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엄브렐러가 떠오르는 밤이다...

까칠부 2010. 4. 13. 00:23

가을비의 정취가 쓸쓸함이라면 봄비의 정취는 설레임이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거추장스럽기보다는 어딘가 시원하고 후련하다. 마음의 앙금마저 말끔이 씻어줄 것같이 흠뻑 젖었음에도 상쾌하기만 하다.

 

어쩐지 비를 맞으며 걸어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랄까? 한 손에 우산이 들려 있으면 더 좋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는 건 조금 궁상맞다. 우산이 있는데도 쓰지 않는 것이 낭만이다.

 

짝사랑의 설레임과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들리는 이 없이 고백해 보는 수줍음. 어디선가 가로등 불빛에 검은 그림자는 춤을 추고 빗물은 그 위에 맴을 그린다.

 

그러고 보니 엄브렐러 가사도 듣지 않고 있었다. 원래 내가 가사를 따로 듣지 않는다. 루팡도 아직 그 가사를 다 알지 못한다. 미스터도 물론. 워너도 더욱.

 

그래서 조금은 우울한 노래라 생각했다. 우울하지만 상쾌한 느낌? 슬픔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활짝 웃는 그런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조금 비슷할까?

 

어쩌면 그래서 엄브렐러를 루팡과 같은 성숙한 이미지로 기억했는지도 모르겠다. 성숙한 멋진 컨셉이라는 말도 있고 해서 엄브렐러의 무대도 그럴 것이다.

 

솔직히 실망했었다. 이건 너무 어리다. 너무 귀엽다. 또 귀여운가. 그건 또 그것대로 좋기는 하지만 내가 생각한 엄브렐러의 이미지도 있었기에. 그러나 가사를 보니 또 어울린다. 아, 나도 이제부터는 가사를 따로 들어가며 노래를 들어야 할까?

 

아무튼 딱 이런 게 좋다. 너무 많지도 않고 너무 적지도 않고 창을 열면 촉촉히 젖은 비내음이 비리지 않게 느껴지는 정도? 어쩐지 지난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오를 것 같은 밤이다.

 

이런 밤에는 그래서 딱 카라가 좋다. 하여튼 아는 비와 관련한 노래들이 거의 우울한 것들이라. 오늘은 그러나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우울하거나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니다. 카라만의 밝은 귀여움이, 발랄한 싱그러움이. 역시 카라의 목소리는 이런 봄비와 어울린다.

 

물론 역시 무대는 보지 않는다. 오늘 듣고 싶은 건 엄브렐라의 멜로디와 사운드지 가사가 아니다. 안무는 더욱. 카라의 목소리면 충분하다. 봄비를 닮은 카라의 목소리면 족하다.

 

비가 들이치지 않아서 좋다. 컴퓨터 바로 앞이 창이라. 비가 너무 오는 밤이면 창을 열어놓기가 부담이다. 고양이 녀석들도 비가 성가신지 어느새 무릎 위에 앉아 있고. 음악은 흐르고 비는 내리고...

 

아, 간만에 Singin' in the rain이나 들어볼까? 엄브렐러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노래였다. 어쩌면 이 노래야 말로 오늘에 딱일지도.

 

정겨운 밤이다. 비도. 음악도. 옛기억들도. 어느새 맺혀진 흐뭇한 미소도. 카라의 목소리가 비소리와 같다.

 

오늘은 조금 늦게 잠들 것 같다. 내일은 일찍 나가봐야 하는데. 비가 내린다. 봄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