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

팬과 팬덤 - 팬이란 사랑하는 것이다!

까칠부 2010. 9. 3. 20:11

흔히 말한다.

 

"왜 저들은 저렇게까지 하는가?"

 

시디를 몇 장이나 사고, 공연마다 쫓아다니고, 값비싼 선물을 사서 보내고, 어떤 이슈에 대해 그들을 위해 전사가 되곤 하는 이들에 대해서다.

 

세상에는 두 가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애완동물을 기를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애완동물이 사실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란 그리 없다. 집 지키기로도, 쥐잡기로도 더 이상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게 된 지금은 더 그렇다. 개가, 고양이가, 집 지키는 것이나, 쥐 잡는 것 말고 해주는 게 뭐가 있는가?

 

하지만 그래서 좋은 것이다. 해 줄 수 있으니까. 해 주는 자체가 좋은 것이다. 고양이가 병에 걸려 몇 달 생활비가 병원비로 들어가도, 그래서 빚쟁이가 되어서도, 하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건강할 수 있으니.

 

사랑에 빠지면 그렇다. 무언가 바라기보다 해 주고 싶어진다. 뭐라도 한 가지 더 해 주고 싶어지지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바란다면 나를 돌아봐주기를. 그 밖에는 내가 다 해 준다.

 

"남자친구가 백수면 내가 먹여살린다."

 

서인영은 그런 점에서 멋진 여자다.

 

아이돌이란 그런 것이다. 스타와 아이돌의 차이다. 스타란 타인이다. 아이돌이란 가족이다. 연인이고, 친구이고, 가족이다. 굳이 지금의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배우이거나 가수이거나 왜 그렇게 이성과 사귀는 것을 감추지 못해 애쓰는가. 만인의 연인인 것이다. 마릴린 몬로도 아이돌이다.

 

말하자면 스타와 팬이라기보다는 아이돌과 팬이 맞을 것이다. 팬이더라도 단지 좋아하는 팬이 있는가 하면 그를 아이돌로 맞아들이는 팬이 있다. 그들에게 아이돌이란 연인이고, 친구고, 가족이다. 사랑의 대상이다. 당연히 해 주고 싶고 해 주어야 한다.

 

물론 나도 팬덤이라면 이가 갈리도록 싫어한다. 그동안도 많이 싸웠다. 멀러 거슬러 올라가면 HOT와 조성모에서부터, 아주 최근에는 카라까지. 지금 나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팬덤도 아마 카라가 아닐까. 카라 팬이 여기 좋은 리플 남기는 적도 별로 없고, 내가 그것을 가만 내버려두는 적도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한다는 것, 바로 그런 게 사랑한다는 것이니까.

 

더불어 사랑에 빠지면 우주의 중심이 바뀌게 된다. 이전까지 우주의 중심은 나다. 나 자신이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고 나면 우주의 중심은 그로 바뀌게 된다.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실드를 친다고 했을까? 하지만 실드가 아니다. 그렇게 믿는 거다. 그렇게 여기는 거다. 당위다. 당연한 거다. 그것이 무슨 실드까지 될까? 그렇게 여기고 있기에 그리 말하는데.

 

내가 굳이 팬을 자처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나. 나는 항상 거리를 둔다.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냉정하려 하고 객관적이려 한다. 어디까지나 내가 중심이 되어 사고하고 판단하려 한다. 과연 팬일까? 

 

오히려 안티가 더 팬에 가까울 것이다. 안티 역시 그들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아이돌일 테니. 그들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아이돌로부터 비롯된다. 차라리 나보다 더 성실하고 열정적인 것은 그래서다. 안티도 팬이다. 굳이 틀린 말이라고는 않겠다.

 

누군가를 저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그렇더라도 정도는 있어야겠지. 무엇보다 그 사랑의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박재범의 팬덤이 굳이 2PM과 그 팬덤과 다투기를 바라지 않고, 공존을 말하는 것처럼. 자기 아이돌을 위해서 기부를 하고, 자원봉사를 하고, 좋은 일에 힘쓰는 모습처럼. 단지 자기 아이돌을 지키겠다가 아니라 그런 마음을 보다 멀리...

 

하지만 그래서 사랑도 아가페적인 사랑과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나뉘는 것일 게다. 결국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란 에로스적인 사랑일 테니. 그렇다고 실제 이성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순수한 동경이라 하겠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때로 배타적이고. 그게 또 골치아픈 것일 테지만.

 

결국에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니면 이성이 아닌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왜 조공을 하는가? 그게 좋으니까. 왜 앨범을 사재기하는가? 그래서 즐거우니까. 인간은 이기적이며 이타적인 존재다. 이기가 곧 이타가 되었을 때, 이타가 곧 이기가 되었을 때, 그것을 사랑이라 말한다. 아, 내 책에 이에 대해 한 번 썼을까? 그게 아이돌이고 팬일 테지만.

 

그래도 역시 팬을 상대하는 건 귀찮고 성가시다. 아이돌 팬만이 아니다. 정치인 팬도 있고, 다른 유명인 팬도 있고, 역사상 위인에 대한 팬도 있고. 하지만 그런 것과 부딪히기 즐기는 것도 내 독특한 취향이니.

 

아무튼 왜 그렇게까지들 하는가. 그게 좋으니까. 그게 기쁘니까. 이기인 것이다.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이타적인. 한정된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라고나 할까? 그 또한 사람이 갖는 한 모습 가운데 하나라.

 

내가 팬들에 대해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이유라 하겠다. 부딪힐 일만 없으면 별 상관은 없을 테지만. 그렇다.