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마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차라리 성인용 리얼버라이어티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그러면 문제삼지 않는다. 말 그대로다. 청춘불패란 어떤 프로그램인가.
그럴수도 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정도도 용납 못하는가. 그런 정도는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수준 아닌가. 그래서 그동안 나르샤를 두고 뭐라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나르샤 뿐만이 아니라 가끔 좀 수위가 높은 장면들이 나와도 그렇겠거니 웃으며 넘어갔던 것이었다. 문제는 그 선을 넘었다는 데 있다.
보수적이라? 좋다. 나도 보수적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게 나쁜가? 보수적인 사람도 함께 살아가는 게 사회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사회다. 그리고 방송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기에 보수적인 사람들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럼에도 성적인 부분에 대해 드러내고 싶기도 할 것이다. 성적인 부분에 대해 보다 자유로이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처음 저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렇다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 최소한 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람들이 괜히 오해하고 보고서 불편해하지 않도록. 서로 취향이 다른 만큼 그냥 그런 점을 인정하고 외면하고 지내면 좋은 것이다. 실제 많은 프로그램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시청자의 선택을 돕고 있다.
그러나 청춘불패는 어떤가. 청춘불패의 포맷, 첫째가 농촌체험이고, 둘째가 아이돌이다. 그 어디에도 성인취향의 예능에 대한 언급이 없다. 농촌체험은 가족적인 소재고, 아이돌이란 아이들도 좋아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아이돌에 대한 대중의 기본적인 기대라는 게 있다. 왜 문제였는가. 그 기대를 배신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었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다, 그것을 넘어선 것이다.
농촌체험이라고 하는 가족적인 소재와 아이돌이라고 하는 순수의 대상과 - 물론 그것은 일방적인 기대이기는 하지만, 바로 그런 기대가 있었기에 아이돌을 출연시키는 청춘불패는 대중의 관심을 받고 화제의 중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같은 기대와 요구를 배신했으니. 가만 있을까?
더구나 더 문제인 것은 그것을 대하는 방식이다. 성의 자유가 만일 선이라면 그렇다면 집창촌은 성해방구역인가. 포르노란 성의 해방의 상징인가.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안다. 아주 보수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매매춘과 포르노가 갖는 성의 착취와 도구화의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단, 그에 대해서 어떤 필요악적인 입장에서, 혹은 종사자의 인권적인 측면에서, 아니면 인간의 욕망에 대한 부분에서 서로 다른 부분에서 다른 방향으로 그에 대해 접근하며 용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성을 자유로이 말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도구화하는 것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성을 개방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희화하는 것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 성인의 경우는 상관없다. 성인이란 그런 것까지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다고 간주되기에 성인이다. 성인 가운데도 포르노와 현실을 구분 못하고 헛짓거리하는 놈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행위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물어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구분하고 통제할 능력이 되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미성년자는 어떨까.
좋다. 미성년자들이 성에 대해 보다 솔직해지고, 그래서 그 모든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 상관없다. 그러나 직업선택에 자유가 있다고 성매매와 포르노가 합법화된 사회에서조차 그 종사자들은 그로 인한 많은 사회적 불이익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의 개인적인 파멸과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과연 우리사회는 그같은 미성년자들의 성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과연 미성년자에게 성에 대해 가볍게 아무렇지도 않게 희화화해서 말해도 좋은가. 그럴만한 사회인가.
결국 자유라는 것도 감당할 수 있을 때 자유다. 성이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면 그만큼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엄숙해야 한다. 성교육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성교육이란 바로 그를 위해 하는 것이다. 성이란 이런 것이니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하라. 콘돔을 나누어주는 것도 성을 마음껏 자유롭게 즐기라는 게 아니라, 콘돔이 말하는 최소한의 자제와 절제,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임신은 피하라. 성병도 피하라.
나르샤가 가끔 그러는 것이야 무슨 상관인가. 그만한 나이도 되었고 그 나이에 자연스레 나올만한 말이고 행동들이다. 말하자면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래서 용인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제 너도나도 나와서 성인돌 컨셉을 잡고 떠들기 시작한다. 잠시잠깐 양념삼아 쓰이면 적당할 성인용 멘트며 행동들이 일상화되어 넘치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하는 것이 아직은 어린 이미지의 아이돌이라면 더욱. 본연의 캐릭터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멘트에서 계산된 소모적인 예능이 되고 그러면서 대중의 요구와 충돌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예능이 예능이 아니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고 나면. 다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바퀴가 그리 강도높은 성인용 멘트를 날리면서도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인이기 때문이다. 죄다 그만한 나이의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런 것이다. 더구나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균형감각도 보여준다. 정도나 빈도에서 최소한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반면 청춘불패는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받음에도 그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고.
왜 하필 청춘불패만 가지고 그러는가. 그 답은 그 청춘불패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청춘불패는 성인취향의 예능을 하는 리얼버라이어티인가. 성인취향의 성적인 소재로서 재미를 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가. 만일 그렇다면 화를 낸 자체가 문제일 것이다.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지 왜 화를 낼까. 그러나 그런가.
많이들 말하듯 우리사회는 아직 많이 보수적이다. 그 말은 사람들이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보수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청춘불패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더구나 청춘불패의 소재 자체가 보수적인 취향에 어울리는 농촌체험이다. 그런데도 정작 내용은 그같은 보수적인 취향을 외면한다? 그러면 그에 대한 언질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동안 청춘불패 제작진들이 언론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한 말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하지만 청춘불패란 바로 그런 보수적인 사람들까지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언질 없이 그냥 성이란 자유로운 거니까 그대로 내달리고... 너희들이 보수적이서 그렇다고 비웃고... 물론 프로그램 제작진이 그럴 리 없겠지. 그런 식으로 실드치는 것이 무의미하다 말하고 싶을 뿐. 성개방과 성자유화를 부르짖는다고 한 순간에 그것이 이루어질 리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과 무례에 대해서.
더구나 여성의 신체에 대한 비하 부분에 대해서도, 나는 오히려 작은 쪽을 선호한다. 큰 것만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작다고 비하의 대상이 될 것도 아니다.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컴플렉스일 수 있다. 아마 자기가 못생겼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도 그래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가. 자기는 컴플렉스더라도, 바로 컴플렉스이기 때문에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미선 정도나 되면, 아니 세바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그런 포맷이니 그에 대해서는 말을 않는 것이고. 듣는 사람이 모욕적으로 느껴질 정도라면 그것은 과연 예능인가.
여기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는 말이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니 그 내용에 대해 상관하지 말아야 하는가. 분명 그런 것들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예 불쾌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러면 그들의 감정이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인가.
공중파라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중파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말 한 마디가 자칫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예능이니 그냥 보아 넘기라... 그러면 얼마전 김범수의 발언도 라디오 진행 도중 웃자고 한 말이니 화내면 안 되겠네? 여성출연자가 남성출연자의 성기를 가지고 농담하고... 예능 아닌가?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그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아 넘길 수 없는 사람도 있음을.
아무튼 이야기하고바 하는 바는 한 가지다. 과연 청춘불패란 어떤 프로그램인가. 청춘불패가 추구하는 바란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바, 들려주고 싶은 바란. 바로 이번주의 성인개그던가. 성을 소재로 아이돌들이 떠들고 노는 것이 청춘불패의 정체성인가. 그것을 용인하고 전제하여 받아들여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나는 인정한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위의 내용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가는 것이 당연할 테니. 어떤가. 과연 그런가. 그걸 묻고 싶은 것이다.
아, 끝으로 강아지를 가지고 발정 어쩌고 농담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냥 강아지만을 가지고 그랬다면야 누가 뭐라겠는가. 문제는 연상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상상력이라는 게 있다. 상상을 하게 된다. 어떤 말이나 행동에 대해. 또 그런 것을 가지고도 농담들을 하곤 한다. 술자리 음담패설 못 들어봤는가.
깔끔하게 담백하게 그냥 개가 발정기다... 그냥 웃고 넘어간다. 아니 조금 수위가 셌어도 그냥 잠시 지나가는 멘트 정도였다면 웃고 넘어갔을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그게 안 되었으니까. 심지어 아직 어린 닭에 빗대어 영계 어쩌고... 그 뉘앙스를 과연 누가 모를까?
어쨌거나 이제 슬슬 결론이 내려져야 할 것 같다. 내가 보았던 바 아이돌이 출연하여 그들의 순수를 보이는 버라이어티인가, 아니면 아이돌이 망가지는 모습에서 재미를 얻는 버라이어티인가, 그도 아니면 성인취향의 예능을 즐기는 버라이어티인가, 판단은 그 뒤에 내려도 좋을 것이다. 과연 나의 비판은 정당했는가. 아니면 프로그램의 성격과 맞지 않는 부당한 것이었는가. 아니 더 정확히 나는 청춘불패를 보지 말았어야 하는 프로그램의 대상외였던 것인가. 청춘불패 제작진의 답을 기대해 본다.
하여튼 별 희한한 프로그램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원래 괜히 TV 보면서 심각해지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난 그냥 생각없이 보고 즐기는 걸 좋아한다. 도대체 이 뭐하는 짓거리인지. 참 할 짓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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