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한 대로 남자의 자격 1주년 특집 몰래카메라는 이경규 특집이었다. 속여서 재미있고, 속아넘어가기에 재미있고, 그러나 속아넘어가는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서야.
이경규의 리액션이 살린 몰래카메라였다. 물론 몰래카메라 자체도 훌륭했다. 사전준비도 치밀했고 속여넘기는 멤버들의 연기 또한 능청스러운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역시 배고픔을 단순한 배고픔으로 넘기지 않고 순간순간을 예능으로 승화시킨 이경규가...
숨겨두고 있던 빵을 시시때때로 꺼내 냄새를 맡는 장면이나, 이정진이 짐짓 가져와 윤형빈에게 던진 라면을 슬그머니 낚아채 부여쥔 채 이불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드는 모습이나, 미션이 끝났다니 숨겨두었던 빵을 쪼개 멤버들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이나, 어떻게 50줄 넘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귀여울 수 있는가.
그리고 미션이 끝나면 반전이 있을 거라더니만 결국 밝힌 것이 누가 마시고 남긴 커피를 홀짝 마셨더라는 장면에서도. 그 전에 트름하던 것도 있고 해서 무척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고작 커피였다니. 그것도 한 잔 다도 아니고 남 마시고 남긴 것을 홀짝인 것이라니.
그러면서도 미안해 하더라는 것이다. 단식 미션이라 배고픈 것을 참고 견디는 멤버들이 고맙다며 그 약간의 커피마저도 미안하다며 말할 때는 과연 이래서 이경규구나. 짓궂던 웃음은 어느새 흐뭇함으로 이경규라는 인간에 대한 인정과 존경으로 바뀌었다. 이경규가 이래서 무려 30년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로구나.
그저 성질만 내는 욱사마였다면 과연 이경규 주위에 저리 사람이 많았을까. 그리 독하게 개구지게 하면서도 그 한 잔도 안 되는 커피에 미안해 하더라는 것이 오히려 이경규를 속인 다른 멤버들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속은 것을 알면서도 짐짓 화는 내도 오히려 허탈해 하는 모습이 나이를 잊고, 성별마저 잊고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경규 특집이라. 바로 이런 이경규였기에 남자의 자격은 1년을 끌어 올 수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촘촘히 배치되며 프로그램은 내내 웃음과 긴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더구나 몰래 지켜본다는 즐거움이. 이경규 한 사람만 아무것도 모른 채 모두가 공범이 되어 몰래 지켜본다는 쾌감이 그같은 재미를 더욱 극대화시켜주고 있었다. 악의에 찬 음흉한 웃음으로 그를 지켜보며.
몰래카메라의 재미였다. 바로 그래서 몰래카메라가 재미있었다. 마치 공범이 되어 음모를 꾸미는 그런 느낌이랄까? 편집도 잘했다. 이경규의 모습과 이경규 모르게 비밀방을 오가며 마음껏 포식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교차하며 공간적인 거리를 넘어 심리적인 대립구도를 만들고 긴장을 고조시켰다. 슬금 비밀방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 대비되는 이경규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스릴이라니.
몰래 김성민에게 다가가고, 이정진에게 접근하며, 윤형빈을 포섭할 때, 나 역시 그들에 의해 포섭당하고 있었다. 은밀한 공모자가 되어 마음졸여 하고, 이경규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리고 속아넘어가는 이경규의 모습에 슬핏 통쾌한 웃음을 흘리고.
하여튼 보는 내내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니 때로는 방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다. 한 사람을 속여넘기는 데 동참한 공범들만이 느끼는 공감대 속에.
그래서 또 얼마나 가슴졸이고 했던가. 이경규가 무언가 눈치라도 챈 양 이윤석을 찾고, 찬장을 열고 할 때는. 특히 압권은 마지막 30분을 남기고 김국진과 이경규와의 심장이 멎을 듯한 긴박한 신경전. 물론 이경규는 전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경규가 모르게 몰래 비밀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 김국진 입장에서, 그리고 그와 동화되어 버린 내게 있어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던 이경규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긴장이고 초조이고 두려움이었다. 저러다 들키면 어쩔까? 더구나 김국진이 비밀방에서 나오려 할 때 바로 그 앞을 이경규가 지나가고 있었으니.
그 긴박감이 좋았다. 공범이 되어 안돼! 안돼!를 외치며, 공범의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이경규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고, 멤버들의 행동에 함께 공감하며 웃고,
이경규만 단식이고 나머지는 폭식이라더니만 참 많이들도 먹는다. 김태원은 술 끊고 먹는 게 낙이라더니만 진짜 그동안 살빼려 굶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아주 잘도 먹어대고 있었다. 이해한다. 원래 몰래 숨어서 먹는 맛이 진짜라는 것이거든. 남 굶기고 혼자 몰래 먹는 맛이 진짜라는 거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입맛이 땡기고. 나도 배가 고파서 밥을 비벼먹으며 보고 있었다.
역대 몰래카메라 사상 최대 스케일, 무려 24시간에 걸쳐서 출연자 6명에 스텝들까지 참가해서 이경규 하나 속여넘기기. 그것은 스펙타클이고 블록버스터였다. 그리고 정겨운 가족드라마였고. 흐뭇했고 즐겁고 긴장감 있고 스릴이 넘쳤다. 그리고 통쾌했다. 이경규에 대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과 함께. 과연 남자의 자격 1주년 자축 특집이라.
그리고 마지막 몰래카메라가 끝나고 나오는 영상들... 그걸 다 기억은 못한다. 그러나 남자의 자격이 지나온 길을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며 슬라이드하듯 이어 보여주는데 울컥 했다. 바로 이런 게 남자의 자격이라.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싸우고, 함께 자전거를 달리고, 때로 쓰러지기도 하고, 때로 좌절하기도 하면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러나 한 번은 생각해 볼 법한 과제들을 하나씩 거쳐온 시간들이. 그 진정들이. 그 남자들만의 진심들이. 웃음에 이은 감동이... 이것이 남자의 자격이었다.
간만에 유열도 보아 좋았다. 뮤지컬 음악감독을 하고 있다고. 마삼트리오 가운데 이수만은 SM사장, 이문세는 여전히 현역, 하긴 유열은 전성기 포스가 좀 딸리긴 했다. 그래도 역시 음악과 함께 하고 있다니 반갑다.
진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있었다. 바로 이런 게 예능이다. 감동도 좋고 공감도 좋지만 이렇게 후련하게 웃을 수 있는 게 예능이다. 거리낌 없이. 껄끄러움 없이. 끈적거리는 것 없이. 상쾌한. 이경규가 좋았고, 김국진이 좋았고, 김태원이 좋았고, 이윤석이 좋았고, 김성민이 좋았고, 이정진이 좋았고, 윤형빈이 좋았고,
일요일 저녁 단 한 시간, 일주일 가운데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나를 위한 선물. 오늘의 선물은 아주 특별했다. 남자의 자격에 감사한다. 그 웃음들에. 흐뭇함에. 두근거림에. 좋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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