 적확하게 꿰뚫는다.
소설은 그같은 컴플렉스 투성이의 관계에 서툰 세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봉사부라고 하는 닫힌 세계의 주민인 그들이 의뢰라는 형식으로 외부의 고민들과 만나면서 스스로 고민하고 갈등하며 깨닫고 성장해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름아닌 봉사부의 서로들이었다. 히키가야 하치만이 유키노시타 유키노와 유이가하마 유이에게 자극받고 영향받고,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히키가야 하치만과 유이가하마 유이에게 이끌리며 흉내내고, 유이가하마 유이가 히키가야 하치만과 유키노시타 유키노와 부딪히며 껍질을 벗는다.
완전한 관계란 없다. 완전한 인간이란 없다. 그런데 멋대로 대상에게 그것을 투영하고 요구하게 된다. 제멋대로 실망하여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와 원망의 감정마저 가지게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원래 그런 상대다. 그런 점에서 하야마 하야토나 미우라 유미코의 무리는 오히려 상당히 어른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두 리더인 하야마 하야토와 미우라 유미코, 그리고 에비나 히나는 그같은 인간관계의 모순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그를 전제로 자신들의 집단을 유지하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들 역시 고등학생이라 그런 관계가 마뜩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래 히키가야 하치만의 부정적인 독백처럼 인간의 관계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거짓말을 배우며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런 점에서 히키가야 하치만이 봉사부에서 고백하며 말한 '진실한 것'이란 역설적인 의미를 갖는다. 서로 오해하고 때로 서로를 속이고 그런 서로에 분노하고 갈등을 빚게 되는 경우에도 유지되는 진짜 관계라는 것이다. 적당한 거짓말과 적당한 속임수와 적당한 가면과 적당한 인내와 적당한 방관으로 이루어지는 말 그대로 적당한 기만의 관계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다. 에비나 히나가 히키가야 하치만의 거짓말에 기대서까지 자신들 무리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 이유다. 왜 그래야 하는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이유를 쥐어짜 히키가야 하치만도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니까 무엇이 진실인가. 서로에 대한 이성적 감정인가. 아닌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우정인가. 그도 아니면 봉사부라고 하는 공간인가. 수학여행 이후 엇갈리기 시작한 관계는 그런 서로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갈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무엇을 위해 봉사부라는 공간에 함께 있는가. 함께 차를 마시고, 과자를 먹으며, 쓸데없는 수다로 시간을 보내는가. 무엇을 위해 히키가야 하치만은 서로를 속여가며 관계를 이어가려 하고,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관계의 단절까지 각오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인가. 그러니까 토베의 고백으로 인해 하야마와 미우라 그룹에 균열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히키가야 하치만이 나서서 어처구니없는 거짓고백을 해야만 했던 이유다. 그것을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당장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냥 한 마디면 된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너무 어렵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서툰 감정과 관계가 무려 12권에 이르도록 끝없이 서로의 관계를 꼬고 틀어놓는다. 하긴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지나고 나면 무심코 '아!'하고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후회라는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이야기라 이해하면 된다. 고등학교 2학년, 그리고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지금 자신들이 있는 그곳이 전부일 것이라 여기던 시절이다. 히키가야 하치만의 치바에 대한 집착은 그것을 보여준다. 지금이 자신들의 전부이고 여기가 자신들에게 전부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전부라 여겼던 그 시간과 공간이 사실은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고딩중딩들 이야기가 나이먹어 읽어도 그리 재미있는 모양이다. 먼 미래를 생각지 않는다. 나름대로 꿈을 말하고 희망을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지금 그들이 머문 그곳 한정된 시공간에서의 감정이고 생각일 뿐이다. 생각할 것도 많고 그래서 가려야 할 것도 많아진 지금에는 거의 불가능한 무모함이 그곳에 있다. 서툴지만 그럼에도 뒤를 보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그곳에 있다. 차라리 포기한다. 차라리 달관해 버린다. 그럴 수 없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어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있지도 않은 이상을 꿈꾸고 강요하며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발버둥친다. 그것을 아마 어른들은 가능성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마음껏 부딪히라. 마음껏 고민하라. 마음껏 다투고 갈등하라. 그래서 엄마처럼 아빠처럼 선생님인 히라츠카 시즈카가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보이지 않게 보호하며 이끌어주고 있다. 작은 그들의 세계에 갇혀서. 여전히 좁지만 넓은 세계와 끊임없이 교감하며 조금씩 내적인 성장을 이끌게 된다. 관계의 궁극은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의 고민과 노력에 대해 어떤 답을 내리게 될까.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하고 관심이 생겨 무려 소설까지 찾아읽게 되었다. 뜬금없고 낯간지러운 장면이 많아서 당황스러웠지만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들 또래다운 어설프고 서툰 모습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 나도 저랬었지. 그러고보면 중2병이란 최근 나타난 증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득 나의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차며 깨고 싶어지는 기억들까지 떠올리면서.
아마 14권으로 마무리되려는 것 같은데 어떻게 결론지어질지는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이 전부는 아니라는 시즈카의 말이 힌트가 되지는 않을까. 재미있었다. 애니메이션을 또 한 번 더 봐야겠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세기 소년 - 아베 정권의 과거회귀적 분탕질을 보면서 (0) | 2019.08.02 |
---|---|
이누야샤 - 情의 바다, 나라쿠가 태어난 이유 (0) | 2018.10.08 |
옥자 - 자본과 폭력, 먼 옛이야기같은 현실의 우화 (0) | 2017.07.06 |
중국산 태블릿 jumper ezpad 5se 사용기 (0) | 2017.04.11 |
'슬램덩크' 트레이싱 논란 - 주간연재만화라는 극한직업에 대해 (0) | 2017.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