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악들

윤수일밴드 - 아파트

까칠부 2010. 4. 1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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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 윤수일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

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가사 출처 : Daum뮤직

 

 

아마 많이들 아는 노래일 것이다. 아니 모르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노래방에 가든 경기장에 가든 하여튼 어느샌가 따라부르고 마는 말 그대로 국민가요라 할 수 있을 터이니.

 

그러나 문득 생각한다. 정작 그리 많이들 아는 노래이건만 이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얼마나 이 노래를 제대로 들어 보았을까?

 

가만 귀기울여 들어보기 바란다. 귀에 익은 멜로디와 가사는 잠시 젖혀두고 먼저 드럼을. 그리고 베이스를. 그리고 다시 기타를. 어떤가?

 

워낙에 대부분 노래를 들어도 멜로디와 가사만 듣지 연주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탓에. 음악이란 연주까지 아우르는 것인데도 그저 메로디와 가사만 들으려 한다. 그래서 아파트 역시 그렇게 불려지고 들리고 있건만 여전히 남는 것은 멜로디와 가사 뿐.

 

아무튼 꽤 되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이 노래가 트로트로 분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댄스는 차라리 낫다. 윤수일밴드 5집 당시에도 "황홀한 고백"을 부르는데 마치 댄스음악인 것 같았다. 강한 비트에 빠른 리듬, 그리고 파격적이고 화려한 무대매너... 또 당시는 락을 불러도 무대에 무용수가 나와 함께 춤을 추곤 했었다.

 

아마 믿기지 않을 테지만, 그때까지도 사랑과 평화와 같은 팀이 나와 연주를 할 때도 무용수가 함께 나와 무대에서 춤을 추곤 했었다. 더구나 밴드가 나오면 보컬을 제외하고는 죄다 한쪽 구석에 몰아놓는 경우가 많아서. 보컬만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밴드는 뒤에서 연주만 하는 모양새였다. 당연히 윤수일밴드라는 것도 모르고 윤수일이라는 가수만 알았고, 밴드가 뭔지도 모른 채 빠르고 흥겨우니 댄스음악이라 생각했었다. 당시 내 음악수준이란 그랬다. 그래서 댄스는 이해한다. 그러나 트로트는...

 

하긴 윤수일 자신이 원래 데뷔하기를 트로트로 데뷔했었다. 1977년이던가? 아마 제목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사랑만은 않겠어요."

 

윤수일의 데뷔곡이었다. 그리고 1981년 윤수일밴드라는 이름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락을 들고 나오기까지 트로트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래서 윤수일이라면 트로트 가수라는 이미지가 있다.

 

더구나 사실 아파트의 멜로디도 가만 들어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성인가요의 그것이다. 사운드를 트로트 특유의 그것으로 바꾸고 나면 영락없이 트로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윤수일 자신이 원래 클럽무대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1974년 당시 신중현이 후원하던 골드 그래입스라는 혼혈인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시작해서 1977년 솔로로 데뷔하기까지 밤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경우였다. 확실히 신중현이나 조용필, 유현상 등과 마찬가지로 윤수일 역시 기타리스트 출신이었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역시 음악을 잘 하자면 악기 정도는 기본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당시 밤무대라는 것이 그랬다. 해외에서 수입된 강한 사운드의 락이 있는가 하면, 클럽의 주고객이던 성인들을 위한 성인가요도 함께 연주되고 했었다. 그래서 밤무대 출신 음악인들은 자연스럽게 락과 트로트를 하나로 체화하고 있었다. 들고양이들 역시 강한 밴드사운드에 민요풍의 성인가요를 부르던 밴드였고, 사계절 역시, 조용필도 그의 음반 상당수가 밴드사운드가 뒷받침된 성인가요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현상의 원래 데뷔앨범도 비슷한 경우였고. 현철이나 김흥국, 김정수 같은 밤무대 밴드 출신의 음악인들이 손쉽게 트로트 가수로 돌아설 수 있었던 것도 그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락과 트로트는 하나다.

 

윤수일은 더구나 짧은 클럽무대 생활을 뒤로 하고 트로트고고라고 하는 당시 유행하던 새로운 장르의 트로트로 솔로활동을 시작한 경우였다. 그만큼 대중적인 트로트 멜로디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에 녹아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멜로디를 떠받치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던 강렬한 밴드사운드였으니.

 

아파트가 바로 그 상징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친숙하고 대중적인 뽕멜로디와 그러나 그를 떠받치는 강렬한 드럼과 베이스의 그루브. 또 무대매너도 화려했다.

 

말했듯 내가 윤수일을 한때 댄스가수라 여겼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정말 화려했다. 밴드는 한참 뒤에 보이지도 않는데, 무대에 선 윤수일은 어디 해외의 팝스타가 내한하기라도 한 듯 정말 화려함 그 자체였다. 키는 좀 큰가. 몸도 잘 빠졌다. 거기다 이국적으로 잘 생긴 외모까지. 그리고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던 파격적인 무대매너까지.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내가 락이라는 것을 듣기 시작했을 때는 윤수일밴드도 점차 퇴조하던 무렵이라는 것이다. 락이란 시나위나 백두산과 같은 것이라. 혹은 송골매와 같은 것이라. 그에 비하면 윤수일밴드는... 원래 락마니아들이 허세가 좀 심하다. 부활도 인정 않던 시절인데.

 

그래서 나도 아파트라면 그저 흘러간 성인가요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노래방에서는 사운드같은 건 나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따로 아파트를 앨범씩이나 구해서 들을 일도 없었고. 한참 - 아주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제대로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당시 무대에 홀로 나와 서 있던 윤수일의 주위에 악기를 들고 연주하던 밴드의 존재와 윤수일의 퍼포먼스가 뜻하던 것을. 그리고 윤수일밴드의 의미를.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평가된 음악인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닐까.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 특히 락음악사에서 윤수일이 차지하는 의미가 아주 크다. 그러나 트로트로 데뷔했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그 멜로디가 상당히 뽕삘나는 성인가요라는 것이... 더구나 바로 뒤이어 송골매가 나오고, 본격적인 메탈사운드를 들고 나온 시나위, 백두산, 부활이 있었고...

 

그러나 당시 윤수일밴드가 들려주던 사운드란 파격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정적이던 조용필에 비해서도 상당히 동적이었고, 사운드 자체도 상당히 하드했다. 아마도 70년대 클럽무대의 락을 80년대 락밴드들에게로 이어주는 역할을 윤수일 밴드는 했을 것이다. 지극히 대중적이면서도 친숙한 멜로디로.

 

실제 윤수일밴드는 당대 최고의 인기밴드이며 가수였다. 윤수일밴드가 내는 노래들은 하나같이 히트를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사운드는 쏙 빼 놓은 채 멜로디만을 가요로서 즐겨 부르고 있을 정도다. 락의 대중화를 고민하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바로 이런 것이 대중에 다가간 락이라. 대중에 인정받는 락사운드라.

 

어쨌거나 4년 전이던가?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오면서, 그 나이에서 흔히 빠지게 되는 보다 쉬운 길인 트로트를 뒤로 물린 채 락을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중이 바라는 것은 트로트를 부르는 윤수일일 텐데도 음악적인 추구를 위해 락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은... 여전히 트로트는 윤수일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그의 음악의 일부이지만 그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아니더라도 윤수일은 어디까지나 윤수일이다. 윤수일밴드는 윤수일밴드고. 그가 - 그리고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다.

 

 

문득 얼마전 읽은 어느 기사의 내용이 떠오른다. 원래 아파트의 주인공은 윤수일의 친구였다고.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군대 제대하고 나니 그 사이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던가?

 

그러나 그런 사연과는 상관없이 아무런 대답 없이 텅 비어 있는 아파트라고 하는 외롭고 쓸쓸한 노래의 분위기가 산업화의 과정에 소외되고 고립되어가던 도시인의 고독과 맞물리면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윤수일이 당시 대중적으로 크게 환영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는 도시화의 과도기 그 자체였다. 도시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던 당시의 많은 도시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던. 그것은 윤수일밴드의 1집 "제 2의 고향"과 "유랑자"에서 더욱 진하게 묻어난다. 왜 윤수일이었던가. "아파트"는 그 상징과도 같다.

 

마침 집으로 가는 길이 둑길이다. 갈대는 없지만 개천이 흐른다. 예전에는 흐드러지가 풀도 자라고 있었다. 가로등만 외로이 비치는 밤이면 가끔 지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마저 반갑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 저 너머에는 노래에서처럼 다리가 있다. 밤 늦게도 차가 끊이지 않는다리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봐도 끊이지 않는 아파트들. 짙은 남빛 하늘을 배경으로 시커먼 아파트가 창백한 불빛을 머금고 별처럼 서있다. 바람은 차고, 집에는 기다리는 이조차 없이. 아, 고양이가 있구나. 미처 개지 않은 이불에 누워 맞아주는 고양이란 말이 없어도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마치 조금 전까지의 술자리가 꿈인 것 같다. 왁자하게 떠들던 소리들이. 웃고 화내고 어울리던 그 시간들이. 그 감정들이. 아무데나 손닿는대로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그런 밤이다. 그런 거리다.

 

창백한 가로등 불빛과 무심히 서 있는 잿빛 아파트들과 어느새 잠들어 있는 주택가의 어두운 창들과 그리고 홀로 터벅거리며 걸어가는 나. 그래도 잠은 자야 내일 나가기도 할 터이니.

 

요즘 덕분에 윤수일의 음악을 듣고 있다. 이끌림처럼 어느샌가 며칠을 윤수일 음악만 들으며 지내고 있다. 이런 음악이었구나. 반갑고 그리고 또 새롭고... 늘 듣던 아파트도 오늘따라 새롭다. 이런 게 음악이라. 언제 들어도 항상 새로운 것이 또 음악이라는 것이라.

 

다음을 기약해 본다. 윤수일에 대해 남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러나 아는 것이 너무 적어서. 윤수일과의 인연이 그리 깊지 않은 탓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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