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누구나 선이 있다. 여기까지는 된다, 여기까지는 안 된다 하는... 어디서는 누구는 웃는데 누구는 웃지 않고, 어디서는 오히려 다들 웃는데 화를 낸다. 과연 그런 때 남들에 맞춰 함께 웃어줘야 하는가...
관계라는 건 그런 걸 조율해가는 과정이다. 누가 어떤 걸 싫어하고, 누구는 어떤 걸 좋아하고, 당연히 싫어하는 건 하지 않으면 된다. 좋아하는 건 조금 더 해도 좋다. 그런데 가끔 그런 것을 잊는 사람들이 있다.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그래?"
어이가 없는 거다. 그거랑 이게 뭔 상관?
박기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씨가 한 농담과 같은 종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연 이것이 결례인가. 선을 그은 거다. 먼저 선의로 받아들인 다음에 조금은 단호하지만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농담을 좋아하지 않으니 삼가해 달라. 과연 가까운 사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대할까?
간단히 비유할까? 기껏 맛있으라고 떡볶이를 했다. 그랬더니 그런다.
"맛있네. 하지만 나는 쌀떡은 찐득거려서 싫어하는데..."
두 가지 반응이 있다. 일단 상대에게 별 호감이 없으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러나 호감으로 대하려 한다면 쌀떡을 찐득거려 싫어한다는 정보를 들으려 할 것이다.
그게 문제다. 왜 박기영의 리플에서 "그런 종류의 농담을 싫어한다."라는 정보는 듣지 않고, "불쾌하다."라고 하는 감정만을 보는가. 어째서라고 생각하는가?
한 마디로 박기영이라는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거다. 박기영이라는 개인에게 그만의 선이 있음을 애초부터 인정하려 들지 않는 거다. 왜? 연예인이니까. 가수니까. 팬이 음악을 사주어 먹고 사는 존재니까.
언제부턴가 한국 대중이 갖게 된 오만한 착각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내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나를 위해 맞춰주어야 한다. 그래서 심지어 그런 소리도 가능하다.
"불법다운로드라도 들어주는 걸 고맙게 여겨야지."
같은 맥락이다. 무려 내가 들어준다. 그러니 고맙게 여겨라. 내가 무려 팬이다. 그러니 받을어 모셔라. 설사 박기영이 그것을 싫어하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무조건 따르라...
그 근저에 깔린 것이 말한 팬으로 인해 가수는 존재한다는 어떤 시혜의식이다. 내가 음악을 사준다. 내가 음악을 들어준다. 심지어 돈 한 푼 내지 않더라도. 그러니 당연히 아티스트는 - 연예인은 나를 받들어 모셔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서도 얼굴을 찌푸려서도 안되고 무조건 따라주어야 한다.
이게 얼마나 웃긴가면, 미안하지만 팬 없이도 가수는 존재한다. 팬 없이도 가수란 무대에 설 수 있고 노래도 할 수 있다. 음반도 낼 수 있다. 단지 돈을 벌지 못할 뿐. 그러나 팬이란 가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물론 나는 박기영의 노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박기영의 노래는 역시 박기영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일 터다. 박기영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은 박기영에게서만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자신이 박기영에게 들이는 노력과 비용이란 박기영의 음악이 갖는 가치일 것이다. 과연 팬이란 박기영이란 가수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존재인가.
오히려 거꾸로인 거다. 팬이기 때문에 가수를 존경해야 한다. 팬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수의 취향이며 성격을 알아야 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오히려 알고서 조심해야 한다.
"박기영이라는 가수는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민감하구나..."
그러고서 그 부분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된다.
"다음에는 쌀떡이 아닌 밀가루떡으로 떡볶이를 해야겠구나...'
그리고 불쾌했다면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야겠지.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표현이 너무 지나쳤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기분이 조금 나빴다."
그러면 설마 몰라줄까? 과연 그런데도 자기 주장만 하려 들까?
바로 그런 게 소통이라는 거다. 상대의 불편한 것을 알고, 내가 불편한 것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바로잡아가고 관계를 정립해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관계란 없다. 처음에는 다들 모른다. 어떻게 아는가? 처음 보는 사이인데. 그렇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그로부터 고쳐나가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친구란 대개 몇 번이고 싸우고 절교하고 하던 사이 아니던가. 그만큼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깊숙이 서로에 대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 팬이라 하면서 아티스트와는 그런 것이 안 되는 것인가.
결국 그러지 못한다는 자체가 박기영이라고 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무시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존경할만한 아티스트로서가 아니라 - 아니 최소한 독립된 하나의 인격으로조차도 여기지 않는. 그저 팬을 위해 봉사하는 어떤 객체이자 대상으로만 여기는. 하긴 연예인은 친구가 아니다. 될 수 없다.
아마 이러한 연장일 것이다. 도대체 뭔 요구들이 그리 많은가. 기껏 음반이라고 내놓았더니 이러쿵저러쿵... 어떤 합리적인 근거를 둔 비판이 아니다. 단지 자기 욕심을 차리고자. 자기가 바라는 것이 아니기에.
과연 아티스트란 그렇게 대중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쫓는 존재인가. 그러나 그런 식으로 대중의 요구만을 쫓는 아티스트란 얼마나 값싸보이는가. 대중의 취향만을, 대중의 기호만을 쫓아 이리저리 움직이는 행보란 또 얼마나 가벼워 보이는가. 그런 아티스트에게 존경심이 생기는가.
그럼에도 자기 고집을 세울 줄 아는 아티스트에게 오만하다 비난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렇데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아티스트에게 건방지다 비난하는 것은 또 무슨 심리일까.
왜 우리나라 대중음악시장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여기에 답은 있다 할 수 있다. 음악을 불법다운로드로라도 들어주는 것을 고마워하라는 대중... 아티스트가 자연인으로서 그은 선에 대해서조차 오만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같은 오만한 대중이... 그러니 대중의 기호에 맞춰 딱 그에 맞는 음악과 무대와 매너를 챙기는 아이돌이 득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대중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니.
과연 그들은 팬이었던가... 그들은 과연 박기영의 팬이었던가... 아티스트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조차 없는 팬이라는 것은... 과연 자기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선을 그은 것이 그렇게 용서못할 오만이었던가.
다시 말하지만 것들에 대해 좋고 싫고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자신인 것이다. 그런 조차도 인정하지 못할 것이라면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갈 의미란 어디 있을까? 그런 것까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자기 입장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더구나 이미 사과하고 난 뒤에도 집단으로 공격하고...
입맛이 쓴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을 하나는 건 고작 이런 정도로구나. 들을 생각도, 이해할 생각도, 받아들일 생각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제하려고만 드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현실일 것이다.
하긴 써놓고 보니 과연 대중음악에만 한정된 이야기인가. 연예계 나아가 우리사회 전반의 이야기가 아닌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
죽자고 기분 나쁘거든. 내가 기분 나쁘다는데 자기들 우스우니 짜져 있어라. 그러면 나는 뭔가? 내가 느끼는 이 불쾌감이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이 어처구니 없는 논리라는 것은 또 뭐고. 그런 말이 당당히 정합을 이야기하는 근거로서 쓰이는 것도. 단지 이번의 일이란 그 연장일 뿐. 내가 박기영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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