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오해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리얼과 리얼리티... 리얼은 리얼리티가 있어야 하고, 리얼리티란 리얼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사람들이 또 흔히 쓰는 말 가운데 그런 게 있다.
"어이없다."
"황당하다."
"말도 안된다."
요약하자면,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
예를 들어 예전 해피투게더에서였던가? 어느 배우가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데 길에서 코끼리를 보았더라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 적이 있었다. 모두들 반응이 딱 저거였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부활 10집 "4.19 코끼리 탈출하다." 아마 2004년이었던가? 동물원에서 코끼리가 탈출해 한 바탕 소동이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물론 뉴스로 보았을 때는 그럴 법도 하다. 그렇게 코끼리가 탈출해 소동을 벌였구나. 그러나 그것을 직접 대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다.
"코끼리 때문에 약속에 늦었어요."
바로 욕먹는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혹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처음 골프채를 들고 라운딩을 하는데 홀인원을 한다. 과연 사람들은 뭐라 할까?
"그게 말이 돼?"
막장드라마로 치부되기 쉽겠지. 그러나 사실 저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얼마전 나도 인터넷 고스톱을 치는데 정말 말도 안 나왔다. 3구에 나서 고를 불렀는데, 이후 7번 연속 맨땅에 헤딩. 그리고 그 가운데 여섯번은 내가 내고 뒤집은 걸 상대가 다 가져가는 바람에 연달아 판쓸. 결국 거꾸로 3고에, 피박까지 쓰고 말았다. 과연 만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면?
"거, 아주 황당한 게 웃기네!"
개그만화, 혹은 개그씬으로 웃고 넘어갈 것이다. 누구도 진지하게 그 가능성 여부를 따지지 않겠지.
그러나 반대로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을 읽고 있다 보면 마치 미드랜드가 실제 있는 세계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엘프란 실제 있는 종족이고, 드워프란 그렇게 완고하고, 호비트는 유쾌하고, 오크는 흉폭하고...
루카스의 SF영화 스타워즈 역시 마찬가지다. 빛의 속도를 넘어 날아다닌다는 게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포스는 또 뭐고 라이트세이버란 또 뭔가? 제다이란? 그러나 보고 있으면 실제 우주의 어디선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법한 착각에 빠져든다.
하기는 그렇기 때문에 분명 허구에 불과한 소설이고 드라마고 영화일 텐데도 사람들은 작품 속의 인물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했던 공간들을 실제로 찾아보곤 하는 것일 게다. 그를 목적으로 꾸며놓은 관광지들도 많다. 허구이지만 이미 그렇게 찾아가는 -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치 실재하는 듯한 현실이라.
바로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의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연극 등은 픽션이다. 허구다. 넌픽션이라 하지만 그조차도 사실 실제 있었던 어떤 것을 소재로 삼고 주제로 삼을 뿐 정작 많은 부분은 작가의 창작에 의해 재구성된 허구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소설이라고 역사적인 사실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느새 그 안의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그 속의 인물들이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버리고 만다. 사실적인... 리얼리티다. 그러나 말했듯 그런 것들은 모두 허구로 사실이 아니다.
반면 퇴근해 집으로 가는데 코끼리때문에 길이 막혔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전혀 리얼리티가 없다. 정작 겪고 나서도 그것이 과연 사실이었던가...
그런 적이 실제 적지 않다. 분명 직접 겪은 일들이다. 실제 나누었던 말이고 실제 겪었던 상황들이다. 그런데 정작 경험한 자신조차 어쩐지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이다.
예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가 그랬다. 성수대교 가운데만 똑 하니 사라져버린 모습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현실감이 없었다. 눈앞에 이것이 사실인가. 누군가 아주 고약한 질낮은 장난이 아닌가. 그러나 어이없게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다시 눈앞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나는 말할 것이다.
"뭐야, 이건?"
누군가로부터 듣는다면 그러겠지.
"아무리 장난이라도 그런 건 하는 게 아니다!"
받아들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리라.
결국 뭐냐면 기대라는 거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예측하고 추론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세계란 완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세계란 나를 둘러싼 주위의 연장이다. 내가 겪은 것들, 내가 겪어 아는 것들, 내가 배워서 익힌 것들, 그 모든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의 연장이 이 세계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현재는 과거로 이어지고, 그로부터 현재는 미래로 이어지고, 내가 선 아주 좁은 영역은 지구로, 전 우주로 확장된다. 일관되고 보편적인 그런 완결된 세계에 사람들은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리얼리티란 바로 그에 봉사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럴 것같다. 그럴 듯하다. 사람들의 상식에 비추어 - 상식이라는 이름의 보편적이 체험이나 지식에 비추어 어쩐지 그럴 것 같은 개연성이 있다. 말 그대로다. 개연성. 개연성이야 말로 리얼리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현실의 모든 사건이란 리얼리티를 갖는가. 물론 어떤 이유가 있었기에 그같은 사건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이유들을 추적하다 보면 그것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개연성이라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완결된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일이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다. 리얼리티란 논리로써 합리적으로 사고하여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식이란 자체가 직관이다.
땅은 편편하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그런데 땅이 둥글다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해를 돈다고. 물론 지금은 후자가 상식이지만 전자가 상식이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때 후자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치부되고 있었다. 따지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미리 결론이 내려지고 그에 맞춰 판단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
그 말은 곧 말이 되는 다른 것이 있다는 뜻이다. 눈 앞에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임에도 그와는 달리 말이 되는 또다른 사실들이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것. 그렇게 리얼과 리얼리티는 저 말 한 마디로 현실 속에서 유리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 말이 되네!"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를 한 마리 만든다 하던가?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모여서 실제 그렇겠거니 결론을 내리고 나면 그때부터 그것을 실재하는 사실이 된다. 이를 일컬어 달리 관념의 실체, 혹은 집단의 기억 등등 일컫는 용어들이 많이 있다. 신이야 실제 있든 없든 종교를 믿는 입장에서 이미 신은 구체화된 실체이고, 삼국지에서도 관우는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맥성에서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관념 속에서 구체화되는 어떤 허구의 실체에 대해 부르는 말들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동의. 그리고 그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떤 논리이고 개연성인 것이다. 그리 믿도록 하는 어떤 권위 - 설득력이다. 리얼리티다. 그렇게 리얼리티에 의해 리얼은 혼동되어 유리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내가 지금 리얼이라 믿는 것이 사실은 리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얼이 아닌 리얼리티가 만들어낸 어떠한 허구의 실체이다. 물론 리얼리티는 리얼리티 혼자서만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리얼리티이면 무엇하는가. 그것이 허구임이 드러나는 순간 리얼리티는 무너지고 마는 것은. 설사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것을 대하는 동안에는 - 그 안에서는 리얼임을 믿도록 만들 수 있어야 리얼리티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결국 핵심은 리얼인데, 과연 그 리얼이 리얼인가.
다시 말해 전혀 리얼하지 않아도 그것은 리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리얼하더라도 그것은 리얼이 아닐 수 있다. 리얼리티가 만들어내는 착각이다. 사실적이라 하는, 개연성이라 하는 것이 만들어내는 오해다. 사실 그것 때문에 소설이든 만화든 드라마든 영화든 재미있는 것일 테지만. 아니라면 모든 소설이며 만화며 영화며 드라마 들은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실제 사건들을 그대로 갖다 쓰거나, 아니면 리얼리티란 전혀 없는 작품들만을 보아야 할 테니까.
그러나 넌픽션이라 했더니 픽션이 아니니 사실이라 믿는 것처럼, 리얼리티라 하면 사람들은 어느샌가 실제의 어떤 것을 떠올린다. 이래서 사실적인 것이라. 이래서 사실이라.
기동전사 건담이 왜 리얼로봇물인가. 사실 이보다 더 리얼한 패트레이버나 마독스조차도 허황되기는 마찬가지다. 과연 그같은 인간형 병기가 왜 필요한가. 더구나 최초의 건담시리즈는 이전의 다른 거대로봇물과 크게 차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작지만 보다 짜임새 있는 논리적인 개연성이 건담을 리얼하다, 리얼로봇물이라 여기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거대로봇 자체가 말이 안되니 리얼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 또한 리얼하지 않은 말이라 할 것이다.
리얼리티에 대해 곧잘 갖는 오해다. 아니 리얼리티를 또한 리얼이라 흔히 줄여쓰다 보니 나타나는 오해들이다. 리얼은 리얼하다. 리얼리티는 리얼하다. 사실적인 건 사실이다. 사실은 사실적이다.
하긴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 논리적으로는 맞는다. 그러나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도 분명 없지는 않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에서 연기를 잘못 볼 수 있는 확률도 분명 존재한다. 내가 보기에 논리적이고 개연성이 있다고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이 항상 논리적이고 개연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보니 대중문화라는 것도 항상 그에 봉사하려 한다. 이를테면 일상에서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개연성이 있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과는 달리, 주어진 상황에 크게 거스르지 않는 - 매우 충실한 말이며 행동을 보이는 작품 상의 인물들처럼 말이다. 아마 작품내 인물들이 그같은 기대를 벗어나 일상에서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했다면 사람들은 분노할 것이다. 말이 안 된다고. 결국 많은 대중문화의 작품들이 비슷한 코드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얼은 리얼리티가 아니고, 리얼리티는 리얼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 리얼리티는 리얼이라 줄여쓰기도 한다. 그리고 리얼리티는 항상 리얼을 추구한다. 리얼이라 여길 수 있도록. 그래서 항상 오해는 벌어지는 것이고.
아마 이 가장 큰 피해자가 리얼버라이어티일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의 리얼이란 리얼리티의 리얼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리얼 그 자체로서의 리얼이다. 그러나 리얼은 그다지 리얼리티가 없기도 하다. 사람들이 바라는 리얼리티란 리얼이 아니기도 하고.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하는 리얼리티를 추구하자면 리얼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도저히 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사람더러 남들 다 뛰니까 시청자들 보기 좋으라고 죽더라도 뛰어야 한다 - 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주장하는 것처럼. 뛸 수 없으면 뛰지 않는 게 리얼이다. 억지로 보여주려 뛰는 건 그런 건 리얼이 아니다. 산에 오르기로 했다면 설사 기후가 최악이라 그닥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런 것까지 보여주는 게 리얼이다. 그러나 결국 어떤 사람들이 바라는 리얼이란 그럴싸한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보일 법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리얼리티다. 그것도 결국 대중문화이기에 필요한 기술일 테지만. 이룰 수 있는 과제만을 설정해 이루어내는 모습만을 보여주라.
또는 이와는 반대로 제작진의 통제 없이 방임적으로 풀어놓았다 여겨지는 경우에서도, 정작 자유 속에 놓여진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자기 분량을 챙기기 위한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통제가 없기에 더욱 경쟁하며 자기 모습만을 돋보리여 애쓰고 있다. 과연 그것은 자연스러운가. 풀어놓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이후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리얼리티의 상실에 대해서 간과하고 마는 결과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리얼과 리얼리티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 못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리얼이니 리얼리티라. 리얼리티이니 리얼이라. 더구나 리얼버라이어티의 리얼은 리얼리티의 리얼이기에.
아무래도 요즘 제작기술들이 너무 발전한 탓일까? 아니면 대중이 전보다 어리석어진 탓일까? 리얼리티를 리얼이라 착각하고, 리얼을 리얼리티라 여기고, 너뭄 똑똑해진 것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넘치면 모자른만 못하다고 쓸데없이 똑똑한 것이 리얼과 리얼리티의 경계조차 스스로 무시해 버린 것은 아닌가.
"말도 안돼!"
바로 그 말도 안되는 것을 말이 되게 하는 것이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그러도록 하는 것이 작가이고 감독이고. 그것이 연출이며 창작이다. 대중문화다. 그것을 감상하는 것이고. 항상. 당연한 상식일 터임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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