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일반

영웅호걸 - 예능의 교과서로 삼고 싶다...

까칠부 2010. 8. 23. 14:12

파자마 파티란 항상 즐겁다. 잠옷만 입고 서로 어울리는 시간이란 모든 허위와 가식이 사라진 진실된 시간이다. 그만큼 더 스스럼없이 더 자연스럽게 더 깊이 어울릴 수 있다.

 

여기에 제작진은 한 가지를 더한다. 바로 빙의. 서로 잠옷을 바꿔입음으로써 그 잠옷의 주인이 잠시 되어 보는 것이다. 잠옷이 갖는 격의없음에, 다른 출연자의 눈에 비친 모습과, 그 모습을 연기하는 출연자 자신의 연기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개성을 더욱 드러내며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게 캐릭터다. 관계다. 아이유만 해도 그렇다. 노사연을 흉내내는데 귀엽다. 아이유가 묘사하는 노사연도 그럴싸한데, 그 노사연을 연기하는 아이유의 어색함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아이유가 보는 노사연의 캐릭터이며, 노사연을 통해 드러내는 아이유의 캐릭터다.

 

서인영의 신상녀 캐릭터를 보여주는 지연의 모습은 분명 서인영 자신과는 다르다.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지연이니까.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를 통해 지연이 갖는 개성이라는 것도 드러난다. 아이유에 빙의된 서인영 역시 어쩔 수 없이 서인영이지만, 그러나 아이유를 흉내낼 때는 참 귀여웠다. 아이유니까. 그리고 그것에 짜증내는 것도 서인영이었으니까. 이진의 잠옷을 입은 노사연의 핑클 춤은 역시 노사연이라고 하는 감탄과 함께 핑클 시절의 이진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을 비춘다. 이보다 더 적절한 캐릭터와 관계 설정이 어디 있겠는가.

 

역시 가장 압권은 정가은이었지만. 아마 약간은 사전조율이 있지 않았을까. 과연 그 잠옷을 정가은이 아닌 다른 멤버가 입었다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유인나라든가 홍수아... 그러고 보면 홍수아도 약간의 싼티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역시 정가은이니까. 덕분에 정가은이 보여주는 나르샤의 캐릭터가 상당히 빈약해졌다. 정가은의 캐릭터가 너무 강했다. 나르샤가 먹힐 정도로.

 

2PM과의 데이트에서도 정작 분량을 살린 것은 홍수아와 이휘재의 상황극이었다.

 

"우리 상황극 한 번 하자."

 

어디에서처럼 그렇게 해서 상황극이 아니다. 홍수아의 어딘가 어설픈 천연스런 이미지가 있다. 이휘재의 바람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둘 사이에 스스럼없이 디스하는 분위기라는 것도 있다. 홍수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짜증부리고 응석부리고, 이휘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놀린다. 그 연장에서 2PM에게 선택받지 못한 홍수아와 이휘재의 어디선가 보았을 것 같은 자연스런 상황극이 나온다. 짜증부리고 투정부리는 홍수아와 그런 홍수아를 구속하려는 이휘재, 그 이휘재의 손을 피해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고, 그것을 알게 된 이휘재는 마침내 말한다.

 

"우리 그만 만나자!"

 

그리고 이어지는 자막.

 

"그렇게 헤어지고 며칠 뒤 결혼발표."

 

그 센스에 빵 터지고 말았다. 바로 이런 게 예능이라는 거다. 출연자는 주어진 조건에 맞게 자기를 연기하고 제작진은 그것을 적절한 편집으로 살려내고.

 

수조를 청소하면서 아이유, 서인영, 정가은, 신봉선, 박가희의 왁자하게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나, 데이트가 끝나고 2PM조차 보이지 않게 멤버들끼리 물풍선을 가지고 놀던 모습이나, 괜히 신봉선을 공격하려다 역습을 당하는 유인나의 모습은 딱 그녀의 캐릭터대로. 그리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명쾌한 끈끈함이 있다. 자기들이 그렇게 즐겁게 놀고 있으니 보는 사람도 즐거운.

 

우영이었던가? 무서운 것 싫어한다고 하니까 가장 무서운 것 타자고 이끌고 간 지연이, 정작 롤러코스터에서 무섭다며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아주 발광을 한다. 비명을 지르고, 헤드뱅잉을 하고, 손으로는 우영을 자꾸 때리고, 하지만 자기가 타자고 그랬잖아?

 

인기순위 정하는 것도 상당히 예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재미가 있다. 확시히 연예인에게 인기란 매우 민감한 소재일 수밖에 없다. 멤버 가운데 과연 인기순위가 몇 위인가. 매니저가 모는 밴을 타고 집에 가느냐, 아니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느냐, 그 전에 자존심 싸움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어딘가 음습함이 있는가면, 바로 그러한 여자들끼리의 스스럼없는 어울림이 그런 음습함을 가려준다. 뒷끝없는 긴장이랄까? 누가 밴을 타고 갈 것인가, 누가 남을 것인가. 과연 오늘의 최고 인기는, 오늘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남은 이의 억울함과 선택된 이들의 환호. 아마 그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아이유와 지연일 것이다. 처음으로 남게 된 지연과 친구인 지연을 남겨두고 밴을 타고 가게 된 아이유,

 

"냉면은 다음에 먹자!"

 

2PM이 나온다기에 걱정했다. 혹시나 2PM에 먹히지나 않을까. 그러나 게스트는 게스트였다. 누가 주인공인가를 잊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영웅호걸의 주인공은 12명의 여자들이라고. 이 12명의 출연자를 중심에 놓고 2PM은 단지 양념에 불과했다. 이전의 다른 게스트들이 그랬듯. 바로 이런 것이 게스트를 활용하는 법 아닐까? 게스트 불러 오면 거기에 먹혀 멤버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는 모 버라이어티가 배웠으면 하는 부분이다.

 

아무튼 참 정석대로 잘 만들었다. 버라이어티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여자연예인을 출연시킨 버라이어티라면 이렇게 출연자를, 그네들의 개성을, 그리고 그를 통해 즐거움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색함 없이. 과도하게 꾸미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아직까지는 무척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가기를. 좋았다. 무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